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공효진 8

가장 보통의 연애(블루레이)

김한결 감독의 '가장 보통의 연애'(2019년)는 남녀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은근한 로맨스를 유쾌하게 그려낸 영화다. 그 시작이 이별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고 뜻밖의 우연으로 운명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면서 만남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재훈(김래원)은 연인과 충격적인 이별을 겪고 난 뒤 매일 술에 취해 마감한다. 그의 직장에 새로 들어온 선영(공효진) 역시 예상치 못한 이별로 회사를 옮겼다. 둘 사이에 이어질 것 같지 않은 끈은 우연한 술자리와 서로에 대한 동병상련, 호기심이 겹치면서 반전의 기미를 보인다. 이 과정을 영화는 유쾌하고 시원하게 풀어낸다. 두 주인공의 만남은 철없는 청춘남녀의 닭살 돋는 연애도 아니고 세상사에 찌든 중년의 곰삭은 거리재기도 아니다. 현재 상황을 깔끔하게 인정하는 적당히..

고령화 가족

송해성 감독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걸작 '파이란'이다.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는 명장면인 최민식이 바닷가에 주저 앉아 오열하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영화를 보는 동안 가슴 속에 서서히 슬픔과 감동이 차오르던 '파이란'의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는데, 이는 곧 송 감독의 인물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깊이있는 탐구가 읽히기 때문이다. 마치 시간이 지날 수록 서서히 상대를 알아가는 과정같다. 그가 이번에 내놓은 영화 '고령화가족'(2013년)도 그런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그만의 세계에 빠져 사람들이 몰라준다고 안타까워하던 '역도산'의 자아도취를 버리고 다시 원점인 '파이란'으로 돌아갔다. 이 작품은 가족의 해체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김질한다. 늙은 홀어머니 밑에 모인 말썽꾸러기 삼남매가 서로의..

영화 2013.05.18

미쓰 홍당무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2008년)를 보면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이 생각난다. 라쇼몽은 재판장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 본 탓에 서로 다른 증언을 하며 혼란이 발생하는 이야기다. 미쓰 홍당무도 마찬가지다. 다소 엉뚱하고 4차원같은 인간 군상들이 자신만의 관점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재단하며 사건은 비틀리고 꼬인다. 특히 막판 방은진이 등장인물들을 어학실에 불러 모아놓고 시시비비를 따지는 장면은 영락없는 라쇼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돋보이는 것은 독특한 캐릭터 때문이다. 안면홍조증을 갖고 있는 여인과 그가 좋아하는 과거 스승이자 지금은 동료인 교사, 왕따 소녀, 백치미 여인 등 캐릭터들이 자기만의 분명한 색깔을 갖고 살아 있다. 특히 등장인물들이 괴로운 ..

다찌마와리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년)는 아예 작정하고 만든 '쌈마이' 영화다. 첩보물인 007 시리즈의 구성을 따서 남자 주인공과 여자 첩보원이 만주와 미국, 유럽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하는 내용이다. 언뜻 개요만 들으면 그럴듯한 액션이 연상되지만 정작 작품을 보면 실소가 터져나온다. 만주, 유럽, 미국으로 소개되는 풍경들은 차를 타고 오가며 본 것 처럼 어딘지 눈에 많이 익은 곳들이다. 여기에 굳이 자막을 보지 않아도 내용을 알 수 있을 듯한 일본어와 중국어, 심지어 요란한 총격전때 뜬금없이 터져나오는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까지 영화는 온통 B급 무비의 키치적 정서로 넘쳐난다. 특히 과장된 오버 연기는 거의 '총알탄 사나이' 수준이다. 그만큼 작정하고 들이댄 엉터..

M (엠)

'M'(2007년)은 순정파 이명세 감독의 스타일리쉬한 순애보다.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소설가 민우(강동원)가 백일몽같은 꿈과 현실을 오가며 첫 사랑 미미(이연희)와의 아름다우면서 가슴아픈 추억을 되찾아가는 이야기다. 단순 명료한 이야기를 이명세 감독만의 뛰어난 영상화법으로 포장했다. 덕분에 '형사'에서 보여준 마약같은 중독성을 가진 독특한 비주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작인 '형사'도 아름다웠지만, 이 작품은 '형사'보다도 더 진일보한 영상미를 지닌 수작이다. 마치 고흐의 그림처럼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한낮의 거리, 강렬한 명암대비는 언뜻보면 왕가위의 '중경삼림'과 '아비정전'처럼 잠에 취한 듯 나른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여기에 정훈희가 부른 '안개'는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졌다. 심지어 음악까지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