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졸업 (블루레이)

울프팩 2012. 11. 6. 16:36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졸업'(The Graduate, 1967년)은 영화보다 음악을 먼저 알았다.
중학교 시절 구입한 '세계영화음악 모음집' 카세트 테이프에 사이먼 앤 가펑클이 부른 'Sound of Silence'가 들어 있었다.

조용한 기타 반주에 맞춰 부르는 두 사람의 애조 띤 하모니가 어찌나 절묘하던 지 여러 번 되풀이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를 좋아하게 돼 'Mr Robinson' 'April Come She Will' 등도 찾아 듣게 됐는데 알고보니 모두 영화 '졸업'의 삽입곡들이었다.

그렇게 노래로 먼저 만나고 훨씬 나중에 보게 된 영화는 한 마디로 파격적인 작품이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가 진로를 정하지 못한 채 고민하던 중 중년 여인과 육체적 관계에 빠진다.

그런데 문제는 중년 여성이 나중에 주인공이 정말 사랑하게 된 여인의 엄마라는 점.
한마디로 족보가 말도 안되게 꼬인 것이다.

워낙 상황이 파격적이다 보니 1970년대 국내 개봉했을 때에는 자막에서 엄마를 이모로 둔갑시켰다.
결국 주인공은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 진정한 사랑을 얻는 내용이다.

상황 설정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주인공은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며 부모의 보호에서 졸업한다.
이를 확대해석하면 당시 기성세대들이 만든 제도적 틀에 안주하지 않고 뛰쳐나가려는 청년 정신의 반영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루저의 승리를 다뤘다.
실업자인 주인공이 의사를 물리치고 여성을 쟁취하는 이야기도 그렇고, 무명 배우였던 더스틴 호프만이 주인공을 꿰찬 점도 그렇다.

1963년 찰스 웹이 발표한 원작 소설의 주인공은 183cm의 훤칠한 키에 금발과 푸른 눈을 가진 전형적인 미국 백인계 주류인 화이트앵글로색슨프로테스탄트(WASP)이다.
하지만 더스틴 호프만은 168cm의 작은 키, 검은 머리에 커다란 코를 가진 왜소한 청년이었다.

마이크 니콜스 감독은 호프만의 리허설을 지켜보고 제작사에서 낙점한 로버트 레드포드 대신 선택했다는데, 솔직히 왜 그를 뽑았는 지 속내가 궁금하다.
그 바람에 직업소개소를 전전하던 호프만은 일약 주연배우로 발돋움했으니 루저의 승리다.

그만큼 니콜스 감독의 안목과 연출력, 지금 봐도 눈에 띄는 독특한 영상 편집을 시도한 심미안 등을 칭찬할 수 밖에 없다.
더불어 호프만, 캐서린 로스, 앤 밴크로프트 등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아울러 빼놓을 수 없는 음악이 있다.
폴 사이먼이 작곡을 맡은 OST는 사이먼 앤 가펑클 듀오의 주옥같은 명곡으로 채운 빛나는 명반이다.

새삼 그들의 노래를 즐겨 듣던 학창 시절이 그립게 만드는 영화다.

1080p 풀HD의 2.3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무난한 화질이다.
윤곽선이 두텁고 그레인이 보이는 등 최신작에 비하면 화질이 떨어지지만 45년 전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복원이 잘 된 편이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주로 전방에 소리가 집중됐다.
부록으로 제작과정과 DVD에 없는 감독의 음성해설이 모두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파릇파릇한 더스틴 호프만의 모습이 싱그럽다. 마이크 니콜스 감독이 연극 무대에 선 그를 발탁했을 때, 그의 나이 29세였다.
1960년대 여객기 내부 모습. 따로 캐비넷이 없어 선반 위에 짐을 올려놓았고, 기내에서 자유롭게 담배를 피웠다.
호프만은 자신이 주연을 맡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제작사는 로버트 레드포드와 캔디스 버갠을 남녀 주인공으로, 로널드 레이건과 도리스 데이를 주인공의 부모로 고려하는 등 금발 패밀리를 염두에 뒀다.
이 영화는 젊은이를 유혹하는 중년의 악녀인 앤 밴크로프트가 절반을 살렸다. 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다.
주인공은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여전히 부모의 큰 기대가 부담스럽다. 진로에 대한 고민과 청춘의 열병같은 사랑 사이에서 그는 힘든 시기를 보낸다.
핸드헬드처럼 흔들리는 카메라, 수영장에 뛰어든 더스틴이 자연스럽게 중년 여성의 몸 위로 올라가는 영상 편집 등 이 작품의 영상기교는 기발하다.
주인공이 장모와 자게 되는 설정은 당시 미국에서도 파격적이었다.
영화 포스터로 유명한 장면. 마이크 니콜스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감독상과 뉴욕비평가협회 감독상을 받았다.
'내일을 향해 쏴라'에도 출연한 캐서린 로스. 그의 아버지 역할은 원래 진 해크먼이었다. 그러나 제작사가 그를 못마땅하게 여겨 촬영 도중 머레이 해밀턴으로 바뀌었다. 당시 해크먼은 호프만의 룸 메이트였다.
스트립바 장면은 세트 촬영이다.
피사체를 멀리 밀어내 공간을 왜곡하며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영상 등 카메라 워크가 독특하다.
니콜스 감독인 동생이 보내준 사이먼 & 가펑클의 LP를 자주 듣다가 그들에게 반해 폴 사이먼에게 영화 음악을 맡겼다.
알파로메오가 생산한 명차인 스파이더가 등장.
니콜스 감독은 많은 단독샷과 롱샷을 즐겨 사용했다. 훗날 작가와 니콜스 감독, 호프만이 모여 앉아 속편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속편에서는 결혼한 부부가 자녀를 두고, 아버지가 아들의 여자친구와 자는 내용이었단다. 한마디로 원작의 남녀 상황이 바뀌는 설정. 결국 속편은 무산됐다.
호프만을 예수에 빗대 표현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을 불러 일으킨 장면. 그러나 실상은 유리창을 두드리던 장면에서 유리가 깨질 것 같자 교회를 빌려준 목사가 거세게 항의하며 촬영을 반대해, 할 수 없이 스탭의 조언대로 호프만이 유리가 깨지지 않도록 팔을 넓게 벌려 두드린 것.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라는 명제를 널리 알린 가장 유명한 장면. 예식장에서 신부를 강탈해 달아나는 장면은 훗날 숱한 영상물에서 따라 했다.
달아나는 장면에서 영화가 끝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니콜스 감독은 그러지 않았다. 달아난 두 사람이 지나가던 버스를 타고 올라탄 뒤 행복해 하던 표정이 점점 심각하게 굳는다.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 것이냐, 부모들과 어떻게 지낼 것이냐, 어디로 가야할 지 현실적인 고뇌들이 서서히 그들의 얼굴에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그런 점에서 니콜스 감독의 천재적 감각이 돋보인 가장 명장면은 엔딩이 아닐까 싶다.
The Graduate (졸업) O.S.T
O.S.T
졸업 : 블루레이
Dustin Hoffman 출연/Mike Nichols 감독/Katharine Ross 출연/Anne Bancroft 출연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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