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의 영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한(恨)과 정(情)이다.
원망과 분노가 응어리진 것이 한이라면 끈끈한 정서적 유대와 따뜻한 인간애가 버무려진 것이 곧 정이다.
우리네 민족 정서이기도 한 한과 정은 그의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 관계 속에 곧잘 표출된다.
'왕의 남자'에서 공길 일행이 빚는 갈등과 '님은 먼 곳에'에서 시어머니 구박 속에 버티던 며느리가 남남 같은 남편을 찾아 월남으로 떠난 것도 기실 따져 보면 한과 정 때문이다.
'라디오스타'에서 매니저와 한물 간 스타의 관계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번에 내놓은 '사도'(2015년)도 마찬가지다.
비정한 아비가 된 영조가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사실을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해 끈끈하게 그려낸다.
무수리의 몸을 빌어 태어난 서출이라는 한계 때문에 권신들의 힘을 빌어 권좌를 지킬 수 밖에 없었던 영조의 한계와 사도세자가 결국 당쟁의 희생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정략적 배경을 깊이있게 다루지 않았다.
비록 시야가 좁아지기는 했지만 오로지 영조와 사도세자 두 인물에게만 포커스를 맞춘 이야기는 따라가기 쉽고 담백하다.
그만큼 스토리텔링이 잘 이뤄졌다는 뜻이다.
여기에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는 영조와 사도세자가 느꼈을 오욕칠정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특히 눈알을 희번득이며 광기에 사로잡혀 칼을 휘두르는 사도세자를 연기한 유아인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영조를 연기한 송강호는 말이 필요없다.
명불허전이다.
더러 중간 중간 그의 독특한 억양이 섞인 현대극 대사가 간간히 튀어나오는데 그 또한 은근한 웃음을 유발한다.
하지만 '라디오 스타'나 '님은 먼 곳에'와 비하면 크게 미치지 못하는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파고든 집중력은 좋았지만 아무래도 널리 알려진 단선적인 이야기이다 보니 드라마틱하게 펼치는데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결말 부분이 너무 늘어진다.
정조가 어미 앞에서 춤사위를 보여주는 장면을 굳이 그렇게 길게 가져갈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지나친 감정과잉이요, 사족 같은 결말이다.
*play 표시가 있는 사진은 PC에서 play 버튼을 누르면 관련 동영상이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