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은 참으세요

부부였던 줄스 닷신 감독과 멜리나 메르쿠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 '페드라'와 '일요일은 참으세요'(Never on Sunday, 1960년)이다.
그 중 '일요일은 참으세요'는 국내에서 상영되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주인공인 창녀를 떠받들고, 미국을 비판했다는 이유에서다.
그 바람에 정작 미국에서는 아카데미 주제가상까지 받은 멜리나 메르쿠리의 주제가도 국내에서는 한동안 금지곡이 됐다.

실제로 보면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지만 의외로 사회비판적인 정치색이 강하다.
영화 속에서 그리스 창녀는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알고 그리스 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존감이 강한 반면, 미국인 철학자는 잘난 체 하고 남을 무시해 타인의 삶을 바꾸려 든다.

결국 영화는 도덕적이고 평화주의자 행세를 하며 잘난척 하는 미국 문화에 대한 조롱과 한때는 긍지 높았던 그리스문화가 자본주의에 물들어 쇠퇴한 것에 대한 자기 반성이 깔려 있다.
심지어 미국인 철학자의 이름은 고대 그리스 작가인 호메로스에서 딴 호머이지만, 유사 발음을 이용해 여자와 사랑을 나누려 하지 않는 그를 조롱하고 있다.

닷신 감독이 자긍심 높은 여주인공을 하필 창녀로 설정한 것도 돈만 밝히는 그리스 기득권층 및 남성들에 대한 비판으로 보인다.
거리의 여자만도 못하다는 간접적인 질책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이면에는 여성들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를 다시 봐야 한다는 페미니즘적 시각도 읽힌다.
매카시즘 열풍때 공산주의자로 몰려 미국을 떠나야 했던 닷신 감독과 사회주의정권에서 문화부장관까지 지낸 멜리나 메르쿠리의 정치적 성향과도 무관치 않은 듯 싶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개봉 당시 그리스 사람들에게는 꽤나 유쾌한 영화였을 것이다.
전성기 때 메르쿠리의 연기와 노래를 보고 들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반가운 작품이다.

1.66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좋지 않다.
디테일이 뭉개지고 선명도도 떨어진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지만 모노 음향이나 다름없고 부록은 전혀없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거리 여자들의 힘찬 발걸음으로 영화를 시작하고 끝맺음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줄스 닷신 감독의 아내이며 나중에 문화부장관까지 지낸 멜리나 메르쿠리. 주인공인 창녀 일리아를 연기.

자칭 미국인 철학자로 나온 남자 주인공이 줄스 닷신 감독이다. 그는 대본도 쓰고 주연과 연출까지 했다.

그리스 문화의 상징인 파르테논 신전. 메르쿠리는 문화부장관이 된 뒤 영국이 가져간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상 반환을 열심히 펼쳤다. 아테네 중심가에는 그만큼 그리스 문화를 사랑한 그를 기리는 동상이 서 있다.

제목은 주인공 일리아나가 몸을 팔아도 일요일 만큼은 쉬면서 자기 인생을 즐긴다는 의미를 담았다.

영화는 창녀 일리아가 모든 남성들의 숭배를 받는 여성으로 묘사했다. 자유분방한 기질과 그리스의 노래와 연극을 사랑하며 절대 돈에 굴복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그리스인의 자긍심을 지키는 역할이다.

메르쿠리는 이 역할로 1960년 제 13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그가 부른 주제가는 제 33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받았다.

영화를 보다보면 뒤늦게 1964년 제작된 할리우드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가 떠오른다. 그리스 신화 '피그말리온'을 토대로 만든 '마이 페어 레이디'는 말괄량이 촌뜨기 처녀를 교양있는 숙녀로 탈바꿈시키는 내용. 오드리 헵번이 맡았던 여주인공 이름인 일라이자도 공교롭게 메르쿠리가 연기한 일리아와 비슷하다.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나중에 브로드웨이 연극으로도 제작됐다. 정작 미국에서는 상도 받은 영화를 미국인을 조롱했다는 이유로 국내에서 박정희 정권의 처사가 한심하다.

		일요일은참으세요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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