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불멸의 연인(블루레이)

울프팩 2019. 4. 16. 07:19

1827년 3월 26일, 악성(樂聖)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고 나서 세 통의 편지가 발견됐다.

 

모든 재산을 그에게 남긴다는 사실상의 유서나 다름없는 편지는 누구에게 남긴 것인지 이름이나 작성 날짜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불멸의 연인에게'라고만 쓰여 있었다.

 

후대 사가들과 음악학자들은 베토벤이 지목한 불멸의 연인이 누구인지 각종 기록을 통해 추적하고 추측했지만 정확히 밝혀내지 못했다.

버나드 로즈 감독이 만든 영화 '불멸의 연인'(Immortal Beloved, 1994년)은 바로 이 편지에 얽힌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과정을 다뤘다.

 

베토벤의 비서 노릇을 했던 안톤 쉰들러가 편지를 발견해 베토벤이 생전에 가까웠던 세 여인들을 찾아다니며 편지의 주인공을 찾는 이야기다.

이를 통해 베토벤의 생애와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까지 조망했다.

 

전기영화이지만 미스터리한 요소를 가미해 마치 추리극처럼 펼쳐지는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영화는 상상력이 지나쳤다.

 

로즈 감독은 세 여인 가운데 한 사람을 불멸의 연인으로 지목하면서 그 이유를 밝히는데 이는 전적으로 감독의 상상력이 빚어낸 허구다.

감독은 일부러 제수와 조카 카를에게 얽힌 사연을 과장하고 비틀어 극적인 요소를 강조한 것이다.

 

마치 밀로스 포먼 감독이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극적 재미를 위해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를 갈등의 관계로 묘사한 것과 같은 이치다.

실제 기록이나 후대 학자들의 연구들을 종합해 봐도 로즈 감독의 결론을 뒷받침할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수수께끼 같은 불멸의 연인은 누구일까

여기서 역사적 사실로 들어가보면 베토벤은 평생 혼자 살았다.

일부러 독신을 고집한 것은 아니다.

 

연애도 여러번 했고 청혼을 했거나 거꾸로 받기도 했지만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래서 불멸의 연인에 대해 여러 사람이 물망에 올랐다.

 

학자들은 베토벤이 피아노를 가르쳤던 줄리에타 구이차르디와 요제피네 폰 브룬스비크, 안토니 브렌타노 등 세 명의 여성중 하나가 불멸의 연인이 아니었을까 추측했다.

베토벤은 이 가운데 줄리에타에게 피아노 소나타 '월광'을 헌정했다.

 

오래도록 베토벤을 연구한 음악학자 얀 카이에르스는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한 저서 '베토벤'(도서출판 길)에서 요제피네 폰 브룬스비크를 베토벤의 연인으로 확신했다.

요제피네는 재혼하고 나서 베토벤을 다시 만났고, 남편인 슈타켈베르크 남작과 별거하던 시절에 일곱 번째 아이를 가졌다.

 

공교롭게 그 시기에 두 사람은 프라하에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살았다.

요제피네는 그 시기에 임신한 딸에게 거꾸로 읽으면 무명씨(anonym)가 되는 미노나(minona)라는 기묘한 이름을 붙였다.

 

프라하에서 우연히 요제피네를 다시 만난 베토벤은 번개에 맞은 것처럼 잊었던 격정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미 재혼한 요제피네와 베토벤이 다시 결혼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어쩔 수 없이 고통스러운 이별을 했다.

 

그때 베토벤은 편지를 쓰겠다고 약속했고 요제피네는 약혼 선물이나 마찬가지인 정표로 펜을 줬다.

다음날 아침 베토벤은 테플리체로 떠나던 중 엄청난 비 때문에 진창이 된 길에서 우편마차 바퀴가 부서지는 사고를 당했다.

 

로즈 감독은 영화에서 이 에피소드를 다른 여인의 이야기로 바꿨다.

겨우 테플리체에 도착한 베토벤은 여관에 들어가 요제피네가 준 펜으로 '불멸의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 세 통을 썼다.

 

베토벤은 그곳에서 불멸의 연인에게서 소식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으나 아무런 연락이 없자 큰 상처를 안고 떠나 두 번 다시 테플리체에 가지 않았다.

이후 안토니 브렌타노 부부가 체코의 카를로비바리에서 상심한 베토벤을 자택에 머물게 하며 돌봤다.

 

그 바람에 안토니 브렌타노가 세 번째 불멸의 연인 후보로 거론됐다.

훗날 이런 이야기들이 알려지자 요제피네의 집안인 브룬스비크 가문은 불미스럽게 여겨 베토벤과 관련 있는 요제피네의 편지와 일기 등을 모두 없애버렸다.

 

요제피네의 언니 테레제의 일기도 요제피네와 베토벤이 프라하에 함께 머물던 시절에 해당하는 부분만 찢겨 나갔다.

브룬스비크 가문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쏠리도록 말을 퍼뜨렸다.

 

그 바람에 안톤 쉰들러는 줄리에타 구이차르디를 유력한 후보로 지목했다.

어쩔 수 없이 요제피네와 관계가 끝난 베토벤은 그때를 잊지 못해 1816년 '멀리 있는 연인에게'라는 연가곡을 썼다.

 

하필 그 해에 요제피네는 지독한 우울증에 빠졌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져 고립된 채 힘들게 살다가 1821년 눈을 감았다.

흥미로운 점은 요제피네가 죽기 1년 전, 베토벤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어떤 여인에게 전해달라고 꽤 많은 돈을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맡겼다.

 

그 중개업자는 요제피네 집 근처에 살고 있었다.

요제피네가 이상한 이름을 붙였던 딸 미노나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홀로 살다가 1897년 세상을 떠났다.

 

영화의 효과와 한계

로즈 감독은 이런 이야기에서 일부를 차용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영화에 뒤섞어 완전히 새로운 픽션으로 만들었다.

허구를 도입한 극적인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방식은 영화에 대한 흥미를 끌어올리고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나 전기 영화로서는 한계를 갖고 있다.

 

특히 역사적 인물의 위대함이나 특징을 표현하는데 많은 제약이 따른다.

이 영화도 베토벤의 연인에 대해서만 집중한 나머지 그가 얼마나 음악사적으로 파격적인 인물이었는지를 묘사하는데는 실패했다.

 

베토벤은 피아노 배틀에서 져본 적이 없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고 화음을 중시한 당시 작곡가들과 다르게 과감하게 불협화음을 사용해 곡의 느낌을 강조했다.

피아노 소나타 '월광'에서 불협화음인 감7화음을 사용해 불안하고 장중한 느낌을 강조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또 말년에 베토벤이 작곡한 '현악 4중주 14번'은 보통 4악장으로 구성된 다른 작곡가들의 현악 4중주와 달리 무려 7악장으로 구성됐고 악장 사이에 휴지부가 없어 무려 각 악기 연주자들이 쉬지 않고 내리 연주하도록 했다.

이런 독창성과 기발함, 시대를 앞서간 파격 등이 베토벤을 당대 최고의 작곡가로 만들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런 베토벤의 위대함과 천재성을 엿보기는 힘들다.

물론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그런 점을 모두 그리기는 힘들 수 있다.

 

오히려 극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극적 재미를 통해 베토벤이라는 인물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볼 만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베토벤 역할을 맡아 6개월간 열심히 피아노를 연습한 게리 올드만의 연기가 뛰어났다.

 

아울러 로즈 감독이 워낙 베토벤의 음악을 좋아해서 극적인 순간에 절묘하게 베토벤의 음악을 합치시킨 구성 또한 훌륭했다.

마지막 교향곡 9번 '합창'에서 환희의 송가가 울려 퍼질 때 물 위에 뜬 소년의 모습은 강렬한 감동을 준다.

 

또 조카 카를이 비극적 선택을 하기위해 산으로 올라갈 때 장송곡처럼 흐르는 교향곡 7번이나 귀가 들리지 않아 피아노 위에 엎드려 피아노 소나타 '월광'을 연주하는 장면은 잊지 못할 명장면이다.

한마디로 베토벤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는 흥미를 끌만한 영화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평범한 화질이다.

DVD보다는 디테일이 월등 좋지만 최신 블루레이와 비교하면 아쉬움이 있다.

 

돌비 트루 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적당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리어 채널에서 울리는 천둥 소리 등 채널 별로 소리의 방향감이 좋고, 작렬하는 포탄 소리가 묵직하게 울린다.

 

부록으로 감독의 음성해설, 제작과정, 베토벤 연기 등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는데 음성해설만 한글자막이 빠졌다.

DVD에서는 음성해설에도 한글자막이 들어 있었는데, 블루레이에서 빠져 안타깝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제작진은 이 영화를 1994년에 체코 프라하, 즐린, 브루노 등에서 찍었다.
구이차르디 백작의 딸이었던 줄레이타 구이차르디도 불멸의 연인으로 추정된 여인 중 하나였다. 그는 베토벤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베토벤은 그에게 피아노 소나타 '월광'을 헌정했다.
안소니 홉킨스도 베토벤 역할로 물망에 올랐다.
게리 올드만은 귀마개를 끼고 청각장애가 있던 베토벤을 연기했다.
잉그리드 버그만의 딸 이자벨라 로셀리니가 헝가리 귀족 에르도디 백작부인을 연기.
영화에서 화자로 나오는 안톤 쉰들러를 연기한 예로엔 크라베. 극에서는 쉰들러가 베토벤의 친구이자 비서로 나오지만 실제 그는 사기꾼에 가까웠다. 베토벤의 노트를 수백군데 조작하고 삭제해 전기를 만들어 팔아먹었다.
베토벤은 생전에 절대 쉰들러를 신뢰하지 않았다. 로즈 감독도 쉰들러가 베토벤에 관련된 많은 사실을 조작했다는 점을 알고 있으나 극적 재미를 위해 무시했다.
로즈 감독은 어려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시계태엽장치속의 오렌지'를 보고 삽입된 베토벤의 음악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베토벤의 조카 카를은 강압적인 베토벤의 교육과 기대를 못이겨 자살을 시도했다.
로즈 감독은 기본적으로 대중 음악이 인간성 상실을 부추긴다고 생각해 부정적이다.
교향곡 9번을 비롯해 극 중 베토벤의 음악은 게오르그 솔티 경이 지휘를 했고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가 연주했다.
잊지못할 명장면. 환희의 송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어린 베토벤이 찬란하게 별이 빛나는 물 위에 떠있다. 실로 위대한 인간의 탄생을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베토벤의 제수 요한나를 연기한 조한나 터 스티지. 베토벤은 오랫동안 조카 카를의 양육권을 둘러싸고 요한나와 소송을 했고 어머니로부터 아들을 떼어 놓았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불멸의 연인 (렌티큘러 풀슬립 1000장 넘버링 한정판) : 블루레이 (재번역판)
 
불멸의 연인 (2Disc 초도한정판) : DVD
 
예스24 | 애드온2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미테이션 게임(블루레이)  (0) 2019.04.25
미쓰백 (블루레이)  (0) 2019.04.18
나의 산티아고(블루레이)  (0) 2019.04.14
풀잎들 (블루레이)  (0) 2019.04.12
강철비 (블루레이)  (2) 2019.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