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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종말

울프팩 2015. 3. 8. 08:23

폭력 미학의 거장 샘 페킨파 감독의 작품들은 가슴 떨리는 설레임이 있다.

걸작 '관계의 종말'(Pat Garrett & Billy The Kid, 1973년)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 아는 서부극을 눈물 나도록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서정으로 그려낸 걸작이다.

다만 국내 제목을 누가 이렇게 바꿔 놓았는 지 모르겠지만, 황당한 제목이 작품의 진가를 가려 버렸다.

 

내용은 1850~80년대 실존했던 미국의 전설적인 무법자 빌리 더 키드와 그를 사살한 보안관 팻 개럿의 숙명적인 대결을 다뤘다.

언제나 그렇듯 페킨파 감독은 죽음의 순간을 특유의 슬로 모션으로 다뤘다.

 

숨 막히는 긴장의 순간 폭발하듯 총격전이 벌어지고, 선명한 붉은 피를 뿌리며 사람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느리게 묘사한 장면은 마치 한 편의 무용을 보는 것 같다.

가장 잔혹한 장면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갖는 역설적인 순간이다.

 

액션 장면과 더불어 이 작품에서 두고 두고 못잊을 명장면은 바로 포크 가수 밥 딜런이 부른 'Knockin' on Heaven's Door'가 흐르는 부분이다.

보안관 팻 개럿을 위해 마지못해 따라나선 늙은 카이보이 남편을 지키기 위해 아내가 총을 들고 따른다.

 

악당들과 요란한 총격전 끝에 그들을 격퇴한 아내는 남편을 찾는다.

뒤를 돌아보자, 멀리 석양이 비끼는 강가로 남편이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아내가 울며 달려가고, 남편은 힘없이 주저 앉는다.

남편이 석양을 바라보며 천천히 죽어가는 동안 무너지듯 따라 앉은 아내는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그 순간, 이 영화를 위해 밥 딜런이 작곡한 노래가 흐른다.

Mama, take this badge off of me(엄마, 이 뱃지를 떼어줘)

I can't use it anymore(더 이상 쓸 수 없어)

It's gettin' dark, too dark to see(점점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
I feel I'm knockin' on heaven's door(내가 천국의 문을 두드리나봐)

 

Knockin on Heaven's Door -  밥 딜런 (Pat Garrett & Billy the Kid 중에서)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오는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장면이다.

서부극을 이토록 우수에 찬 영상 시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보다 앞서 만든 그의 유명한 출세작 '와일드 번치'(http://wolfpack.tistory.com/entry/와일드-번치-SE)를 닮았다.

아이들이 등장하고, 전갈 대신 닭싸움이 나오며 배신과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 들이는 안티 히어로를 위한 송가라는 점에서 '와일드 번치'를 떠올리게 만든다.

 

배역의 독특함도 인상적이다.

페킨파 감독의 '철십자 훈장'에서 주연을 맡은 제임스 코번 외에 두 명의 가수가 등장한다.

 

배우로도 이름을 떨친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빌리 더 키드를 맡았고, 이 작품이 영화 데뷔작인 밥 딜런이 키드의 추종자로 나온다.

의외의 배역이 잘 어울린 느낌이다.

 

많은 평론가들이 걸작으로 꼽은 이 작품은 여러모로 수난을 겪었다.

우선 페킨파 감독이 제작 초기부터 제작사와 갈등을 겪는 바람에 촬영이 순조롭지 못했고, 급기야 제작사가 가위질을 해 2시간 분량의 영화를 106분으로 난도질했다.

 

이에 화가 난 샘 페킨파 감독은 스크린에 오줌을 갈기기도 했다.

이 작품이 온전히 복원된 것은 페킨파 감독이 죽고 나서 4년 뒤인 1988년이었다.

 

2.25 대 1 레터박스 포맷으로 국내 출시된 DVD 타이틀은 다행히 2시간 분량의 복원판을 실었다.

다만 화질이 좋지 않아 뭉개지는 부분이 많고 어두운 부분의 디테일이 제대로 살지 않는다.

 

그나마 온전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타이틀이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2.0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은 전혀 없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제임스 코번이 보안관 팻 개럿을 연기. 

1925년에 태어난 샘 페킨파 감독은 제 2차 세계대전 때 해병대에 입대해 전쟁을 치렀고, 제대 후 영화계에 입문했다. 폭력 장면을 독특하게 묘사해 폭력미학의 거장, '블러디 샘'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알코올과 약물 중독으로 말년을 험하게 보냈다. 막판 정신착란까지 보인 그는 59세라는 많지 않은 나이에 타계했다. 

아이들과 닭이 자주 등장하는 장면들은 감독의 전작 '와일드 번치'에서 전갈을 갖고 놀던 아이들을 연상케 한다. 

포크 가수 밥 딜런이 키드의 추종자로 등장. 이 영화의 음악을 맡은 그는 주제가나 마찬가지인 명곡 ''Knockin' on Heaven's Door'를 작곡해 직접 불렀다. 

촬영은 멕시코의 듀랑고에서 했다. 원래 몬티 헬만이 감독으로 내정됐으나 그의 작품이 흥행 실패하면서 페킨파가 맡게 됐다. 

강가에 주저 앉아 천천히 죽어가는 남편을 보며 아내가 눈물을 흘릴 때 밥 딜런이 부르는 'Knockin' on Heaven's Door'가 흐르는 장면은 영화 사상 손에 꼽을 만한 명장면이다. 아름다운 영상과 서정적인 노래가 어우러져 비장함을 극대화시켰다. 

원래 키드 역은 보 홉킨스가 맡기로 했으나 감독이 가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을 기용했다. 실존 인물 키드는 21명을 죽인 끝에 21세때 사살됐으나, 크리스토퍼슨은 출연 당시 36세여서 나이가 많다는 논란이 일었다. 

인트로 초반 총격전과 결말 부분 등은 모두 페킨파 감독이 구상했다. 제작사는 비용 때문에 페킨파 감독에게 일부 장면을 찍지 못하게 했으나, 감독은 몰래 점심 시간을 이용해 촬영했다. 

촬영 내내 보드카를 물통에 담아서 마시던 페킨파 감독은 알코올 중독이 심해졌고 나중에는 촬영이 힘든 지경까지 이르렀다. 

페킨파 감독은 제작사 뿐 아니라 주연인 크리스토퍼슨하고도 여러번 다퉜다. '와일드 번치'에서 멕시코 반란군 장군으로 나온 에밀리오 페르난데즈가 치섬 일당에게 치욕을 당하고 죽는 멕시코 농부로 등장.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은 촬영 중 배우로 출연한 유명 가수 리타 쿨리지와 사랑에 빠져 촬영 후 결혼했다. 

원래 페킨파 감독은 로저 밀러에게 영화음악을 맡길 예정이었으나, 크리스토퍼슨의 제안으로 밥 딜런에게 맡겼고 명곡 'Knockin' on Heaven's Door'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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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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