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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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뉴엘 (블루레이)

울프팩 2011. 11. 1. 23:08

영화계의 섹스심벌로 1950년대 마릴린 먼로, 60년대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있다면 70년대는 단연 실비아 크리스텔이다.
그가 출연한 '엠마뉴엘' 시리즈와 '차타레 부인의 사랑' '개인교수' 등은 성애 영화의 교과서였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은 바로 그의 데뷔작인 쥬스트 자캉 감독의 '엠마뉴엘'(Emmanuelle, 1974년)이다.
1974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정작 우리나라에는 상영 금지로 묶여있다가 무려 20년이 지난 1994년에 처음 국내 개봉했다.
그것도 검열로 여기저기 잘려나간데다 그나마 남은 영상도 알아보기 힘들도록 뿌옇게 처리됐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순진하게 살아온 새색시 엠마뉴엘이 성에 눈뜨며 진정한 자유를 찾는다는 내용.

70년대 유럽을 휩쓸었던 프리 섹스 바람을 탄 영화로, 동성애 혼음 등 자극적인 요소를 잔뜩 집어넣어 관음증적인 호기심을 잔뜩 부추겼다.
전체적으로 하드 포르노는 아니지만 일부 장면은 지금봐도 수위가 높다.

일등 공신은 단연 실비아 크리스텔.
비쩍 마른 몸매에 청순한 외모로 백치미를 한껏 발산했던 그는 거의 데뷔작이나 마찬가지인 이 작품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실비아 다음으로 유명한 것은 바로 피에르 바슐레가 작곡하고 노래까지 부른 주제가 '엠마뉴엘'이다.
70년대 유럽 성애 영화의 주제가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영화의 주제가 역시 나른하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가 너무나 유명하다.
정작 영화는 개봉하지 못한 국내에서도 주제가가 라디오 프로그램의 시그널로 쓰일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초등학생들도 인터넷으로 손쉽게 포르노를 구하는 요즘 세상에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지만 70년대에는 분명 파격적인 작품이었다.
도덕적 잣대를 떠나 검열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제도적 장치로 영화를 난도질했던 우리는 더 말할 나위없다.

1080p 풀HD의 1.66 대 1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헤어누드를 비롯해 여러 성애 장면 등을 그대로 보여주는 무삭제판이다.
화질은 아무래도 30여년 전 작품인 만큼 떨어진다.

전체적으로 영상이 뿌옇고 지글거리는 노이즈가 나타난다.
DTS-HD 2.0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 역시 사운드가 전방에 집중돼 있다.

부록으로 제작진의 일화와 감독 및 제작자 인터뷰가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주연 여배우인 실비아 크리스텔은 1952년 네델란드 위트레흐트에서 여러 개의 호텔을 운영하던 부잣집 아버지한테서 태어났다. 어머니도 패션모델 활동을 잠시 했다. 그러나 11세때 어머니가 가출을 하면서 외롭게 자란 그도 고교시절 2년 동안 가출을 해서 여러가지 일을 했다.
미스 네델란드에 당선됐던 실비아 크리스텔은 디자이너 엘의 집에서 함께 생활한 적이 있는데, 엘의 남편인 극작가 위고 클라우스와 연인이 되면서 엘이 집을 나가게 된다. 결혼 하지 않은채 동거 생활을 한 그는 영화 개봉 직후인 75년 위고의 아들을 낳아 미혼모가 됐다.
이 영화는 초짜들의 향연이었다. 제작자인 이브 루세르아르는 광고만 만들다가 생전 처음 영화제작에 뛰어들었고, 패션 사진작가였던 쥬스트 자캉 감독도 처음 영화를 찍었다.
그 바람에 자캉 감독이 직접 촬영한 초반 도시 풍경을 보여주는 인트로는 화면이 심하게 흔들리는 등 엉망이다. 원래 제작자는 데이빗 해밀튼 감독에게 감독직을 제의했으나 그가 고사하면서 자캉이 맡게 됐다.
이 작품의 유명한 비행기 기내 정사 씬도 마찬가지. 자캉 감독이 촬영한 장면은 너무 엉망이어서 재촬영을 요구했으나 자캉이 화를 내며 반대해 촬영 감독 리사르가 다시 찍었다. 리사르는 트뤼포 감독의 '스무살의 사랑' 중 일부를 흉내내 찍었다. 기내 장면은 비행기 동체를 갖고 있던 광고제작자의 도움을 받아 촬영.
태국 여인이 성기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미국 개봉당시 삭제됐다.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는 그 장면이 살아 있다. 자캉 감독은 이 장면 촬영을 거부해 촬영감독인 리사르 스즈키가 연출.
이런 장면들 때문에 이 작품은 동양인을 무시하는 영화라는 비판도 들었으나, 얄궂게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자전적 소설 형태의 이 작품을 쓴 원작자 엠마뉴엘 알산은 검은 머리 동양계 혼혈이다. 그래서 제작진은 처음에 검은 머리 동양여성을 찾았으나 마땅한 인물이 없어 실비아를 쓰게 됐다.
어린 소녀가 폴 뉴먼 사진을 보며 자위하는 장면은 자캉 감독의 아이디어다. 자캉 감독은 이 작품의 성공으로 또다른 성애 영화 'O의 이야기'도 찍었다.
원작의 수위는 영화보다 높아서 태국인이 입과 성기에 뱀을 집어넣는 장면 등 일부 장면은 촬영시 제외했다. 제작진은 태국 정부에 촬영 허가를 받기 위해 가짜 시나리오를 제출했다.
촬영은 73년 말 태국 치앙마이와 방콕에서 했다. 엠마뉴엘 남편의 태국 집으로 나온 곳은 태국의 파누 왕자가 갖고 있던 치앙마이 별장이다. 태국 촬영 때 실비아와 동거했던 위고도 동행했다.
태국의 성소로 꼽히던 폭포 옆에서 두 여인이 벌거벗고 있는 장면을 찍던 중 근처 사찰의 승려들이 지나가다 보고 경찰에 신고해 제작진은 촬영을 중단했다. 그 바람에 스쿼시 장면 등 일부를 태국에서 못찍고 파리에서 촬영했다.
불어를 잘 못했던 실비아는 현장에서 읽어주는 대로 촬영을 하고 나중에 아나운서인 드르팽이 대신 더빙을했다. 그 바람에 2,3편도 드르팽이 실비아 목소리를 대신 녹음했다.
아름다운 주제가가 흐르는 가운데 말을 타는 낭만적인 장면은 실비아 대신 촬영감독이 가발과 드레스를 입고 찍었다. 말을 탈 줄 안다고 거짓말했던 실비아가 울음을 터뜨리며 못타겠다고 했기 때문.
당시 제작진의 목표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의 흥행성적을 깨는 것이었다. '파리...'는 당시 파리 상영시 125만명이 들었다.
이 영화의 주제가는 피에르 바슐레가 작곡하고 직접 불렀다. 편집자가 세르주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 부부에게 제안했으나 거절하면서 바슐레가 맡게 됐다.
이 작품의 엔딩은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 부부가 제안했다. 원래는 지루한 퀴니의 대사가 길게 이어지는 장면이었으나 갱스부르 부부가 본 뒤 거울을 보는 엠마의 모습을 제안했다. 새로 바뀐 엔딩은 모든 게 꿈일 수 있다는 암시를 주기도 한다. 11세때부터 담배를 피운 실비아 크리스텔은 2001년 두경부암 진단을 받았다. 그는 '개인교수' 이후 작품들이 실패하며 마약 중독에 빠지는 등 쇠락의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