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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테이션 게임(블루레이)

울프팩 2019. 4. 25. 08:16

인류의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한 앨런 튜링은 비운의 천재였다.

그는 사실상 세계 최초의 컴퓨터를 만들었고 인공 지능을 연구했으며 인지 과학을 시작했다.

 

하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화학적 거세를 당했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려졌다'라고 쓴 이유는 경찰 발표 등을 보면 청산가리를 이용한 자살이 유력하지만 독살당했다는 음모론 또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극적인 죽음 이후에도 그는 수십 년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의 업적이 제2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가를 만큼 커다란 기여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워낙 중요한 국가 기밀이어서 노출할 수 없었다.

 

◇튜링의 삶을 다룬 정교한 드라마

모튼 틸덤 감독의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 2014년)은 바로 이러한 앨런 튜링의 삶을 다룬 영화다.

그중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기간 그의 활약에 초점을 맞춰 뛰어난 천재였으나 비극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집중 조명했다.

 

두 시간의 상영 시간에 풀어놓기 벅찬 얘기이지만 틸덤 감독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교차 편집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출발은 1950년대에서 시작해 튜링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과정을 다뤘고, 중간에 도대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제2차 세계대전 기간 그의 활약을 통해 설명했다.

 

반면 중간 중간 나오는 어린 시절 영상에서 평생 그를 지배하게 된 상처이자 추억인 우정과 사랑을 다뤄서 튜링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다뤘다.

틸덤 감독이 시제의 이동이라는 복잡한 방법을 택한 이유는 튜링의 어린 시절이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의 활동, 나아가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교차 편집은 경우에 따라 내용이 헷갈릴 수 있지만 인과 관계를 보여주는 확실한 방법일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각본이 훌륭해야 한다.

 

그레이엄 무어가 쓴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훌륭한 이야기 덕분에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대본으로 꼽히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그 정도로 무어의 시나리오는 사실 관계를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 완성도가 뛰어나다.

 

◇ 비극적인 튜링의 삶

튜링은 어려서 애정을 느꼈던 친구 같은 고교 선배가 급사한 뒤 선배의 뛰어난 지적 능력을 기계로 옮겨보겠다는 생각을 했고 여기서 컴퓨터와 인공지능, 인지과학의 태동으로 이어졌다.

범상치 않은 출발만큼 결과도 놀라웠다.

 

그의 생애에서 가장 빛났던 제2차 세계대전 기간의 활동이 수십 년간 베일에 쌓여 있었던 것도 놀라운 결과와 관련 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연합국, 그중에서도 영국의 최대 고민은 나치 독일군의 암호였다.

 

당시 독일군은 에니그마라는 독특한 암호 발생장치를 사용해서 전 군에 암호전문을 타전했다.

이 암호전문을 토대로 독일의 잠수함인 U보트는 연합국 수송선단의 위치를 파악해 격침시켰다.

 

그 바람에 전쟁 초반 영국은 심각한 물자, 그중에서도 식량 부족에 시달렸고 정치가뿐만 아니라 영국 국민 모두 공포에 떨었다.

그만큼 독일의 에니그마는 보이지 않는 강력한 무기였다.

 

에니그마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타자기처럼 생긴 이 기계의 자판을 두드려 평문을 입력하면 내부의 톱니바퀴가 회전하며 암호 글자로 바꿔 놓는다.

거기에 자동으로 매일 톱니바퀴의 암호체계가 바뀌어서 오늘 A에 해당하는 암호 글자가 내일이면 다른 글자로 바뀐다.

 

따라서 연합국은 매일 자정 전에 이 암호를 풀어야 했다.

영국은 가장 뛰어난 천재들을 지금의 대외정보국(MI6) 암호해독반에 모아 놓고 에니그마를 해독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이때 해결사로 나선 인물이 바로 튜링이다.

수학의 천재였던 튜링은 에니그마 해독을 위해 봄베라는 일종의 컴퓨터인 암호해독기를 혼자 만들었다.

 

거대한 책장 크기의 봄베는 빠른 연산을 하도록 설계된 내부 기계장치를 통해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했다.

여기에 튜링은 일기예보나 '하일 히틀러'처럼 독일군이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패턴을 대입해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에니그마 암호를 풀 수 있었다.

 

덕분에 영국은 U보트의 위험 앞에 놓였던 수많은 수송선을 구할 수 있었고, 반대로 독일군은 승승장구하던 U보트 격침률이 급감하며 거꾸로 U보트가 몰이사냥당하며 제해권을 빼앗기는 결과로 이어졌다.

영화는 이 같은 튜링의 활약을 철저한 고증을 거쳐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사실적인 재현

우선 실제 암호해독반이 있었던 장소인 블레츨리 파크에서 외관 등 일부 장면을 촬영했고 블레츨리 박물관에 보관된 봄베와 똑같은 기기를 제작해 영화에 사용했다.

또 등장인물들이 입고 있는 의상들도 당시 복장들을 그대로 재현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튜링을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실존 인물과 닮지 않아 논란이 일었지만 성격이 괴팍하고 대인 관계가 부족했던 괴짜의 이미지를 훌륭하게 연기했다.

 

튜링을 사랑했던 여인으로 등장한 키이라 나이틀리도 컴버배치와 호흡을 맞춰 안타까웠던 실존 인물들의 관계를 잘 살렸다.

비록 영화 만으로 튜링의 모든 것을 알기는 힘들지만 튜링의 생애 중요했던 순간들을 통해 수십 년간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재미있게 볼 만한 작품이다.

 

그만큼 틸덤 감독의 짜임새 있는 연출과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오스카 포라의 촬영이 빛났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아련한 느낌의 필터링된 색상이 잘 살아 있고 디테일이 뛰어나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채널 분리가 잘 돼 있어서 서라운드 효과가 충분히 살아난다.

 

리어 채널을 적절하게 활용했고, 저음의 울림도 좋다.

부록으로 틸덤 감독과 각본을 쓴 그레이엄 무어의 해설, 제작과정, 앨런 튜링 소개, 암호해독반 소개, 제작자들 질의응답과 삭제 장면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24세때 대학 교수가 된 앨런 튜링은 27세때 MI6에 합류해 암호해독반 팀장을 맡았다. 그는 종전 후 만들던 컴퓨터를 고교 시절 사랑했던 동성 친구의 이름을 따서 크리스토퍼라고 명명했다.
이 영화는 수학자인 앤드류 호지스가 쓴 '튜링: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책을 원작으로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MI6의 암호해독반이 있었던 블레츨리 파크에서 촬영. 원래 이 건물은 007 시리즈의 원작 소설가인 이언 플레밍의 집이었다. 전쟁 당시에는 라디오조립공장으로 위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암호 장치로 꼽힌 나치 독일의 에니그마는 3개의 회전체가 맞물려 돌아가며 암호를 생성했다. 회전체 위치가 매일 달라져 암호체계도 매일 바뀌었다. 영화에서 실물을 이용해 촬영.
실제 튜링이 다닌 셰어본 고교에서 촬영. 그는 이 곳에서 평생의 친구이자 애정 상대였던 크리스토퍼 모컴을 만났다. 모컴 역시 수학 능력이 뛰어나 둘이 힘을 합쳐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었다.
튜링이 15세때 만난 크리스토퍼 모컴은 튜링보다 두 살 많았다. 둘이 친해진 2년 뒤 모컴은 결핵으로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튜링에게 큰 상처였고 동시에 인공 지능과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됐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연기한 조앤 클라크라는 여성 수학자는 튜링이 게이라고 고백했는데도 상관없다며 사랑했다. 튜링의 지성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둘은 6개월간 약혼하기도 했다.
제작진은 블레츨리 파크 박물관에 보관된 튜링이 만든 봄베라는 암호해독기를 그대로 흉내내 만들었다. 제작진은 극적 효과를 위해 봄베의 나무 상자같은 케이스를 벗겨 내부를 드러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튜링처럼 보이도록 가짜 치아를 만들어 붙이고 연기했다.
튜링의 암호해독반에 있었던 존 케인크로스는 구 소련의 스파이였다. 튜링도 이를 알고 있었다. MI6 역시 그가 스파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나 소련의 참전을 끌어내기 위해 일부러 체포하지 않았다.
튜링은 운동도 잘해서 마라톤을 즐겼다. 그는 기벽으로 유명했는데 같은 색이 붙어 있는 것을 싫어해 접시에서 비슷한 색깔의 채소를 열심히 떼어놓았고 상, 하의를 항상 다른 무늬의 옷으로 입었다.
튜링은 종전 후 아놀드 머레이라는 19세 소년과 동거했다. 범죄집단과 어울렸던 머레이는 튜링의 집을 털어 달아났다. 튜링이 이를 신고하며 동성애 사실이 드러났다. 영화와 달리 튜링은 스스로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혔다.
영국 법정은 동성애자인 튜링에게 2년간 투옥될 지, 화학적 거세를 받을지 선택하라고 했다. 튜링은 계속 연구하려고 화학적 거세를 택해 1년간 매주 에스트로겐 호르몬 주사를 맞았다. 이후 우울증이 심해져 1954년 41세때 청산가리가 묻은 사과를 먹고 생을 마감했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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