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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추천 DVD / 블루레이

라이트 하우스(블루레이)

울프팩 2020. 4. 5. 22:39

로버트 에거스 감독의 '라이트 하우스'(The Lighthouse, 2019년)는 절해고도의 섬에 우뚝 서 있는 등대지기들의 이야기를 어둡고 음침하게 그렸다.

등대지기라면 어려서 부르던 영국 민요 'The Golden Rule'을 개사한 동요 '등대지기'가 떠오른다.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로 시작하는 노래는 외로운 등대지기의 삶을 아름답고 고귀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이 영화 속 등대지기들의 모습은 무섭고 추악하다.

 

사람이라고는 두 명의 등대지기뿐인 섬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던 이들은 서서히 광기에 물들어 간다.

여기에 태풍으로 교대하러 오던 배마저 끊기자 급기야 이들은 무서운 파국으로 치닫는다.

 

영화는 특이하게 두 명의 토마스가 등장한다.

노련한 선임 등대지기 토마스(윌렘 대포)는 등대를 지배하는 신이다.

 

무섭게 군림하며 마치 올림포스산에서 천상의 불빛을 지키는 제우스 신처럼 오로지 등대의 불빛을 자신만 관리하려고 든다.

온갖 허드렛일과 힘든 일을 하며 선임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신참 등대지기 토마스(로버트 패틴슨)는 그런 그에게 저항하며 끊임없이 불빛에 다가가려 한다.

 

에거스 감독은 두 명의 대립을 마치 제우스와 인간을 위해 불을 훔치려는 프로메테우스처럼 묘사했다.

직접적인 영상으로도 이를 표현했고 두 명의 대립구도를 이처럼 몰고 갔다.

 

하지만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의 비유가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신참 토마스가 다가가려는 등대 불이 과연 프로메테우스의 불과 등가적 가치를 지녔는지 영화 속에서 전혀 가늠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임과 신참 등대지기의 대립은 헤게모니 싸움에 가깝다.

선임 토마스에게 등대의 불빛은 자신의 권위를 표현하는 수단이자 존재의 이유다.

 

그렇기에 신참이 보기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그는 등대 위에서 서슴없이 벌인다.

반면 신참에게는 등대 불이 다가가야 할 목표다.

 

등대지기를 직업으로 삼은 이상 과거를 잊고 새 출발을 위한 여정의 목표인 셈이다.

그 앞에 가로막고 선 선임 토마스는 그저 권위를 내세워 무조건 복종을 강요하는 못된 상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럼에도 신참이 대들지 못하는 것은 선임의 평가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등대지기들의 모습은 요즘 우리 사회의 일반 기업들과 다르지 않다.

 

규모가 작고 공간이 절해고도일 뿐이다.

여기서 서서히 미쳐가는 신참의 모습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을 연상케 한다.

 

외딴섬 등대는 '샤이닝'에 나오는 폭설로 고립된 호텔과 다를 바 없다.

또 신참의 광기가 끓어오르는 등대의 보일러실은 '샤이닝'에 나오는 호텔 보일러실을 닮았다.

 

그 속에서 벌이는 두 사람의 대결 또한 샤이닝의 잭 니컬슨이 악령들과 벌이는 사투를 떠오르게 한다.

에거스 감독은 샤이닝 같은 구성을 통해 본격 공포 스릴러를 노렸으나 샤이닝 같은 공포와 긴장을 주기에는 역부족인 영화가 돼버렸다.

 

무엇보다 그런 장치들이 부족하다.

두 사람이 등대 속에서 변해가는 모습들이 당위성을 갖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느닷없이 등장하는 그리스 신화를 흉내 낸 사이렌과 갈매기의 등장을 비롯해 이야기가 두서없이 뛰어다닌다.

아울러 신참의 변화도 서서히 비등점을 향해 끓어오르기보다는 갈매기에 대한 선원들의 속설을 들은 뒤 폭탄처럼 폭발한다.

 

신참에게는 그런 속설 또한 선임이 자신을 억누르기 위한 덫으로 보여 폭발의 계기가 됐을 수 있겠지만 관객에게는 참으로 느닷없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아울러 흑백 영상도 공포보다는 답답한 느낌을 준다.

 

일부러 거칠고 폐쇄적인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흑백으로 찍은 것으로 보이지만 누아르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싶다.

오히려 컬러 촬영이 을씨년스럽고 스산한 노바스코샤의 풍경을 부각하며 영화의 분위기를 더 살렸을 것으로 보인다.

 

블루레이 타이틀은 1080p 1.19 대 1 화면비를 지원한다.

DTS HD MA 5.1 채널의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괜찮다.

 

저음이 낮고 무겁게 울려 영화 분위기를 잘 살렸다.

부록으로 삭제 장면과 제작과정, 등대 촬영 등이 HD 영상으로 들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부록들은 한글 자막을 지원하지 않는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고립된 섬에서 미쳐가는 등대지기를 다룬 이 영화는 4 대 3 화면비로 폐소공포증을 느끼게 한다.
고참 등대지기를 연기한 윌렘 대포는 유튜브 영상 등을 보며 등대지기의 생활을 배웠다.
훈련시킨 갈매기를 이용해 신참 등대지기를 공격하는 장면을 촬영. 그가 때려죽이는 갈매기는 고무로 만든 인형이다.
로버트 에저스 감독이 연출과 제작, 공동 각본을 담당했다.
감독은 이 작품의 아이디어를 '더 위치' 투자를 진행할때인 2012년 동생 맥스 에거스에게서 얻었다.
에저스 감독은 허먼 멜빌의 소설부터 실제 등대지기의 일기, 사라 오르네 주잇의 작품 등에서 영감을 얻어 대사를 구성했다.
파나비전 밀레니엄 XL2 카메라와 흑백 더블-X 5222 필름, 빈티지 발타 렌즈를 이용해 촬영. 발타렌즈는 1918~1938년에 제작됐다.
제작진은 1881년 출간된 등대 서적을 참고해 캐나다 노바스코샤 케이프 포추에 등대 세트를 만들어 촬영했다. 16마일까지 빛이 뻗어나가는 렌즈도 서적과 박물관 렌즈를 참고해 만들었다.
로버트 패틴슨이 연기한 토마스의 얼굴은 코엔 형제의 영화 '위대한 레보스키'에서 영감을 받았다.
독수리에게 간을 쪼인 프로메테우스처럼 토마스는 갈매기들에게 살을 뜯긴다. 제작진은 노바스코샤의 악천후 때문에 고생하며 촬영했다.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라이트하우스 (1Disc) : 블루레이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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