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0년이 다 돼 가지만 아직도 유럽에서 나치는 금기시된 단어다.
오죽하면 하켄크로이츠의 사용을 아직도 금하고 있다.
하물며 독일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아직도 원죄 의식을 갖고 있는 탓에 나치 독일을 입에 올리는 것을 꺼린다.
그래서 그들의 시각에서 다룬 제 2 차 대전 관련 영화가 드물다.
볼프강 피터젠 감독의 '특전 유보트'가 주목을 받았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올리버 히르쉬비겔 감독이 만든 '몰락-히틀러와 제 3 제국의 종말'(2004년)은 나치 독일, 그 중에서도 수괴라고 할 수 있는 히틀러를 정면으로 다뤘다.
제 2 차 세계대전 막바지, 패전을 눈 앞에 둔 히틀러가 자살하기까지 마지막 2주를 다룬 이 영화는 당연히 전세계에서 논란이 됐다.
독일인의 시각으로 히틀러를 다뤄서가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켰다는 이유에서다.
영화 속에서 비서와 아이들에게 다정다감하게 대하는 히틀러는 모습은 이웃집 노인 같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종전 직전 불안과 초조에 사로잡힌 히틀러의 신경질적인 분노와 추레한 모습, 아울러 살 길을 찾는 제 3 제국 실력자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까지 가감없이 솔직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이를 통해 영화는 전쟁의 광기와 비극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치에게 처참하게 버림 받는 독일 국민들의 모습은 그들도 피해자라는 변명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독일 국민은 동정받을 가치가 없다. 그들이 우리를 선택했으니까."라는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의 대사가 고백처럼 울린다.
결국 감독이 "우리의 관점에서 나치를 재평가해야 할 때"라는 말이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브루노 간츠의 뛰어난 연기와 더불어 전쟁 막바지 제 3 제국의 모습을 가장 리얼하게 그린 수작이다.
16 대 9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은 그저 그렇다.
어두운 부분의 디테일이 떨어지고 블록노이즈도 나타난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은 없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이 영화는 히틀러의 비서였던 트라우들 융에의 회고록과 요하임 페스트가 쓴 책 '몰락'을 토대로 제작됐다. 뮌헨 양조장집 딸인 트라우들 훔프스(맨 오른쪽)는 1942년 총통 비서가 돼 라스텐부르크에 있는 볼프산체에서 근무했다. 그는 1943년 친위대 장교 한스 융게와 결혼해 트라우들 융게가 됐으며, 남편은 1년 뒤 노르만디 상륙작전때 전사했다. 히틀러는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온 브루노 간츠가 연기. 그는 핀란드 공영방송 YLE에 보관돼 있던 히틀러 육성녹음 테이프를 듣고 그의 억양은 물론 손을 떠는 모습까지 그대로 연기했다. 이 영화는 히틀러의 인간적인 면모를 다정다감하게 그린 점이 국제적으로 문제가 됐다. 제작진은 "악인도 선한 면모를 보일 때가 있다"며 히틀러의 다양한 측면을 다뤘다고 설명했다. 히틀러가 꿈꿨던 천년제국의 수도인 베를린의 미래 조감도. 알베르트 슈페어가 설계했다. 슈페어는 전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2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66년 석방됐다. 1981년 런던서 사망했다. 히틀러에게 철십자 훈장을 받은 12세 소년은 알프레드 체크의 실화다. 폴란드 골드나우 출신의 체크는 소련군과 전투 중 부상당한 독일군 12명을 수레로 구해내 훈장을 받았다. 훈장을 받는 모습이 나치 선전영화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체크는 베를린 방위전 중 폐에 총상을 입었고, 체코 포로수용소로 끌려갔다가 1947년 석방돼 폴란드까지 걸어서 돌아갔다. 폴란드에서는 공산당원이 된 뒤 탄광에서 일했거 64년 서독 라인란트로 이주해 막노동을 하며 살았다. 비서 융에를 연기한 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라. 베를린 총통관저의 지하벙커에서 근무했던 융에는 히틀러의 유언장을 타이핑했다. 전후 소련에 체포됐지만 풀려난 뒤 비서와 과학기자로 일했고, 2002년 암으로 사망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만큼은 아니지만 티거 전차를 그럴 듯 하게 재현했다. 독일에서 제작하다보니 나름대로 거리를 둔다고 뒀지만 아무래도 독일국민에 대한 동정심이 곳곳에 보인다. 막바지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독일 사람들의 모습을 곳곳에 담았다. 히틀러는 에바 브라운과 결혼을 마치고 1945년 4월30일 권총으로 자살했다. 이후 그의 측근들이 유언에 따라 두 사람의 시체를 소각했다. 히틀러가 죽고나서 5월7일 독일은 항복했다. 괴벨스도 부인과 아이들을 죽인 뒤 자살했다. 영화 초반과 말미에 실제 모습이 나오는 융에는 전쟁 당시 유대인 학살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히틀러의 비서가 되던 날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에 나오는 쇼피 숄이 처형된 날이라는 것을 안 뒤, "몰랐다는 것이 결코 면죄가 될 수 없다. 나이가 어려도 현실을 알고 선택할 수 있었다"는 고백을 했다. 이 영화는 2005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제작자인 베른트 아이힝거는 2011년 1월 61세 나이에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오죽하면 하켄크로이츠의 사용을 아직도 금하고 있다.
하물며 독일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아직도 원죄 의식을 갖고 있는 탓에 나치 독일을 입에 올리는 것을 꺼린다.
그래서 그들의 시각에서 다룬 제 2 차 대전 관련 영화가 드물다.
볼프강 피터젠 감독의 '특전 유보트'가 주목을 받았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올리버 히르쉬비겔 감독이 만든 '몰락-히틀러와 제 3 제국의 종말'(2004년)은 나치 독일, 그 중에서도 수괴라고 할 수 있는 히틀러를 정면으로 다뤘다.
제 2 차 세계대전 막바지, 패전을 눈 앞에 둔 히틀러가 자살하기까지 마지막 2주를 다룬 이 영화는 당연히 전세계에서 논란이 됐다.
독일인의 시각으로 히틀러를 다뤄서가 아니라,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켰다는 이유에서다.
영화 속에서 비서와 아이들에게 다정다감하게 대하는 히틀러는 모습은 이웃집 노인 같다.
하지만 그런 모습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종전 직전 불안과 초조에 사로잡힌 히틀러의 신경질적인 분노와 추레한 모습, 아울러 살 길을 찾는 제 3 제국 실력자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까지 가감없이 솔직하게 카메라에 담았다.
이를 통해 영화는 전쟁의 광기와 비극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치에게 처참하게 버림 받는 독일 국민들의 모습은 그들도 피해자라는 변명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독일 국민은 동정받을 가치가 없다. 그들이 우리를 선택했으니까."라는 나치 선전장관 괴벨스의 대사가 고백처럼 울린다.
결국 감독이 "우리의 관점에서 나치를 재평가해야 할 때"라는 말이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브루노 간츠의 뛰어난 연기와 더불어 전쟁 막바지 제 3 제국의 모습을 가장 리얼하게 그린 수작이다.
16 대 9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은 그저 그렇다.
어두운 부분의 디테일이 떨어지고 블록노이즈도 나타난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은 없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이 영화는 히틀러의 비서였던 트라우들 융에의 회고록과 요하임 페스트가 쓴 책 '몰락'을 토대로 제작됐다. 뮌헨 양조장집 딸인 트라우들 훔프스(맨 오른쪽)는 1942년 총통 비서가 돼 라스텐부르크에 있는 볼프산체에서 근무했다. 그는 1943년 친위대 장교 한스 융게와 결혼해 트라우들 융게가 됐으며, 남편은 1년 뒤 노르만디 상륙작전때 전사했다. 히틀러는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온 브루노 간츠가 연기. 그는 핀란드 공영방송 YLE에 보관돼 있던 히틀러 육성녹음 테이프를 듣고 그의 억양은 물론 손을 떠는 모습까지 그대로 연기했다. 이 영화는 히틀러의 인간적인 면모를 다정다감하게 그린 점이 국제적으로 문제가 됐다. 제작진은 "악인도 선한 면모를 보일 때가 있다"며 히틀러의 다양한 측면을 다뤘다고 설명했다. 히틀러가 꿈꿨던 천년제국의 수도인 베를린의 미래 조감도. 알베르트 슈페어가 설계했다. 슈페어는 전후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2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66년 석방됐다. 1981년 런던서 사망했다. 히틀러에게 철십자 훈장을 받은 12세 소년은 알프레드 체크의 실화다. 폴란드 골드나우 출신의 체크는 소련군과 전투 중 부상당한 독일군 12명을 수레로 구해내 훈장을 받았다. 훈장을 받는 모습이 나치 선전영화에 등장해 유명해졌다. 체크는 베를린 방위전 중 폐에 총상을 입었고, 체코 포로수용소로 끌려갔다가 1947년 석방돼 폴란드까지 걸어서 돌아갔다. 폴란드에서는 공산당원이 된 뒤 탄광에서 일했거 64년 서독 라인란트로 이주해 막노동을 하며 살았다. 비서 융에를 연기한 알렉산드라 마리아 라라. 베를린 총통관저의 지하벙커에서 근무했던 융에는 히틀러의 유언장을 타이핑했다. 전후 소련에 체포됐지만 풀려난 뒤 비서와 과학기자로 일했고, 2002년 암으로 사망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만큼은 아니지만 티거 전차를 그럴 듯 하게 재현했다. 독일에서 제작하다보니 나름대로 거리를 둔다고 뒀지만 아무래도 독일국민에 대한 동정심이 곳곳에 보인다. 막바지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독일 사람들의 모습을 곳곳에 담았다. 히틀러는 에바 브라운과 결혼을 마치고 1945년 4월30일 권총으로 자살했다. 이후 그의 측근들이 유언에 따라 두 사람의 시체를 소각했다. 히틀러가 죽고나서 5월7일 독일은 항복했다. 괴벨스도 부인과 아이들을 죽인 뒤 자살했다. 영화 초반과 말미에 실제 모습이 나오는 융에는 전쟁 당시 유대인 학살을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히틀러의 비서가 되던 날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에 나오는 쇼피 숄이 처형된 날이라는 것을 안 뒤, "몰랐다는 것이 결코 면죄가 될 수 없다. 나이가 어려도 현실을 알고 선택할 수 있었다"는 고백을 했다. 이 영화는 2005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올랐다. 제작자인 베른트 아이힝거는 2011년 1월 61세 나이에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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