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은 격동의 시대였다.
우리에게는 87년 6월로 기억되는 민주화운동과 88 서울올림픽 등이 있었고, 미국에는 레이건 행정부 시절의 팍스아메리카나 찬가가 뜨거웠던 때였다.
딩사 미국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영화도 온통 람보, 코만도 등 미국이 가진 힘의 우위를 과시하는 내용들 뿐이었다.
하지만 그 안은 곪아가고 있었다.
월가의 부흥과 함께 넘쳐나는 돈으로 뉴욕에만 수백 개의 섹스클럽이 있었고, 마약과 에이즈가 창궐했다.
사람들은 MTV에 흥분했고, 마돈나의 노래 'Material Girl'이 상징하듯 부를 쫓아 몰려 다녔다.
그러다가 1987년 2,000포인트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점을 찍었던 미국 증시는 블랙 먼데이로 일컬어지는 10월19일 하루만에 폭락했다.
그 바람에 미국 여러 증권사들이 파산했고 아시아 유럽 증시도 동반 폭락하며 잠시나마 세계는 비틀거렸다.
이처럼 세계의 흐름이 요동치는 가운데 사람들은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급류에 휩쓸리듯 흘러가면서 한 편으로는 자신을 되돌아 보기 시작했다.
이를 반영한 것이 바로 브렛 이스턴 엘리스가 1991년 27세 나이로 펴낸 소설 '아메리칸 사이코'였다.
작가는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고, 사회적으로나 성적으로 억눌린 여성들의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주기 위해 잔혹한 내용의 이 소설을 썼지만 미국 사회의 반응은 부도덕하고 폭력적이라며 혹평 일색이었다.
심지어 작가는 살인협박까지 받았고, 여성단체들은 이 책을 판매하는 서점에 대해 보이콧운동까지 벌였다.
그만큼 원작 소설의 내용은 영화에 비해 훨씬 더 과격했다.
이를 토대로 만든 여류 감독 메리 해론의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American Psycho, 2000년)는 용광로처럼 들끓었던 1980년대 미국 사회의 단면과 이 속에서 미쳐가는 한 사내의 이야기를 다뤘다.
잘 나가는 월가 금융업체의 부사장인 베이트만(크리스찬 베일)은 풍족하게 돈을 벌며 호화롭고 방탕한 생활을 하지만 자신의 내면을 채우지 못하는 공허함을 느낀다.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하다 보니 정작 자신의 내면을 채울 줄 몰랐던 그는 급기야 잔혹 영화와 포르노에서 보고 배운 대로 여성들을 괴롭히고 엽기적인 연쇄 살인을 벌인다.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에서 베이트만은 양심이 마비된 기계같은 존재다.
하지만 영화는 정작 범죄 행각을 벌인 그보다 사회의 무관심을 더 공포스럽게 부각시켰다.
살인 위협을 당하는 여자가 문을 두드리고, 심지어 살인자의 살인 고백에 대해서도 사회는 냉담하다.
잡히고 싶어 안달하는 주인공은 급기야 이 사회가 미쳐 돌아간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원작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것은 출구가 아니다."
여기에 작가와 영화가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이 녹아 있다.
1980년대 미국 사회의 부조리와 문제점을 꼬집은 점은 의미있지만, 정제되지 않은 산만한 구성이 문제다.
주인공의 혼란과 갈등을 부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동료와 연인, 수사에 나선 형사와의 만남을 보여주며 정신없이 왔다갔다 한다.
여기에 중간 중간 주인공의 범죄 행각이 파편처럼 끼어 든다.
그렇다보니 주인공이 겪는 심리적 갈등과 정신적 혼란이 드러나기 보다는 오히려 맥이 끊기는 느낌이다.
원작 소설을 읽고 본다면 몰라도, 영화 자체만으로는 주인공의 혼란과 고민을 드러내는데 한계가 있다.
다만 주인공을 맡은 크리스찬 베일의 냉정한 연기는 볼 만 하다.
1080p 풀HD의 2.3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그저 그렇다.
바랜듯한 색감과 지글거림이 거칠게 드러나며 윤곽선도 두텁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배경음악의 임장감이 좋고, 리어에서 각종 생활 소음이 들린다.
부록으로 감독의 음성해설, 제작과정, 배우 인터뷰, 삭제장면, 원작과 영화의 관계, 1980년대 사회상을 소개한 인터뷰 영상 등 다채로운 내용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play 표시가 있는 사진은 PC에서 play 버튼을 누르면 관련 동영상이 나옵니다.*
주연인 크리스찬 베일은 연기를 위해 몇 달 동안 엄청난 운동과 다이어트로 몸매를 다듬었다.
1980년대 뉴욕의 클럽에는 여장을 한 동성애자들이 많았다.
주인공은 월가에서 성공한 금융인으로 나오지만, 그가 일하는 모습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일로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지 설명이 없다.
금속 메뉴판이 특징인 에스파스라는 식당은 유일하게 원작 소설에 나오지 않는 장소다. 형식보다 기능을 강조한 신 브루탈리즘 경향이 강한 미국 식당의 전형을 보여주기 위해 제작진이 만들었다.
넘쳐나는 돈을 주체 못하는 주인공은 전형적인 월가의 졸부처럼 패션 미용 등 자신을 가꾸는데 많은 돈을 들인다.
브렛 이스텐 엘리스의 세 번째 작품인 이 소설의 핵심은 1980년대 미국 풍자였다. 그래서 외모, 레스토랑, 옷에 집착하는 부유한 젊은 남녀들의 방탕한 삶에 초점을 맞췄다.
바닥에 놓인 신문지는 베이트만의 지독한 광기와 결벽증을 나타낸다. 감독은 스탠리 큐브릭 영화를 많이 참조했다.
브렛 이스턴 앨리스의 원작 소설은 출판 전 신문에서 혹평을 하자 처음 책을 내기로 한 사미온앤슈스터가 포기해 랜덤하우스가 페이퍼백으로 내놓았다.
원래 제작진은 처음에 데이빗 크로넨버그, 브라이언 드 팔머, 레니 할린 등에게 감독을 의뢰했으나 거절당했다. 스튜어트 고든 감독과 조니 뎁은 영화에 관심을 보였으나 합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제작진은 페미니스트들의 반발을 고려해 의식적으로 여성 감독을 선택했다. 원작 소설에서 베이트만은 톰 크루즈를 우상으로 여겨 그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으로 나온다.
처음엔 주인공 역에 조니 뎁을 정했으나 출연이 무산돼 '타이타닉' 성공으로 주가가 오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넘어갔다. 제작진은 1,200만달러의 출연료를 제시해, 디카프리오가 2,000만 달러를 요구했다.
메리 해론 감독은 디카프리오가 너무 젊어서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고, 크리스찬 베일을 고집했다. 결국 이것때문에 해론은 감독직에서 해임됐다. 이후 올리버 스톤이 감독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대본 검토까지 마친 디카프리오는 당시 '타이타닉'으로 어린 소녀 팬들을 많이 확보했는데, 악역을 맡으면 이미지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주변 조언에 따라 출연을 포기했다. 그러면서 해론이 다시 감독직에 복귀했다. 멜빵바지도 1980년대 유행이다.
냉동실에 들어 있는 잘린 머리는 실제 사람이 비닐을 뒤집어쓰고 냉장고 뒤에 뚫린 구멍으로 머리를 집어넣어 촬영했다.
대부분 촬영은 토론토에서 진행됐다. 주인공이 사는 1980년대 온통 흰 색 위주의 아파트는 80년대에 미술상을 했던 프로덕션 디자이너 기디언 폰티가 만들었다.
영화 속에는 1980년대 주옥같은 팝의 명곡들이 흘러 나온다. 카트리나 & 더 웨이브스의 'walking on sunshine', 크리스 드 버그 'lady in red', 필 콜린스 'sussudio' 등 귀에 익은 노래들이다.
원작자 브렛 이스턴 앨리스는 영화화를 반대했다. 특히 영화의 결말이 원작 소설과 달리 명확하게 표현되지 않아 원작 소설의 맛을 살리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소설에 더 충실하게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말도 했다.
리즈 위더스푼이 주인공의 연인으로 등장. 80년대는 방종과 위기의 시기였다. 1981년 미국에 첫 에이즈 환자가 나타났다.
영화는 슈퍼35미리로 찍었는데 엔딩크레딧에는 파나비전 촬영으로 나온다. 촬영은 대부분 토론토에서 진행.
이 작품은 2013년 영국에서 덩컨 쉬크가 뮤지컬로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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