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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빌보드(블루레이)

울프팩 2019. 5. 30. 08:14

1991년 5월 14일, 미국의 텍사스 비더에서 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됐다.

나이는 34세, 두 딸의 엄마인 캐시 페이지였다.

 

마치 사고가 난 것처럼 보이는 자동차 속에서 발견된 캐시의 죽음은 의문 투성이었다.

안전벨트를 하지도 않았고 몸에 상처도 없었으며 겉에 입은 옷에 피도 전혀 묻지 않았다.

 

또 외출을 한 여인이 화장도 하지 않았고 장신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캐시는 코가 부러진 상태였으며 속옷과 피부에서 혈흔이 발견됐다.

 

검시 결과 캐시는 죽기 전에 성관계를 한 흔적이 발견됐다.

흔적 분석을 통해 드러난 특이 사항은 상대 남성이 정관 수술을 받은 점이었다.

 

경찰은 캐시가 다른 곳에서 살해된 것으로 보고 남편 스티브를 의심했다.

그는 캐시가 죽기 몇 달 전에 정관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스티브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며 아내가 외출 전에 성관계를 가졌으나 죽일 이유가 없는 화목한 가정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캐시의 여동생 셰리 밸런타인은 이를 부인했다.

 

캐시가 오래전부터 남편과 이혼을 결심하고 다른 남자를 만난 뒤부터 스티브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은 캐시의 남자 친구를 찾아가 죽기 전에 캐시를 만났고 성관계를 가진 사실도 확인했다.

 

그러나 캐시의 남자 친구는 정관 수술을 받지 않았다.

캐시의 아버지 제임스 풀톤을 비롯해 친정 식구들은 캐시의 남편 스티브가 범인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 이유로 스티브의 통화 기록을 근거로 들었다.

사고 당일 스티브는 캐시가 남자 친구를 만난 호텔로 2통의 전화를 걸었다.

 

캐시의 가족들은 스티브가 그날 저녁 캐시가 누굴 만났는지 알고 있었다는 주장이었다.

캐시의 가족들 추정에 따르면 캐시는 그날 밤 호텔에서 남자 친구를 만난 뒤 집에 돌아가 욕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지운 뒤 장신구를 풀어놓았다.

 

이 소리를 들은 스티브가 캐시에게 성관계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강간한 뒤 목을 졸라 죽였다는 추정이었다.

물론 스티브는 이를 부인하고 캐시가 죽기 전에 캐시와 자신을 위협하는 정체모를 사람의 전화를 받았는데, 버몬트에 사는 이탈리아 억양을 쓰는 사람인 점으로 봐서 이탈리아 마피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결국 증거를 찾지 못해 캐시 페이지 사건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자 캐시의 가족들은 마을 곳곳에 커다란 입간판을 세웠다.

 

남편 스티브가 캐시 페이지를 강간하고 죽였다는 주장과 함께 캐시와 스티브의 사진까지 붙였다.

더불어 경찰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광고판도 세웠다.

 

마침 버스를 타고 조지아, 플로리다, 앨라배마 등 미국 여러 군데를 여행하던 마틴 맥도나 감독이 이 광고판들을 봤다.

그는 인상 깊게 본 이 광고판에 영감을 얻어 대본을 썼다.

 

그렇게 만든 영화가 '쓰리 빌보드'(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2017년)다.

영화 내용은 캐시 페이지의 실제 사건과 다르지만 모티프가 된 주요 소재인 대형 광고판은 실제 사건에서 가져왔다.

 

내용은 밀드레드(프랜시스 맥도먼드)가 딸을 강간하고 살해한 범인들을 빨리 찾아내도록 경찰을 질타하는 대형 입간판을 도로에 잇따라 세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얼핏 보면 마치 수사극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의 해결이 아니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강조한 것은 여전히 미국 사회에 남아 있는 인종 차별과 각종 혐오 범죄에 대한 분노다.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갖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여전히 미국 사회가 인종 차별 및 약자를 겨냥한 혐오 범죄들이 뒤엉켜 용광로처럼 끓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흑인을 고문한 사실을 떠벌리는 경찰, 동성애나 신체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비하 발언을 자연스럽게 내뱉는 사람들이 정작 강간범 못지않게 분노를 유발하는 대상이 됐다.

그러면서 결국 이들 또한 공격이 아닌 치유의 대상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과정을 불치병에 걸린 경찰서장 윌러비(우디 해럴슨)를 통해 자연스럽게 느끼고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도록 만들었다.

그만큼 구성이 탄탄하며 관객을 집중시키는 힘이 강한 영화다.

 

물론 이 과정이 대본이나 감독의 연출력만으로 될 수는 없고, 배우들의 연기도 그 못지 않게 훌륭했다.

특히 주인공을 맡은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적절하게 냉정과 열정을 오가는 연기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덕분에 그는 이 작품으로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과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밉살스럽고 멍청하지만 나중에 큰 역할을 하는 경찰관 딕슨을 연기한 샘 록웰 또한 감정이입을 유발하는 훌륭한 연기로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에서 모두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만큼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이 입증된 셈이다.

이제는 혐오범죄와 인종차별을 떨쳐내야 한다는 묵직한 메시지를 서정적인 영상과 탄탄한 배우들의 연기로 밀도 있게 잘 전달한 작품이다.

 

1080p 풀 HD의 2.39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자연스러운 색감이 생생하게 잘 살아 있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두드러지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음의 밸런스가 잘 맞아 오히려 어색하게 서라운드 효과를 강조한 영화보다 자연스럽게 들린다.

 

부록으로 제작 과정, 삭제 장면, 감독의 단편인 '식스 슈터'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수록됐다.

단편을 제외하고 모두 HD 영상들이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극 중 등장하는 미주리주 에빙은 가상의 마을이다. 마을 장면은 노스캐롤라이나 주 실바에서 찍었다.
감독은 노스 캐롤라이나 주에서 20여개 마을을 돌아본 뒤 실바를 선택했다. 이 영화는 삽입곡도 좋다. 아바의 '치키티타' 헨델의 '라 리베르타' 등이 흘러 나온다.
촬영은 벤 데이비스가 담당. 그는 '캡틴 마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킥 애스'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등을 찍었다.
극 중 나오는 흰꼬리사슴은 노스웨스턴 캘리포니아 자연센터에서 훈련받은 사슴이다.
이 영화는 베니스영화제에서 각본상, 골든글로브 작품상과 각본상 등을 받았다.
마틴 맥도나 감독은 작품에 어떤 형태로든 흰 토끼를 등장시킨다.
애비 코니쉬가 윌로비 서장의 아내 앤을 연기. 그는 '써커 펀치'와 리메이크 '로보캅', '골든에이지' 등에 출연.
감독은 처음부터 주연에 프랜시스 맥도먼드를 염두에 두고 썼다.
캐시 페이지 살해사건의 수사를 촉구하는 실제 광고판은 텍사스주 비더의 10번 주간고속도로 근처에 서 있었다.
광고판 화재는 실제로 불을 붙인 뒤 촬영.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처음에 역할을 제안받고 망설였으나 남편 조엘 코엔 감독의 설득으로 출연했다.
제작진은 중고 가구점을 빌려서 내부와 외관을 경찰서로 바꾼 뒤 촬영.
난쟁이로 나온 피터 딘클리지는 '왕좌의 게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도 출연.
샘 록웰이 인종차별에 동성애 혐오주의자로 출연. 감독은 롱테이크가 영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해 대본에 따로 표시를 해놓았다.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존 포드 감독이 만든 존 웨인 영화를 좋아해 극 중 존 웨인처럼 걸으려고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