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공리 11

붉은 수수밭(블루레이)

중국판 '분노의 포도'라고 할 수 있는 '붉은 수수밭'(紅高梁, 1988년)은 장이머우(장예모)라는 걸출한 중국 감독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 그는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로 중국 제5세대 감독의 선두 주자로 떠올랐다. 모옌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다분히 민족적이며 사회주의적이다. 돈 때문에 양조장을 운영하는 쉰 살 넘은 노총각이자 나병 환자에게 팔려간 젊은 여성(공리)의 이야기다. 시집갈 때까지만 해도 여성은 다분히 일부종사(一夫從事)의 틀 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남편의 죽음으로 술도가를 맡게 되면서 여성은 여장부로 변신한다. 남정네들을 이끌고 술도가를 일으키며 급기야 항일 무장투쟁에 나서기까지 한다. 이 과정에서 여인은 더 이상 봉건적 잔재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마이애미 바이스(블루레이)

'마이애미 바이스'는 1980년대 중반 인기를 끌었던 TV 시리즈다. 돈 존슨과 에드워드 제임스 올모스가 형사 콤비를 이뤄 다양한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물이었다. 특히 구릿빛으로 그을린 피부의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던 돈 존슨이 섹시 가이로 인기를 끌었다. 'morning train'과 007 주제가 'for your eyes only'로 유명한 시나 이스튼도 이 시리즈에 출연한 적이 있다. '마이애미 바이스'는 '스타스키와 허치' 시리즈하고 맥이 닿아 있다. 스타스키와 허치, 마이애미 바이스의 소니와 리카도는 앞 뒤 가리지 않고 저돌적으로 달려 들어 사건 해결을 하는 돌격파 형사들이다. 이들을 통해 관객들은 화끈하고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여기 주목한 마이클 만 감독이 같은 제목(Miami Vice..

국두 (블루레이)

장예모(장이머우) 감독은 '영웅' 이후 작품들로 정치색 논란에 휩싸였지만 이전 작품들에선 인간성 탐구라는 주제를 중국 전통문화와 훌륭하게 접목시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국두'(菊豆, 1990년)도 그런 작품이다. 내용은 1920년대 염색공방의 늙은 주인이 대를 잇기 위해 헐값에 사들인 젊은 처자 국두의 삶을 다뤘다. 늙은 남편의 성적 학대 속에 힘든 나날을 보내던 국두는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지자 염색공방에서 일하던 젊은 일꾼과 사랑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태어난 염색공방의 대를 이을 아들은 남편이 아닌 일꾼의 아이다. 정작 국두는 모든 것을 접고 일꾼과 사랑에 빠지고 싶지만 철저한 유교적 가풍과 관습에 억눌려 이를 숨긴채 살아간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은 아슬아슬하면서도 가슴아픈 사랑을 이어가다 ..

황후화 (블루레이)

'황후화'(Curse of the Golden Flowers, 2006년)는 영상 미학의 대가인 장예모 감독의 작품답게 영상이 화려한 작품이다. 영화 내내 화면은 온통 형형색색의 색깔로 수놓는다. '붉은 수수밭' '영웅' '연인' 등 장예모 감독의 작품들은 각각의 작품을 상징하는 특징적인 색이 있는데, 이번 '황후화'의 대표적인 색은 황금빛이다. 당나라 시절 황실의 비극적 암투를 다룬 만큼 황제의 색인 황금빛이 주를 이뤘다. 내용은 장 감독의 작품이 언제나 그렇듯 인간의 복잡 미묘한 심리가 빚어내는 갈등을 다뤘다. 권력에 집착하는 황제와 이를 노린 황후, 태자들의 사랑이 얽혀 뿜어내는 무서운 욕망과 갈등은 마치 세익스피어와 그리스의 비극을 보는 것 같다. 아닌게 아니라 리어왕과 오이디푸스 컴플렉스적인 비..

에로스

'에로스'(Eros, 2004년)는 왕가위, 스티븐 소더버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등 3명의 감독이 각각 감독한 약 40분 분량의 단편 3편을 모은 옴니버스 영화다. 이 작품은 제목이 말해주듯 사랑에 대한 세 감독의 헌사다. 워낙 개성이 강한 감독들인 만큼 작품의 색깔도 확연하게 차이난다. 왕가위 감독은 그의 전작들에서 보여준 것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은근하면서도 안타까운 사랑을 다뤘고,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술자리에서 흔히 얘기하는 야한 농담처럼 성을 패러디했다. 반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은 가장 직접적으로 육욕에 대한 갈망을 이야기한다. 평소 세 감독의 스타일을 좋아했다면 한 자리에서 비교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다. 그만큼 내용을 떠나 감독의 스타일을 이해하겠다는 시각으로 접근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