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의 99번째 영화 '하류인생'(2004년)은 흑백 TV를 보는 느낌이다.
색상은 화려한 컬러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1960~70년대 흑백 TV 시대의 정서를 담고 있다.
그만큼 그때는 세상 또한 흑과 백이었다.
독재에 반대하면 무조건 빨갱이가 되는 세상이었고, 돈이 없으면 하류인생이 되는 시대였다.
임 감독과 제작자 이태원 사장, 정일성 촬영감독은 이 같은 시대상을 필름에 담았다.
주인공 태웅(조승우)은 1950년대 말 자유당 정권 말기에 불량 학생으로 살다가 건달이 된다.
5.16 쿠데타 덕분에 군부와 줄이 닿아 건설업으로 돈을 만진 그는 우여곡절 끝에 1970년대 박정희 유신시대에 영화제작자로 변신한다.
이 과정에서 1950년대부터 1970년대를 관통하는 시대상이 태웅의 삶에 에피소드처럼 투영된다.
풍경은 물론이고 말투, 복장, 심지어 배우들의 생김새까지 시대를 닮았다.
그런 점에서 어찌보면 이 작품은 이제는 육순과 칠순에 접어든 세 노장이 허연 머리를 맞대고 옛날을 반추하며 털어놓은 경로당 노인네들의 담화 같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이 영화는 한없이 진부하고 어설픈 작품이 돼버린다.
그러나 그 시대의 추억거리를 갖고 있으면 이 작품은 묘한 향수와 함께 정겨움으로 다가온다.
덕분에 남들과 말로 설명하기 힘든 좋은 느낌을 받았다.
그런대로 건달 역할이 잘 어울린 조승우도 좋았고, 오랜만에 김추자 목소리로 듣는 '님은 먼 곳에'도 좋았다.
그러고 보니 신중현도 이제 육순이 넘은 노인이다.
그가 만든 주제가를 듣다 보니 올해 초 그를 만났을 때 온통 하얗게 변해 버린 머리와 주름투성이 얼굴이 떠오른다.
의외의 발견은 김민선.
'여고괴담 2'에서 눈에 안 띄었는데 이 작품에서 그는 완전히 달리 보인다.
혹자는 그의 대사와 연기를 문제 삼지만, 영화에 녹아든 분위기로 봤을 때 그는 완전히 1970년대 여인이었다.
청춘물보다 오히려 그에게는 이런 시대극, 이런 역할이 잘 어울리는 듯싶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뛰어난 편이 아니다.
감상에 큰 지장은 없지만 군데군데 색감이 변하며 잡티도 보인다.
DTS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다소 과장된 편.
대사 전달은 또렷하고 배경 음악도 잘 살아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