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영화 '셰인'(Shane, 1953년)을 흔히 서부극의 고전으로 꼽는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작품은 스파게티 웨스턴과 다른 미국 정통 서부극이 강조하는 개척정신과 카우보이들의 불굴의 투지, 정의 수호 같은 미국식 정의가 잘 포장돼 있다.
그런 류의 미국 정통 서부극 주인공은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 헨리 폰다처럼 강인해 보이는 턱과 떡 벌어진 어깨 등 강건한 외모의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다.
그런데 이 작품의 주인공은 특이하게도 곱상한 외모의 앨런 래드가 주인공이다.
앨런 래드는 잘 생겼지만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처럼 큰 키와 넓은 어깨의 배우가 아니다.
작고 가냘파 보이지만 번개처럼 빠른 속사 권총과 침묵으로 존 웨인과 게리 쿠퍼 못지않은 무게감을 줬다.
마치 원빈이 '아저씨'에서 보여준 과묵한 영웅의 이미지가 앨런 래드에게서 풍겨 나온다.
이를 통해 이 작품은 '역마차'나 '하이눈'과 다른 영웅의 이미지를 갖게 됐다.
즉 조지 스티븐스 감독은 우락부락하며 거칠어 보이는 카우보이와 다른 과묵하면서도 섬세한 영웅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 작품을 보면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앨런 래드가 연기한 주인공 셰인과 진 아서가 연기한 스타렛(밴 헤플린)의 부인 마리안의 미묘한 관계다.
우연찮게 스타렛의 농장에 객이 된 셰인과 마리안이 주고받는 눈빛에서 서로에 대한 호감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괜찮은 사람 이상을 뛰어넘는 이성으로서의 호감이다.
과장해서 표현하면 마치 머슴과 안방마님의 서로를 연모하는 눈길 같다.
그렇지만 셰인과 마리안은 정도를 지킨다.
셰인은 오갈 곳 없는 자신을 머물게 해 준 주인장에 대한 예의와 의리를 끝까지 버리지 않고, 마리안은 남편에 대한 존중과 의무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를 통해 스티븐스 감독이 강조하려는 것은 미국의 주춧돌이 된 청교도적 가치관과 도덕의 준수다.
가난과 카톨릭의 종교 박해를 피해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인들이 가장 중시한 가치는 결국 가족의 안녕을 지키는 것이다.
그것이 곧 조화로운 사회의 근간이 된다고 본 것이다.
이 작품에서 셰인과 마리안은 서로에 대한 이성적 감정으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스티븐스 감독은 축제 무도회 장면이나 셰인을 챙기는 마리안의 태도와 표정을 통해 이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선을 넘는 행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식이라면 두 사람 사이에 붙은 미묘한 감정의 불을 끌 방법이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스타렛의 농장을 집어삼키려는 악당들이다.
결국 이 작품 속에서 벌어지는 격투와 총격전은 셰인과 마리안의 일어나서는 안 될 러브 스토리를 해결하기 위한 분출구인 셈이다.
당연히 주인공의 승리는 예견된 일, 멋진 총솜씨로 악당들을 해치운 셰인은 살인을 했다는 이유로 조용히 마을을 떠난다.
이 작품을 유명하게 만든 소년 조이의 "셰인, 돌아와요!"라는 외침을 뒤로한 채 길을 떠나는 셰인의 뒷모습에서 이성에 대한 감정을 누르고 청교도 가치를 지키는 새로운 기독교적 영웅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더 이상 인디언을 죽이며 땅을 넓히는 개척 정신보다는 이제는 사회를 공고히 다지는 새로운 가치관이 필요하다는 강조처럼 들린다.
그것이 거친 카우보이를 연상케 하는 건장한 배우가 아닌 곱상한 외모의 배우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서부극을 가장한 러브 스토리다.
그것도 결코 이뤄질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랑을 담은 멜로물이다.
이를 과묵한 영웅의 정의로운 결투로 포장하면서 자신이 강조한 메시지를 확연하게 부각한 스티븐스 감독의 연출력이 놀랍다.
1080p 풀 HD의 1.37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제작된 지 60여 년이 넘은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괜찮은 화질이다.
물론 밤 장면 등 어두운 부분의 디테일이 묻히지만 전반적으로 잡티 하나 없고 화질 저하도 일어나지 않는다.
돌비 트루 HD 스테레오를 지원하는 음향은 당연하게도 전방에 소리가 몰려 있다.
부록은 전혀 없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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