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그리너웨이(Peter Greenaway) 감독의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The Draughtsman's Contract, 1982년)은 박상륭의 소설처럼 난해하다.
중세 영국 귀족의 저택에 초대받은 화가 네빌(앤서니 히긴스 Anthony Higgins)이 저택 그림을 그려주는 조건으로 백작부인 (재닛 수즈먼 Janet Suzman) 및 그의 딸과 잠자리를 갖는다.
모두 12장의 그림을 그리는 동안 백작(데이브 힐 Dave Hill)은 정원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사진 같은 그의 그림 속에 단서가 남는다.
여러 가지를 의심하던 화가에게 백작 부인은 상속자가 있어야 백작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와 잠자리를 했다는 사실을 실토한다.
모든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챈 화가는 그날 밤 귀족들에게 살해되고, 백작의 살해범은 끝끝내 밝혀지지 않은 채 영화는 막을 내린다.
두어 번 봐야 겨우 줄거리가 잡힐 정도로 난해한 이 작품은 추리극이라는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상은 귀족사회를 통해 사람들의 탐욕과 부조리, 인간 내면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비록 내용은 난해하지만 이 작품의 회화적 구성은 실로 경탄할 만큼 뛰어나다.
화가 출신 감독답게 그리너웨이의 영상은 모든 장면이 서양의 유화를 보는 것처럼 구도, 색채, 조명이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특히 어느 곳 하나 빈 곳 없이 꽉 들어찬 미장센느를 보면 그의 뛰어난 영상 감각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그의 이 같은 영상 감각은 '차례로 익사시키기'에서 절정을 이룬다.
1.66 대 1 레터박스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비디오테이프만도 못하다.
그저 그리너웨이의 유명한 작품을 다시 본다는 점에 만족해야 한다.
음향도 단출한 돌비디지털 모노를 지원한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