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군함도

울프팩 2017. 8. 11. 07:05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 '다찌마와 리' 등을 보며 류승완 감독은 영화를 참 재미있게 만드는 감독이라는 생각을 했다.
액션을 맛깔스럽게 조합할 줄 알며 여기에 적당한 유머를 버무려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끌어가는 솜씨가 일품이다.


더러 B급 정서라고도 하지만 쿠엔틴 타란티노나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도 같은 소리를 듣는 만큼 취향의 문제일 뿐 결코 나쁜 소리는 아니다.
그만큼 류 감독이 만드는 영화들은 최근 '베테랑'도 그렇고 은근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지금 상영 중인 '군함도'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군함도'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저렇게 왜곡해도 되나 싶었고, 지나치게 표현하면 아픈 역사를 돈벌이의 소재로만 본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의 장기인 액션과 유머가 너무 흥행 일변도의 소재로만 쓰였기 때문이다.

 

군함도는 일제강점기 시절 죄 없는 조선 사람들이 강제로 끌려가 지하 깊숙한 좁은 땅굴에서 힘들게 석탄을 채취한 아픈 역사를 지닌 곳이다.
그곳에서 일본인들의 모진 학대와 사고로 숱한 사람이 죽었는데도 일본은 지금도 배상이나 사과는커녕 죄를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다.


오죽했으면 강제 징용을 당해 군함도로 끌려갔던 사람들은 이 곳을 '지옥섬'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아픈 역사로 남아 있는 곳이다.


그런데 류 감독은 아픈 역사의 상처가 남아 있는 이 곳을 액션 활극의 장으로 바꿔 놓았다.
절정을 이룬 장면이 완전 상상으로 꾸며낸 후반부의 대규모 탈출 장면이다.


조선인 출신의 미 특공대원이 몰래 잠입해 일본군을 급습하고 징용으로 끌려간 사람들을 구출한다.
탈출하기 힘들어 감옥섬으로 불린 이 곳에 어떻게 특공대원이 잠입할 수 있었는지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더불어 제 한 몸 겨누기도 힘들었던 사람들이 일본군을 대규모로 공격해 요란한 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군의 폭격으로 수용소가 무너진 틈을 타서 빠져나오는 장면은 마치 '반지의 제왕'의 모르도르 성 전투를 연상케 할 정도로 액션이 거칠고 요란하다.


이 부분에서는 류 감독 특유의 액션 묘사가 빛을 발하지만 인물과 장소가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일부 배우들을 중심으로 한 지나친 영웅 만들기는 눈에 거슬렸다.


'태양의 후예'나 '장군의 아들'도 아닌데 송중기나 소지섭이 연기한 영웅들이 활약하기에는 참으로 부적절한 장소였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군함도에 조선인들만 갇혀 있었던 것처럼 묘사했지만 실제 그곳에는 중국인, 미군 포로 등 외국인들도 많이 갇혀 있었다.


당연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탈출도 없었고 미군 특공대가 잠입한 기록도 없다.
물론 창작자가 상상력을 발휘한 부분으로 볼 수도 있지만 과연 소재가 적당했는지는 의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픈 소재로 흔히 사용되는 부분이 바로 아우슈비츠로 상징되는 유대인 수용소다.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인생은 아름다워' 등 유대인 수용소를 다룬 영화들은 숱하게 등장했지만 어느 하나 연합군이 특공대를 보내거나 유대인들이 나치에게 대규모 공격을 가하는 식의 액션극으로 그리지는 않았다.


해당 작품들의 감독이 결코 상상력이 모자라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작품들을 만든 감독들도 상상 속에서나마 역사를 바꾸고 싶을 만큼 분노하고 슬퍼하기는 류 감독 못지않았을 것이다.


'쉰들러 리스트'를 만든 스필버그 감독은 유대인이며 심지어 '피아니스트'의 감독인 로만 폴란스키는 어머니를 유대인 수용소에서 잃었다.
오히려 절대 잊지 못할 역사의 당사자들이었기에 그 무게가 남달랐을 것이고 가공의 상상력으로 덧칠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군함도'는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남고 아주 실망스럽다.
요란한 액션과 현란한 영화적 기교는 돋보이지만 상상력이 지나치다 보니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를 보는 느낌이다.


역사에 상상력을 가미해서 영화적 재미를 추구하는 일은 흔히 있지만 여기에도 어느 정도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설득력이 있고 보는 사람도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다.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가 그런 경우다.
'군함도'는 그런 개연성이 보이지 않는다.


볼거리에 치중한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온통 흥행코드만 번쩍거릴 뿐이다.
결코 군함도는 존 스터지스 감독의 '대탈주' 같은 영화를 만들기에 어울리는 소재가 아니다.


류 감독이 뒤늦게 알게 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개인적 분노를 상상력을 발휘해 풀고 싶었던 점은 이해하지만 상상력이 지나쳤다.
그 바람에 이 작품은 역사적 슬픔은 온데간데없고 도발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류승완의 판타지'가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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