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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스펙터(4K 블루레이)

울프팩 2019. 12. 20. 07:07

스펙터만큼 여러 영화에 등장하는 악당은 흔치 않다.

우선 007 시리즈에서 스펙터는 '위기일발' '썬더볼' '두 번 산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등 4편의 영화에 등장한다.

 

모두 숀 코네리가 007을 연기한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에서 스펙터라는 악당 조직의 두목은 블로펠트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007 시리즈에서 이처럼 스펙터가 여러 편에 등장한 이유는 신비한 아우라와 막강한 악의 권력 때문이다.

007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위기일발'에서 전 세계의 모든 범죄를 주무르는 막강한 조직으로 처음 등장한 스펙터는 '썬더볼'까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손과 팔에 안고 쓰다듬는 고양이만 보여준다.

이는 나중에 국내에서도 방영된 TV 만화 시리즈 '가제트'의 악당 원형이 됐다.

 

그러다가 '두 번 산다'에서 스펙터의 두목 블로펠트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는데, '대탈주'에서 천재적인 복제 전문가로 등장한 도널드 플레젠스가 연기했다.

그가 연기한 블로펠트는 훗날 007 시리즈의 패러디로 유명한 세 편의 '오스틴 파워' 시리즈 '오스틴 파워 제로' '오스틴 파워' '오스틴 파워 골드멤버'에서 악당 이블 박사의 모델이 됐다.

 

대머리에 눈에 난 상처, 중국 인민복을 연상케 하는 연회색 복장과 흰 고양이는 오스틴 파워 시리즈에서 그대로 흉내 냈다.

숀 코네리의 007 복귀작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는 죽은 줄 알았던 블로펠트가 성형 수술을 하고 나타나 스펙터를 이끄는 설정이다.

 

이 작품에서는 찰스 그레이가 블로펠트 역을 맡아서 복장은 그대로이지만 금발의 머리카락도 새로 솟아나고 얼굴의 흉터도 사라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처럼 여러 영화에 등장한 것을 보면 이언 플레밍은 007 못지않게 막강한 악당 캐릭터도 창조한 셈이다.

 

샘 멘더스 감독은 '007 스펙터'(Spectre, 2015년)에서 아예 이 악당 조직을 제목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등장하는 007 시리즈에서는 처음 모습을 보여주지만 사실 이전 세 편의 작품 '007 카지노 로열' '007 퀀텀 오브 솔러스' '007 스카이폴' 등의 배후도 스펙터로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 역시 이언 플레밍이 창조한 스펙터에서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어찌 보면 스펙터는 그만큼 매력적이면서 위악적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크리스토프 왈츠가 오버하우저라는 이름으로 스펙터의 수장을 연기했다.

오버하우저는 이전 숀 코너리의 '007 두 번 산다'에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도널드 플레젠스의 블로펠트와 달리 대머리는 아니지만 인민복 비슷한 복장과 고양이를 데리고 등장한다.

 

막판 눈에 상처를 입으면서 도널드 플레젠스의 캐릭터를 닮아갈 수 있다는 점을 암시했다.

스펙터의 귀환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기대를 모으기도 했지만 아쉬움도 남는 작품이다.

 

전대미문의 강력한 악당의 등장으로 007의 위기를 예고했으면서도 의외로 악당의 몰락이 싱겁게 끝났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에서 007이 빠져나오며 적의 기지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장면과 권총으로 헬기를 사냥하는 장면을 보면 스펙터를 너무 형편없는 조연으로 떨어뜨렸다는 생각이다.

 

제목과 달리 스펙터에 방점이 찍힌 것이 아니라 여전히 힘의 균형추가 007에 쏠린 채 허무하게 몰락하면서 007을 돋보이게 만드는 조연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원래 007 시리즈의 악당들이 그런 운명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번 작품에서 만큼은 다른 모습이기를 기대했다.

 

그래야 '조커'처럼 스펙터의 이름을 내건 제목을 통해 가치 전복을 시도하면서 뭔가 색다르고 새로움을 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007 전 시리즈를 통해서 가장 위력적인 악당이었던 존재치고는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사실 악당을 전면에 내세운 제목치고는 존재 자체가 너무 미약했다.

상대적으로 다니엘 크레이그의 007은 여전히 매력적이며 야수적 외모를 지닌 그답게 거칠었다.

 

멕시코와 로마, 런던, 모로코 등을 휘저으면서 악당의 뒤를 쫓아 벌이는 액션은 007 시리즈에서 기대한 눈요기거리를 충분히 충족시켜 준다.

본드 걸은 레아 세이두가 맡았다.

 

이 작품이 특이한 것은 007이 안팎에서 이중의 적을 맞는 점이다.

외부의 적 스펙터가 007과 접촉하는 직접적 악당이라면 내부의 적 댄비는 007 뿐 아니라 살인면허를 지닌 첩보원들을 말살시키려는 내부의 적이다.

 

이야기 또한 외부의 적과 내부의 적 두 개의 축선으로 갈라지면서 007과 스파이 조직을 이끄는 M 등이 주도하는 두 개의 싸움으로 분산된다.

그렇다 보니 스펙터로 연결되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이야기가 산만하게 진행된다.

 

이 점 또한 영화의 힘을 빼놓는 요인이 됐다.

결정적인 것은 엔딩에 이르는 결말 부분이다.

 

너무 쉽게 무너진 악당과 후속작에서 부활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한 뻔한 엔딩으로 치달으면서 너무 쉽게 힘이 빠졌다.

마치 최종 라운드까지 열심히 싸운 뒤 잽 몇 방 얻어맞고 그로키 상태에 놓인 권투 선수를 보는 느낌이다.

 

4K 타이틀은 4K와 일반 블루레이 등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2160p UHD의 2.40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색감이 살아 있으며 발군의 디테일을 보여준다.

DTS HD MA 7.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뛰어나다.

 

특히 둔중하게 울리는 저음 덕분에 폭발음 등이 묵직하고 위력적이다.

부록으로 오프닝 시퀀스 설명, 자동차 추격전, 본드 걸, 스턴트 장면, 음악과 로케이션을 다룬 내용들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부록들은 모두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초반에 나오는 멕시코의 전통 축제인 죽은 자들의 날 장면은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에서 촬영.
1,500명의 엑스트라가 축제 장면에 동원됐다.
기내에서 결투가 벌어지며 헬기가 묘기 비행하는 장면은 팔렝케라는 곳에서 따로 찍었다.
영화를 위해 새로 개발된 애스턴 마틴 DB10. 8대의 애스턴 마틴을 사용.
모니카 벨루치도 007과 얽히는 여인으로 등장.
설산 풍경은 오스트리아 솔덴에서 촬영.
설산에서 벌어지는 액션은 카메라 9대를 동원해 찍었다.
제임스 본드의 여인으로 등장한 레아 세이두.
모로코의 탕헤르와 사하라 사막에서 사막 장면을 촬영.
샘 멘더스 감독이 컴퓨터그래픽을 좋아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장면을 실사 촬영했다.
007의 탈출을 돕는 시계는 오메가에서 한정판으로 선보인 씨마스터 300.
주제가 'Writing’s On the Wall’은 샘 스미스가 불렀다.
악당 기지 폭발 장면은 1킬로그램짜리 고성능 폭약 24개를 사용해 실제로 모형기지를 폭발시켜 찍었다.
크리스토프 왈츠가 스펙터의 두목을 연기. 게리 올드만도 이 역할로 고려됐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007 스펙터 : 블루레이
 
다니엘 크레이그 컬렉션 (8Disc 4K UHD 2D 슬립케이스 한정판) : 블루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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