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릴린 먼로하면 우선 떠오르는 모습이 밑에서 불어닥친 바람에 솟아오른 치마를 누르는 사진이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이 사진은 바로 빌리 와일더 감독의 '7년 만의 외출'(The Seven Year Itch, 1955년)의 홍보 사진이다.
하지만 이 사진 때문에 잔뜩 기대에 부풀어 영화를 보면 실망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치마가 날리며 먼로의 팬티가 드러나는 장면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의 장면을 촬영하긴 했다.
하지만 당시 영화제작협회가 만든 검열방침인 헤이스코드 때문에 자진 삭제했다.
당시 헤이스코드는 5초 이상 키스를 하면 안되고, 침대에 앉아 키스를 나눌 때에는 반드시 한쪽 발이 바닥에 닿아 있어야 하는 등 지금보면 황당한 검열기준으로 당시 영화제작을 옥죄었다.
이것만 봐도 먼로가 활동하던 1950년대 영화 제작 환경이 얼마나 까다롭고 자유롭지 못했는 지 알 수 있다.
섹스 심벌로 알려진 먼로의 작품 중에 정사 장면이 단 한 장면도 없다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헤이스코드 때문에 이 영화는 위험한 발상을 교묘한 말장난과 은유로 피해갔다.
우리에겐 7년 만의 외출이란 제목으로 번역됐지만, seven year itch란 숙어는 권태기를 뜻한다.
더불어 배우자에게 싫증이나 7년 만에 슬그머니 찾아드는 바람기를 의미한다.
이 작품은 부인과 아이가 여름 휴가를 떠나 혼자 남은 남성이 미모의 윗층 처녀와 바람이 나는 내용이다.
1952년 조지 액슬로드가 쓴 브로드웨이의 성공한 연극을 스크린으로 옮기면서 제작진은 연극에 나오는 불륜 장면 등을 모두 뺐다.
대신 성적인 코드를 암시하는 도구들을 등장시키거나 남자의 상상으로 처리하면서 슬쩍 넘어갔다.
그러면서 다시 남자가 정신을 차려 잠시나마 불륜을 꿈꾼 자신을 질책한다.
따라서 영화를 보다보면 갈팡질팡한 남자의 태도에 이도저도 아닌 내용이 되고 만다.
이처럼 유유부단한 내용과 도덕적 자세를 견지한 이유가 바로 검열 때문이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시대 상황을 감안하고 행간을 읽어야 한다.
정작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인물들의 의미심장한 대사와 도구 속에 숨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화려하게 빛난 것은 더 할 수 없이 아름답게 나온 마릴린 먼로 때문이다.
비록 먼로는 지하철 통풍구에 치마가 날리는 유명한 장면을 수 많은 대중 앞에서 촬영하다가 남편인 프로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에게 두드려 맞고 이혼까지 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가 가장 빛나고 사랑스럽게 나온 작품이다.
그래서 와일더감독은 매일 지각하고 대사를 못외워 같은 장면을 무려 80번이나 찍은 먼로를 버리지않았다.
그만큼 이 작품은 마릴린 먼로를 위한 영화다.
2.5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윤곽선이 두텁고 디테일이 떨어지지만 무려 57년 전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난한 화질이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전방에 소리가 집중돼 있다.
부록으로 빌리 와일더 작가의 음성해설, 제작과정, 삭제장면, 먼로와 와일더에 대한 회고 등 다양한 내용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특히 먼로와 와일더에 대한 회고는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조지 액슬로드가 극본을 쓴 원작은 1952년 11월 브로드웨이 연극으로 시작됐다. 와일더 감독은 검열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검열에 걸릴 만한 심한 대사를 제출한 뒤 이를 수정하면서 원하는 대사를 집어 넣었다. 특이한 오프닝 타이틀은 유명 영상디자이너인 솔 바스의 작품. 그는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과 '싸이코'를 비롯해 '카지노' '좋은 친구들' 등 숱한 작품의 타이틀 디자인을 맡았다. 또 AT&T, 미놀타 등 기업 로고 등도 디자인했다. 남자 주인공이 들고 있는 노는 억누른 성적 욕망을 상징한다. 와일더 감독이 노를 추가했다. 처음에 와일더 감독은 남자 주인공 역에 게리 쿠퍼를 원했고, 20세기폭스사 사장 대릴 자눅은 윌리엄 홀덴을 원했다. 결국 제 3의 후보로 제임스 스튜어트를 골랐으나 일정이 맞지 않았다. 와일더 감독은 원작자인 액슬로드에게 전화를 걸어 대본을 함께 썼다. 노마 진 모텐슨이 본명인 먼로는 어려서 편부 슬하에서 자라며 성적 학대를 겪었다.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유명한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패러디한 장면. 액슬로드는 촬영 당시 우울증이 심해서 예민했던 먼로를 "정신병자"라고 표현했다. 먼로는 특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 친구가 거의 없었고 카메라를 두려워해 리허설만 해도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였다. 불륜을 영화화하면 안된다는 당시 검열의 잣대 때문에 실제로 불륜이 일어나는 대목을 모두 환상처럼 처리했다. 연극에서는 먼로 역을 영화 '타잔'에서 제인을 연기한 바네사 브라운이 맡았다. 샴페인 병에 끼인 손가락 역시 검열 때문에 돌려서 표현한 성적인 암시다. 1950년대 전축.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이 테마로 쓰였다. 이 곡은 도덕적 강박증에 시달리는 남자의 불안과 성적 일탈을 꿈꾸는 욕망을 동시에 상징한다. 먼로는 촬영 당시 28세였고, 이 영화 미국 개봉일이 그의 29세 생일이었다. 먼로는 1953년 12월 도색잡지 '플레이보이' 창간호에 누드달력을 실어 섹스심벌로 부상했다. 그는 최초의 플레이메이트였다. 배관공이 욕조에 렌치를 떨어뜨린 뒤 손을 집어넣어 더듬거리며 찾는 장면이 삭제됐다. 블루레이 삭제 장면에서 이 부분을 볼 수 있다. 원작 연극은 남자가 이름모를 여자와 잠을 잔 뒤 부인을 더 사랑하게 된다. 원작자는 "간통도 때론 결혼에 이로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했단다. 먼로의 치마가 날리는 장면은 뉴욕 렉싱턴가와 52번가 사이에 위치한 트랜스럭스 극장 앞에서 최초 촬영했다. 당시 20세기폭스사 홍보 담당자는 언론에 촬영 얘기를 일부러 슬쩍 흘렸고 기자들과 군중이 구름처럼 몰려서 촬영을 구경했다. 특히 먼로의 치마가 올라가 팬티가 보일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이 때문에 먼로는 처음부터 2장의 팬티를 겹쳐 입고 찍었지만 군중들 틈에 끼어있던 남편 조 디마지오는 마음이 편할리 없었다. 결국 그날 밤 디마지오는 심하게 다툰 끝에 먼로의 어깨에 멍이 들 정도로 때렸고, 2주 뒤 먼로가 이혼을 청구했다. 그렇게 그들의 결혼생활은 9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다. 사람들의 환호성 때문에 먼로의 치마가 날리는 장면은 나중에 20세기폭스 스튜디오에 세트를 만들어 다시 찍었다. 영화에 나오는 장면은 바로 이 세트 촬영이다. 평범한 사람들도 미인과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기 위해 발탁된 배우 톰 이웰은 1994년 죽었다. 이 영화는 1955년 최고 흥행작이었다. 언뜻보면 정윤희와도 닮은 먼로는 지금봐도 참 아름다운 배우다. 먼로는 이 영화를 찍고 7년 뒤 사망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이 사진은 바로 빌리 와일더 감독의 '7년 만의 외출'(The Seven Year Itch, 1955년)의 홍보 사진이다.
하지만 이 사진 때문에 잔뜩 기대에 부풀어 영화를 보면 실망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치마가 날리며 먼로의 팬티가 드러나는 장면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의 장면을 촬영하긴 했다.
하지만 당시 영화제작협회가 만든 검열방침인 헤이스코드 때문에 자진 삭제했다.
당시 헤이스코드는 5초 이상 키스를 하면 안되고, 침대에 앉아 키스를 나눌 때에는 반드시 한쪽 발이 바닥에 닿아 있어야 하는 등 지금보면 황당한 검열기준으로 당시 영화제작을 옥죄었다.
이것만 봐도 먼로가 활동하던 1950년대 영화 제작 환경이 얼마나 까다롭고 자유롭지 못했는 지 알 수 있다.
섹스 심벌로 알려진 먼로의 작품 중에 정사 장면이 단 한 장면도 없다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헤이스코드 때문에 이 영화는 위험한 발상을 교묘한 말장난과 은유로 피해갔다.
우리에겐 7년 만의 외출이란 제목으로 번역됐지만, seven year itch란 숙어는 권태기를 뜻한다.
더불어 배우자에게 싫증이나 7년 만에 슬그머니 찾아드는 바람기를 의미한다.
이 작품은 부인과 아이가 여름 휴가를 떠나 혼자 남은 남성이 미모의 윗층 처녀와 바람이 나는 내용이다.
1952년 조지 액슬로드가 쓴 브로드웨이의 성공한 연극을 스크린으로 옮기면서 제작진은 연극에 나오는 불륜 장면 등을 모두 뺐다.
대신 성적인 코드를 암시하는 도구들을 등장시키거나 남자의 상상으로 처리하면서 슬쩍 넘어갔다.
그러면서 다시 남자가 정신을 차려 잠시나마 불륜을 꿈꾼 자신을 질책한다.
따라서 영화를 보다보면 갈팡질팡한 남자의 태도에 이도저도 아닌 내용이 되고 만다.
이처럼 유유부단한 내용과 도덕적 자세를 견지한 이유가 바로 검열 때문이었다.
그만큼 이 영화는 시대 상황을 감안하고 행간을 읽어야 한다.
정작 감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인물들의 의미심장한 대사와 도구 속에 숨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화려하게 빛난 것은 더 할 수 없이 아름답게 나온 마릴린 먼로 때문이다.
비록 먼로는 지하철 통풍구에 치마가 날리는 유명한 장면을 수 많은 대중 앞에서 촬영하다가 남편인 프로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에게 두드려 맞고 이혼까지 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가 가장 빛나고 사랑스럽게 나온 작품이다.
그래서 와일더감독은 매일 지각하고 대사를 못외워 같은 장면을 무려 80번이나 찍은 먼로를 버리지않았다.
그만큼 이 작품은 마릴린 먼로를 위한 영화다.
2.5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윤곽선이 두텁고 디테일이 떨어지지만 무려 57년 전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난한 화질이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전방에 소리가 집중돼 있다.
부록으로 빌리 와일더 작가의 음성해설, 제작과정, 삭제장면, 먼로와 와일더에 대한 회고 등 다양한 내용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특히 먼로와 와일더에 대한 회고는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조지 액슬로드가 극본을 쓴 원작은 1952년 11월 브로드웨이 연극으로 시작됐다. 와일더 감독은 검열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검열에 걸릴 만한 심한 대사를 제출한 뒤 이를 수정하면서 원하는 대사를 집어 넣었다. 특이한 오프닝 타이틀은 유명 영상디자이너인 솔 바스의 작품. 그는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과 '싸이코'를 비롯해 '카지노' '좋은 친구들' 등 숱한 작품의 타이틀 디자인을 맡았다. 또 AT&T, 미놀타 등 기업 로고 등도 디자인했다. 남자 주인공이 들고 있는 노는 억누른 성적 욕망을 상징한다. 와일더 감독이 노를 추가했다. 처음에 와일더 감독은 남자 주인공 역에 게리 쿠퍼를 원했고, 20세기폭스사 사장 대릴 자눅은 윌리엄 홀덴을 원했다. 결국 제 3의 후보로 제임스 스튜어트를 골랐으나 일정이 맞지 않았다. 와일더 감독은 원작자인 액슬로드에게 전화를 걸어 대본을 함께 썼다. 노마 진 모텐슨이 본명인 먼로는 어려서 편부 슬하에서 자라며 성적 학대를 겪었다. 프레드 진네만 감독의 유명한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패러디한 장면. 액슬로드는 촬영 당시 우울증이 심해서 예민했던 먼로를 "정신병자"라고 표현했다. 먼로는 특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해 친구가 거의 없었고 카메라를 두려워해 리허설만 해도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였다. 불륜을 영화화하면 안된다는 당시 검열의 잣대 때문에 실제로 불륜이 일어나는 대목을 모두 환상처럼 처리했다. 연극에서는 먼로 역을 영화 '타잔'에서 제인을 연기한 바네사 브라운이 맡았다. 샴페인 병에 끼인 손가락 역시 검열 때문에 돌려서 표현한 성적인 암시다. 1950년대 전축.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이 테마로 쓰였다. 이 곡은 도덕적 강박증에 시달리는 남자의 불안과 성적 일탈을 꿈꾸는 욕망을 동시에 상징한다. 먼로는 촬영 당시 28세였고, 이 영화 미국 개봉일이 그의 29세 생일이었다. 먼로는 1953년 12월 도색잡지 '플레이보이' 창간호에 누드달력을 실어 섹스심벌로 부상했다. 그는 최초의 플레이메이트였다. 배관공이 욕조에 렌치를 떨어뜨린 뒤 손을 집어넣어 더듬거리며 찾는 장면이 삭제됐다. 블루레이 삭제 장면에서 이 부분을 볼 수 있다. 원작 연극은 남자가 이름모를 여자와 잠을 잔 뒤 부인을 더 사랑하게 된다. 원작자는 "간통도 때론 결혼에 이로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했단다. 먼로의 치마가 날리는 장면은 뉴욕 렉싱턴가와 52번가 사이에 위치한 트랜스럭스 극장 앞에서 최초 촬영했다. 당시 20세기폭스사 홍보 담당자는 언론에 촬영 얘기를 일부러 슬쩍 흘렸고 기자들과 군중이 구름처럼 몰려서 촬영을 구경했다. 특히 먼로의 치마가 올라가 팬티가 보일 때마다 사람들은 환호했다. 이 때문에 먼로는 처음부터 2장의 팬티를 겹쳐 입고 찍었지만 군중들 틈에 끼어있던 남편 조 디마지오는 마음이 편할리 없었다. 결국 그날 밤 디마지오는 심하게 다툰 끝에 먼로의 어깨에 멍이 들 정도로 때렸고, 2주 뒤 먼로가 이혼을 청구했다. 그렇게 그들의 결혼생활은 9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다. 사람들의 환호성 때문에 먼로의 치마가 날리는 장면은 나중에 20세기폭스 스튜디오에 세트를 만들어 다시 찍었다. 영화에 나오는 장면은 바로 이 세트 촬영이다. 평범한 사람들도 미인과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기 위해 발탁된 배우 톰 이웰은 1994년 죽었다. 이 영화는 1955년 최고 흥행작이었다. 언뜻보면 정윤희와도 닮은 먼로는 지금봐도 참 아름다운 배우다. 먼로는 이 영화를 찍고 7년 뒤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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