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스카페이스(4K 블루레이)

울프팩 2019. 10. 28. 00:01

'세상은 나의 것이다.(The World is Yours)'
브라이언 드 팔머(Brian De Palma) 감독의 '스카페이스'(Scarface, 1983년)는 강렬한 문구 만큼이나 화끈한 영화다.

1932년 폴 무니를 유명하게 만든 흑백 영화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쿠바 이민자 출신의 갱이 마약으로 떼돈을 벌었다가 허망하게 스러져가는 얘기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밑바닥 인생이 부의 정점까지 올랐다가 쓰러지는 과정을 냉정하게 묘사했다.

그 속에는 레이건 정권 시절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하던 미국의 어두운 그늘도 녹아 있다.
개봉 당시 미국은 영화처럼 마약이 급증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겉으로는 흥청망청 번영을 누리는 것 같았지만 속으로는 내홍을 겪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게 미국은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이 무너져 내렸다.

그런 점에서 비정할 정도로 냉철한 이 작품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갱 영화가 됐다.
여기에는 광기가 느껴질 정도로 주인공을 기가 막히게 연기한 알 파치노(Al Pacino)의 연기와 스릴러의 일가견이 있는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긴장감 넘치는 연출, 탄탄한 올리버 스톤(Oliver Stone)의 시나리오가 있었기 때문이다.

 

알 파치노가 연기한 주인공 토니 몬타나는 모순적인 인물이다.

사람 죽이는 것을 벌레 죽이듯 하면서도 여자와 아이는 죽이지 않는 모순적 원칙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이런 나름의 불문율은 결국 몬타나를 파멸로 이끄는 도화선이 된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 같은 원칙은 흔히 독재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한다고 생각하는 독재자들은 이 같은 원칙을 다른 사람에게도 강요하며 충돌을 빚는다.

몬타나가 신봉하는 '세상은 너의 것이다'라는 문구가 결국 그의 모순적 속성을 대변한다.

국내 개봉은 미국보다 1년이나 늦은 1984년 12월인데, 일부 장면이 검열에서 사라졌다.
그럼에도 총격전이나 알 파치노의 연기가 워낙 강렬해 한동안 영상이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2160p U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본편 상영 시간이 무려 170분에 이르는 감독판이다.

국내 개봉시 잘려나간 장면도 고스란히 복원됐다.

 

타이틀은 4K와 일반 블루레이 등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4K 타이틀의 화질은 아주 좋다.

 

디테일이 우수하고 강렬한 색감이 잘 살아 있다.

블루레이에서 보였던 미세한 지글거림도 사라졌다.


반면 DTS X를 지원하는 음향은 아쉬움이 남는다.

총격전 장면을 보면 생각보다 요란한 총소리가 잘 살아나지 않아 박력이 떨어진다.

 

부록으로 제작과정, 삭제장면, 비디오 게임 탄생 배경, TV판에 대한 설명 등 다양한 내용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주인공 토니 몬타나 역의 알 파치노가 제대로 빛을 발했다. 원작은 아미티지 트레일이 쓴 동명 소설. 이 책은 2008년 국내에도 번역 출간됐다.
원작 소설을 토대로 1932년 폴 무니의 명연기가 빛나는 흑백 영화가 탄생했고, 이를 드 팔머 감독이 리메이크했다. 초기에는 시드니 루멧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했는데, 쿠바를 등장시킨 것은 루멧의 아이디어다.
마틴 스콜세지와 로버트 드니로도 이 작품을 리메이크 하고 싶어했다. 여기에 올리버 스톤 감독이 각본가로 참여하며 영화가 빛을 발했다.
유명한 전기톱 살인 장면. 팔다리를 자르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지만 끔찍한 톱날 소리와 비명, 사방으로 튀는 피 때문에 마치 본 것 같은 착시를 일으켜 소름이 돋게 만든다. 이 장면은 작가 정신이 투철한 올리버 스톤이 볼리비아까지 가서 마약 조직원들을 인터뷰 한 뒤 실화를 녹여 넣었다.
쿠바인들은 드 팔머 감독이 쿠바 이민자들의 모습을 막장처럼 다뤄 모욕했다며 살해 협박을 했다. 개봉 당시 미국 마이애미는 영화처럼 갱들간에 코카인 전쟁이 치열했다.
쿠바인들의 협박 때문에 영화의 무대인 마이애미에서 촬영을 하지 못했다. 대부분 LA와 뉴욕, 산타바바라에서 찍었다.
쿠바를 빠져나와 접시닦이부터 갱까지 토니와 산전수전 다 겪는 절친한 친구 마니를 연기한 스티브 바우어는 실제 쿠바 출신이다. 그는 어렸던 1960년 쿠바를 떠나 미국에 정착했다.
토니의 상징인 '세상은 너의 것이다.(World is Yours)'. 세상을 돈짝만하게 봤던 자신만만한 토니의 삶을 대변한다.
당시 무명이던 24세의 미셀 파이퍼는 토니의 아내를 연기하며 주목을 받았다. 올리버 스톤도 코카인 경험자다.
시드니 루멧은 대본을 읽어보고 마음에 들지 않아 제작에서 손을 뗐다. 그는 원작에 충실한 작품을 원했는데 올리버 스톤이 현대판 마약 전쟁으로 바꿔 이야기를 뜯어 고쳤다.
올리버 스톤이 주인공 이름을 몬타나로 정한 것은 미식축구팀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즈의 열혈 팬이기 때문. 특히 1980년대 전설이자 NFL의 신화로 남은 샌프란시스코의 쿼터백 조 몬타나를 좋아해 그의 이름을 따왔다.
헬기에 목매달아 죽이는 장면은 스턴트맨이 실제 밧줄을 목에 감고 뛰어내려 연기.
영화가 성공해 2007년 PS2와 엑스박스 게임으로도 제작됐다. 미국에서는 욕설을 모두 바꾸고 살인장면 등을 뺀 TV판도 나왔다. 음악도 좋았는데, 조르지오 모로더의 솜씨다.
제목은 1920년대 시카고를 주름잡은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의 별명이다. 그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뺨에 흉터가 있었다.
영화가 워낙 강렬해 이 작품에 흠뻑 빠진 사람들이 많았다. 특히 미국 마약상들은 집에 이 영화의 포스터와 알 파치노 사진을 붙여놓은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밴드 블링크-182의 이름 속 숫자도 알 파치노가 영화 속에서 내뱉은 욕설(fuck) 숫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