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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울프팩 2011. 9. 14. 19:32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1980년대 초반, TV 주말의 명화 시간에 방영하던 오리지널 1968년판 '혹성탈출'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원숭이들이 말을 하고 사람을 노예처럼 부려서가 아니다.

영화적 상상이니, 얼마든 그럴 수 있지 않겠냐며 SF 소설을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봤다.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충격은 영화가 끝날 때 찾아 왔다.

우주선을 타고 갔다가 이름모를 행성에 불시착한 주인공(찰튼 헤스톤) 일행이, 행성을 지배하던 원숭이들을 피해 바닷가로 말을 달려 달아나가다 커다란 물체에 맞닥뜨린다.
찰튼 헤스톤은 할 말을 잃고 물체를 바라보다가 말에서 내려 바닥에 주저 앉아 절규를 한다.

그가 본 물체는 바닷가에 삐딱하니 쓰러져 반쯤 모래에 파묻힌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원숭이들이 지배하는 이름모를 별은 지구였고, 엔딩은 결국 인류의 멸망을 의미했다.

어찌나 놀랍던 지, 찰튼 헤스톤 못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그 작품은 두고 두고 잊혀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2001년 팀 버튼이 만든 리메이크작 '혹성탈출'은 실망스러웠다.
오리지널만큼 충격적이지도, 교훈적이지도 않고 재미도 없었다.

그래서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이 만든 프리퀄인 이번 작품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1968년 원작을 봤기 때문에 원작만큼 공포에 가까운 충격을 선사하지는 않았지만, 긴장감 만큼은 일품이다.

말 못하는 원숭이가 서서히 지능이 발달하면서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하는 과정을 꽤나 그럴듯 하게 묘사했다.
과학적 설명의 당위성은 차치하더라도, 매 순간 긴장감을 최고로 끌어올려서 폭발시키는 오락적 응집력은 가히 최고라 할 만 한 영화다.

그만큼 스토리가 재미있고, 컴퓨터로 만든 원숭이들의 연기가 그럴 듯 하다.
원숭이 연기는 '반지의 제왕'을 만든 피터 잭슨 감독의 웨타 스튜디오에서 모션 캡처 방식으로 배우들의 연기를 촬영한 뒤 CG로 재현하는 작업을 거쳤다.

그래서 그런지, 원숭이 연기가 CG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소름끼칠 정도로 실제 같다.
모션 캡처를 위한 동작은 골룸과 '킹콩' 연기로 유명한 앤디 서키스가 맡았다.

과거 오리지널 시리즈를 봤다면, 이번 작품에서 시저가 자유의 여신상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는 장면 등 여러가지 의미들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오리지널 시리즈를 보지 않았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오히려 70년대 나왔던 조잡한 2,3편보다 더 재미있게 잘 만든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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