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은 초콜릿 같다.
핥을수록 달지만 달콤함 뒤에 식욕을 떨어뜨리고 나른한 나락으로 끌어들이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변혁 감독은 '주홍글씨'(2004년)에서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나른한 욕망을 그렸다.
이브가 유혹의 사과를 아담에게 건네는 대목인 성경의 창세기 3장 6절로 시작한 영화는 식욕이나 물욕, 명예욕도 아닌 색욕을 이야기한다.
등장인물도, 이야기의 발단이 되는 사건도 모두 헤어날 수 없는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혹의 초콜릿을 핥은 인물은 강력계 형사 기훈(한석규).
그는 아내 수현(엄지원)과 애인 가희(이은주)를 오가며 욕망의 달콤함을 한껏 즐긴다.
그런 그에게 과제처럼 주어진 살인 사건은 욕망이 파국으로 치닫는 굴레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런 점에서 살인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경희(성현아)의 모습은 기훈에게 반면교사 역할을 한다.
'원초적 본능'처럼 에로틱 스릴러를 지향한 이 작품은 욕망과 미스터리라는 두 개의 줄 위를 오가는 곡예사 같다.
문제는 두 개의 줄이 따로 노는 것이다.
한석규와 이은주가 혼신을 다해 연기한 정사 장면과 살인사건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관객들은 샤론 스톤의 치마 속 같은 욕망의 쾌감이나 침대 밑에 굴러 떨어진 얼음송곳 같은 미스터리의 아슬아슬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오히려 따로 진행되는 두 개의 이야기는 관객에게 인내심을 요구할 뿐이다.
특히 욕망의 당위성을 찾기 위해 자동차 트렁크에 갇혀 기훈과 수현이 나누는 대화는 관객들에게 폐쇄공포증에 가까운 답답함만 안겨준다.
감독의 전작 '인터뷰'의 유장한 호흡을 좁은 공간으로 옮겨온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관객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기지 못하고 오히려 감독이 흥행 부담이라는 욕망의 늪에 빨려든 듯한 인상이 강하다.
창세기로 시작했기에 또 다른 성경 말씀인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장대하리라"(욥기)를 기대했으나 불발로 끝났다.
이 작품은 극장 개봉 후 충격적 영상과 파격적 소재 때문에 논란이 많았다.
인간사 곳곳에 배어있는 성욕을 적나라하게 펼쳐놓은 이야기와 이를 부각한 강렬한 영상은 관객들을 찬반양론으로 갈라놓았다.
특히 자동차 트렁크 장면을 둘러싸고 말이 많았다.
일부는 눈살을 찌푸릴 만큼 잔혹한 영상이 불쾌하다는 반응이었고, 일부는 실험적 영상이라며 옹호했다.
이와 더불어 변혁 감독의 연출력과 오랜만에 얼굴을 내민 한석규의 연기도 도마에 올랐다.
안타까운 것은 이처럼 논란이 많으면 사람들이 궁금해서 몰리기 마련인데 그렇지 못했다.
요즘은 이 작품이 논란거리를 떠나 얼마 전 자살한 이은주의 유작이라는 이유로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DVD를 통해 그의 모습을 다시 보니 안타깝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영상은 우리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괜찮은 편이다.
약간의 이중 윤곽선과 잡티가 보이지만 HD텔레시네를 거친 만큼 생각보다 해상도는 높다.
돌비 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또렷한 대사 전달에 치중한 만큼 서라운드 효과가 많지 않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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