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자크 아노 감독의 '에너미 앳 더 게이트'(Enemy At The Gates, 2001년)는 저격 영화의 정수 같은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구 소련군의 저격수였던 실존 인물 바실리 자이체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15년 첼라빈스크주 에라노마치에서 태어난 자이체프는 우랄 산맥의 산속에서 자라며 어려서부터 사슴 사냥으로 사격 솜씨를 갈고닦았다.
1936년 해군에 입대해 군사경제학교를 나온 뒤 러시아 태평양 함대에서 회계 반장으로 일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소전이 발발하자 그는 흑해 함대로 지원해 해군 육전대의 저격수가 됐다.
다시 육군으로 소속이 바뀌어 제284저격사단 산하의 1047저격연대에 배속된 그는 독일군이 쑥대밭을 만든 스탈린그라드에서만 242명을 사살하는 등 종전까지 총 257명의 독일군을 저격했다.
1943년 박격포탄이 터지면서 눈에 부상을 입는 바람에 시력이 떨어진 그는 이후 저격수 교관으로 주로 활동하다가 베를린 진군에도 참가했으며 대위로 제대했다.
혁혁한 전공으로 레닌 훈장 등 수많은 훈장을 받고 전후 소비에트 연방영웅 칭호까지 받은 그는 키예프 공장에서 관리로 일하다가 1991년 76세 나이에 세상을 떴다.
아노 감독은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지만 윌리엄 크레이그가 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사실과 다른 내용이나 미확인된 부분도 등장한다.
따라서 영화 내용은 사실에 기초하기는 했지만 영화적 재미를 위해 자이체프의 영웅적 활약을 극적으로 과장한 부분들이 섞여있다.
이 작품이 저격 영화의 명작으로 꼽히는 이유는 저격 순간의 극적인 긴장감을 긴박하게 잘 묘사했기 때문이다.
상대를 쓰러트릴 때까지 일촉즉발의 긴장된 순간을 교차 편집과 클로즈업 등을 적절히 활용해 생동감 있게 그렸다.
재미있는 것은 전쟁 영화이면서도 서부극 같은 구성을 따른 점이다.
주드 로가 연기한 자이체프와 그를 잡기 위해 독일에서 파견된 일급 저격수 쾨니히 소령(에드 해리스)이 서로를 노리는 부분은 마치 서부극의 두 맞수가 벌이는 대결 같다.
특히 막판 화학 약품 공장에서 벌어지는 숨 막히는 대결은 OK 목장의 결투처럼 비장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만큼 주드 로와 에드 해리스의 탁월한 연기가 제대로 빛을 발했다.
더불어 제임스 호너가 담당한 음악도 좋았고 폐허가 된 스탈린그라드를 그대로 재현한 세트도 훌륭했다.
새삼 저격 영화의 재미를 일깨워 준 작품이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괜찮다.
중경과 원경의 샤프니스가 떨어지고 입자감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클로즈업 화면은 깔끔하고 색감도 생생하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적당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부록으로 작품 배경과 제작과정, 감독 및 배우 인터뷰, 삭제 장면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아쉬운 부분은 영화 본편의 번역이 잘못된 한글 자막이다.
'레닌 훈장을 받았다'는 대목을 '레닌에게 표창장을 여러 번 받았다'는 식으로 오역해 놓았다.
참고로 레닌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훨씬 전에 죽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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