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렌스 힐이 주연한 '튜니티' 시리즈는 국민학교 시절인 1970년대에 아주 유명한 서부극이었다.
'내 이름은 튜니티' '튜니티라 불러다오' '아직도 내 이름은 튜니티' 등 그가 버드 스펜서와 형제로 등장하는 튜니티 시리즈는 당시 여타의 서부극과 다른 배꼽을 빼놓을 만큼 웃기고 재미있는 코믹 서부극이었다.
그래서 70년대는 물론이고 80년대에도 설, 추석 연휴때마다 TV에서 시리즈를 자주 틀어주곤 했다.
'무숙자'(My Name Is Nobody, 1973년)도 마찬가지.
헨리 폰다와 함께 테렌스 힐이 주연한 이 영화는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원안을 만들고 토니노 발레리가 감독을 맡았다.
악당들에게 쫓기는 전설적인 총잡이 잭(헨리 폰다)과 그를 추앙하는 젊은 떠돌이 노바디(테렌스 힐)가 귀신같은 총솜씨로 악당들을 물리치는 내용이다.
사실 테렌스 힐이 등장한 튜니티 시리즈보다 재미는 약간 떨어지지만, 테렌스 힐의 전매특허처럼 돼버린 상대의 따귀를 때리고 총을 뽑는 코믹 액션만큼은 변함이 없다.
내용과 재미를 떠나 어린 시절 TV 주말의 명화를 보며 즐거워했던 추억이 묻어있기에 과거 사진처럼 소중한 영화다.
아울러 엔니오 모리코네가 담당한 경쾌한 선율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이 주제곡은 너무 유명해서 각종 CF와 TV 프로그램의 배경음악, 라디오 프로그램 등에 곧잘 등장했다.
제목인 무숙자는 집이 없는 떠돌이란 뜻으로, 요즘 노숙자와 같은 의미다.
원래는 노숙자가 아닌 무숙자라는 말을 썼다.
최근 국내에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1080p 풀HD의 2.3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한다.
화질은 좋은 편이 아니며, DVD 타이틀보다 약간 나아진 정도.
잡티와 필름 손상 흔적이 그대로 나타나고 중경 원경의 디테일이 떨어진다.
하지만 클로즈업의 선명도나 색감은 괜찮은 편.
음향은 DTS-HD 2.0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은 전무하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무숙자의 상징처럼 돼버린 장면. 귀뚜라미를 잡아서 기절시킨 다음 물 위에 띄워놓고 물고기가 무는 순간을 기다려 몽둥이로 후려친다. 무숙자만의 독특한 낚시법이다.
영원한 튜니티, 테렌스 힐. 1939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태어난 그의 이탈리아 이름은 마리오 지로티. 1970년 엔조 바르보니 감독의 '내 이름은 튜니티' 등 튜니티 시리즈로 인기를 끈 그는 1984년 돈 까밀로 시리즈인 '신부님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의 주연 제작 감독을 맡았고, 90년대에도 간간히 영화에 출연했다.
주세페 루졸리니와 아르만도 나누지가 촬영한 시적인 와이드 영상이 펼쳐진다.
수십 명의 악당이 몰려오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인데, 엔니오 모리코네는 그때마다 바그너의 '발퀴레' 선율을 편곡해 사용했다.
튜니티의 전매특허 액션이 여기서도 등장한다. 총뽑는 속도가 귀신처럼 빠른 노바디는 마주 선 상대방의 귀싸대기를 후려치고 미처 상대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권총을 뽑아댄다. 그러기를 수십번 반복하면 상대는 녹초가 된다. 어린 시절 기존 서부극에 비해 너무도 황당했던 액션에 한참을 웃었다.
묘지의 묘비 중 하나에는 샘 페킨파 감독에 이름이 적혀 있다.
엔니오 모리코네는 막판 총격전 시퀀스에서 자신이 음악을 담당했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의 프랭크 테마 일부를 사용했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 1976년에 개봉했다. 국내 영화 중에도 같은 제목의 작품이 있다. 신상옥 감독이 1968년에 만든 영화로, 신영균 최은희가 출연했다.
튜니티도 그렇고 무숙자도 그렇고 모두 아이러니의 상징같은 존재다. 총을 차고 있으면서도 싸움은 언제나 뺨을 때리며 시작한다. 또 말도 없으면서 항상 말안장을 짋어지고 다닌다. 사람이 짊어진 말 안장, 총보다 빠른 따귀때리기 등 테렌스 힐의 서부극은 부조리의 상징이자 세상을 비꼬는 유희같다.
언제나 정의의 사나이만 연기했던 헨리 폰다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이후 무법자로 등장했다. 참 잘 어울렸다. 이 작품은 그의 마지막 서부극이다.
헨리 폰다는 영어판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더빙했다.
헨리 폰다가 수십 명의 악당과 혼자서 싸우는 장면은 슬로 모션과 정지 화면이 적절하게 섞이면서 독특한 그림을 보여준다.
뉴올리언즈 거리 풍경을 다룬 이 장면에서 잘 보면 호텔 간판 뒤로 커버를 씌운 채 창문에 매달려 있는 에어컨 실외기가 보인다.
테렌스 힐과 헨리 폰다의 마지막 대결은 헨리 폰다의 '황야의 결투' 등 전통 서부극에 대한 감독의 오마주같다. 사진사는 플래시가 필요없는 환한 대낮인데도 플래시를 터뜨린다.
배경에 보이는 증기선 프레지던트는 작품 속 시대 배경보다 몇 십년 뒤인 1924년에 건조됐다. 당시 신시내티로 불렸던 이 배는 1934년까지 선명, 즉 이름이 없었다.
이발사가 날카로운 면도날을 테렌스 힐의 목에 들이대는 순간, 이발사는 움찔한다. 카메라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며 이 장면이 보이는 순간, 엔니오 모리코네의 경쾌한 주제가가 울린다. 절로 웃음이 터져나오는 경쾌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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