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와 셀린느가 돌아 왔다.
'비포 선셋' 이후 9년, '비포 선라이즈' (http://wolfpack.tistory.com/entry/비포-선라이즈-비포-선셋)이후 18년 만이다.
세월의 두께는 두 사람의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호리호리하고 가냘펐던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는 주름지고 배가 나왔으며, 결정적으로 두 사람 사이에 쌍둥이 자매가 태어났다.
그렇게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 2013년)은 두 연인의 속절없는 세월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아니 영화 속 연인은 좀 더 현실적으로 돌아 왔다.
1편에서 사랑을 싹 틔우고, 2편에서 안타깝게 사랑을 보낸 그들은 3편에서 세월따라 변해버린 사랑을 이야기한다.
어느덧 아이들이 뛰노는 중년이 된 그들은 왜 과거와 같은 감성을, 과거와 같은 시선과 마음을 보여주지 못하는 지 야속해 한다.
그래서 여느 부부들처럼 휴가지에서 다투고 남편은 호텔 방에 홀로 앉아 착잡한 마음을 달랜다.
그야말로 중년의 부부들이 겪을 수 있는 그 모습 그대로를 카메라에 담았다.
따라서 영화는 꿈과 낭만을, 또는 극적인 이야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영화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전편 같은 가슴 떨림과 시린 아픔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밋밋할 수도 있는 것은, 그 속에서 제시와 셀린느를 따라 함께 18년을 늙어버린 관객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18년 전 20대였다면 얼추 40대일 것이고, 그때 30대였다면 지금은 50줄에 접어들었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관객을 비추는 거울이다.
배우들만 변한 것이 아니라, 그 영화를 본 나도 주름지고 감정이 무뎌졌다.
문득 제시와 다투고 호텔을 뛰쳐나와 "기차에서 가슴 설레게 한 청년은 더 이상 없다"고 중얼거리던 셀린느의 말이 떠오른다.
세월이란 그런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제시의 대사로 대신하고 싶다.
"중년이란 열두살 때보다 조금 더 어려운 것"이라고.
어쩌면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그런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게 두 연인을 바라보면서 든 생각이다.
하지만 영화의 형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너무나 수다스런 두 연인의 대화는 마치 대사로 넘쳐나는 김수현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거기에 컷도 거의 없이 롱 테이크로 한 씬을 길게 가져가니 지루해 보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비엔나와 파리를 훑은 전편들과 달리 풍경도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굳이 그리스 남쪽까지 왜 갔나 싶을 정도로 그림도 심심한 편.
내용은 공감하지만 형식에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1080p 풀HD의 16 대 9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무난한 화질이다.
윤곽선이 깔끔하고 색감이 부드럽다.
화질이 좋지 않은 전편들의 DVD 타이틀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영화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영롱한 피아노 소리가 듣기 좋게 울리며, 공간을 편안하게 감싸준다.
부록은 전혀 없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 play 표시가 있는 사진은 play 버튼을 누르면 관련 동영상이 나옵니다.*
식탁에 둘러앉은 네 쌍의 커플은 두 주인공의 젊은 날과 앞으로 늙어갈 미래를 보여주는 것 같다. 주인공들의 젊은 날을 연상케 하는 커플은 아리아네 라베드(안나 역)와 이아니스 파파도풀로스(아킬레스)가 연기.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는 연기 뿐 아니라 링클레이터 감독과 각본 작업도 함께 했다. 촬영은 크리스토퍼 보두리스가 맡았고, 아리 알렉사 카메라를 이용했다. 링클레이터 감독과 배우들은 극 중 나오는 호텔에 7주간 머물며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그리스 가수 헤리스 알렉슈의 'Gia ena Tango'가 OST로 삽입. 링클레이터 감독은 이 작품을 '비포 선라이즈'에 영감을 준 에이미라는 여자에게 바쳤다. 감독은 에이미와 밤새워 필라델피아를 걸으며 얘기를 나눴는데, 다시 만나지 못했다. 몇 년 뒤 알고보니 에이미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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