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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추천 DVD / 블루레이

햄버거 힐(블루레이)

울프팩 2020. 9. 26. 23:44

월남전이 한창이던 1969년 5월 10일 미군의 제101 공수부대는 북베트남과 베트콩이 차지하고 있던 에이자우산의 937 고지를 공격했다.

이 봉우리를 중심으로 베트콩이 자주 출몰하자 이들을 섬멸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그런데 지리적인 상황이 미군에게 아주 불리했다.

경사가 가파른 봉우리는 울창한 나무로 뒤덮인 숲이어서 적이 보이지 않아 공중폭격이 힘들었다.

 

거기에 북베트남군은 산 전체에 거미줄처럼 땅굴을 파고 숨어 있다가 사방팔방에서 나타나 총질을 했다.

지금은 호찌민시로 이름이 바뀐 사이공에서 관광상품으로 볼 수 있는 월남전 당시 파놓은 땅굴에 들어가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양쪽 어깨가 벽에 쓸릴 정도로 좁고 낮은 굴을 따라 가보면 커다란 학교, 광장 등이 나오는 등 완전 지하도시를 방불케 한다.

어찌나 튼튼하게 만들었는지 어지간한 폭격에는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다.

 

전투에서 이겼지만 심리전에서 무너진 싸움

실제로 937 고지에 파놓은 땅굴이 그랬다.

아무리 대포를 쏴도 잘 무너지지 않아 북베트남군들은 미군이 포격할 동안 땅굴에 숨어 있다가 포격이 끝나면 다시 튀어나와 총을 쏴댔다.

 

그만큼 937 고지는 전폭기나 헬기로 폭격도 할 수 없고 대포를 쏴도 소용없고, 그렇다고 나무가 무성한 숲 때문에 탱크나 장갑차를 투입할 수도 없는 아주 고약한 곳이었다.

결국 방법은 하나, 보병들이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었다.

 

이 곳에 투입된 101 공수부대는 총을 쏴대고 수류탄을 던지며 개미새끼처럼 기어올랐다.

그러기를 무려 11번, 10일 동안 이어진 전투로 미군과 베트남군의 숱한 병사들이 쓰러졌다.

 

결국 미군은 방법이 없어 적이 보이지 않지만 산 전체를 전폭기로 폭격하고 아군이 죽든 말든 대포를 쏴대면서 고지를 점령했다.

심지어 공중지원을 위해 급파한 미군의 무장 헬기는 산비탈을 향해 무차별 사격하다가 같은 편인 미군을 숱하게 죽였다.

 

연이은 포격과 폭격에 울창한 정글 같던 산봉우리는 나무가 모두 불타버려 완전 민둥산이 돼버렸고 시체와 함께 흙이 쏟아져 내렸다.

참혹한 전투가 끝난 뒤 미군들은 이 고지를 시체로 다져진 곳이라는 뜻의 '햄버거 힐'로 불렀다.

 

미군은 어렵사리 고지를 점령했지만 곧 내려와 버렸다.

전략적 가치가 높은 곳이 아니어서 지키고 있을 이유가 없고 북베트남군 퇴치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플래툰에 크게 못 미치는 작품

하지만 미국 본토에서는 달랐다.

언론에 이 전투가 보도되면서 허무하게 물러날 곳을 무엇하러 숱한 젊은이들의 목숨을 바치며 차지했냐는 비난 여론이 폭등했다.

 

결국 햄버거 힐 전투는 그렇지 않아도 길어지는 월남전에 회의적이었던 미국 사람들 사이에서 반전 여론을 거세게 만든 사건이 됐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전투는 전술적으로 중요하지 않았지만 여론이라는 보이지 않는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친 싸움이 됐다.

 

존 어빈(John Irvin) 감독이 만든 '햄버거 힐'(Hamburger Hill, 1987년)은 937 고지 전투를 재현한 전쟁 영화다.

월남전 영화에서 보기 드문 고지전을 다룬 점에서 특이하다.

 

전투 장면은 꽤 실감 나게 잘 묘사했다.

북베트남군이 파놓은 덫에 걸려 죽은 병사나 총탄에 팔다리가 날아가고 얼굴이 부서지는 참혹한 장면이 그대로 재현됐다.

 

언덕을 오르다가 무너지는 흙더미와 함께 굴러 떨어진 병사들이 다시 총탄 세례를 무릅쓰고 기어오르는 장면을 보면 당시 전투가 얼마나 지난한 싸움이었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전투 장면은 잘 재현했지만 비전투 장면은 그렇지 못하다.

 

병사들 사이에 흑백 갈등과 배운자와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병사들의 대기 장면에 계속 나오지만 맥락 없이 이어지는 대사와 이야기 때문에 공감하기 힘들다.

대본의 문제인지, 한글자막의 오역 탓인지 알 수 없지만 공감은 커녕 병사들의 대화 속 맥락을 이해하기 힘들다.

 

아닌 게 아니라 자막 번역이 자연스럽지 않고 어색하다.

여기저기 오자도 보인다.

 

병사들의 고뇌와 갈등을 잘 묘사한 '플래툰'이나 '풀 메탈 자켓'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함량 미달인 작품이다.

'플래툰'(Platoon)과 '풀 메탈 자켓'(Full Metal Jacket)은 캐릭터가 살아 있어서 드라마가 빛이 났는데, 이 작품은 비디오 게임처럼 전투 장면만 남아 있고 드라마가 제대로 살지 못했다.

 

아무래도 감독의 역량이 부족한 탓으로 보인다.

지금은 유명한 배우가 됐지만 당시에는 신인이었던 돈 치들(Don Cheadle)과 딜란 맥더모트(Dylan McDermott)의 풋풋한 모습을 볼 수 있어 반갑다.

 

영화는 망작인데 음악은 좋다.

오티스 레딩의 'Sitting on the dock of the bay', 퍼시 슬레이지의 'when a man loves a woman' 등 귀에 익은 올드 팝들이 흘러나온다.

 

평범한 화질의 블루레이

아울러 필립 글래스가 담당한 오리지널 스코어도 영화의 암울한 분위기를 잘 살렸다.

1080p 풀 HD의 1.78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평범하다.

 

입자가 거칠고 플리커링과 필름 스크래치 등이 간간히 보인다.

그나마 클로즈업은 깔끔하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적당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헬기 이동 소리 등을 들어보면 소리의 이동성과 방향감이 좋다.

 

부록으로 음성해설과 제작과정, 의무병을 다룬 내용 등이 들어 있다.

음성해설을 제외하고 한글 자막을 지원한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죽거나 다친 병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존 어빈 감독은 월남전 당시 베트남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다.
촬영은 필리핀에서 했다. 배우들은 마닐라에서 머물며 두 시간 가량 떨어진 촬영장으로 이동해 영화를 찍었다.
촬영 당시 필리핀의 정치상황이 불안해 총격전이 자주 벌어졌다. 또 촬영 중 전기기사가 감전돼 사망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이 작품이 메이저 영화사의 첫 출연작이다.
제작진은 2만개의 타이어를 태워 사방에 가득한 포연을 재현했다.
제작진은 필리핀 정글에 수천 평의 세트장을 만들었다. 나무를 뽑아서 고지처럼 만들고 전투 장면을 찍었다.
필리핀 사람들을 고용해 베트남군으로 출연시켰다.
대본을 쓴 제임스 카라밧소스는 월남전 참전 용사다.
일부 장면은 월남전 당시 미국 언론에 보도된 유명한 사진을 참조해 재현했다.
촬영은 '람보3'의 감독인 피터 맥도널드가 맡았다.

 
 
햄버거 힐2 : Movie & Classic - Robert Schumann - Sonata for Piano NO. 3 OP. 14 F minor Gesange der Fruhe OP. 133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햄버거 힐 (1Disc 풀슬립 초회한정판) : 블루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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