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김상호 8

완득이

어느 학교에나 있을 법한 말썽꾸러기 불량학생과 이를 계도하는 선생의 이야기는 1970년대 학창물이래 쭉 이어져온 레파토리다.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주제를 달리 하려면 갖가지 에피소드와 캐릭터를 잘 살려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이한 감독의 '완득이'는 성공적이다. 김려령 작가가 쓴 원작 소설의 힘이 크겠지만, 글에서 보여줄 수 없는 역동적인 모습들은 이한 감독이 잘 살렸다. 예를 들어 주인공 완득이를 연기한 유아인의 킥복싱 장면이나 시종일관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옆집 아저씨, 빠르고 거친 말투 속에 아이들에 대한 애정을 담아 메시지를 전하는 김윤석이 연기한 담임교사 동주 등의 모습이 그렇다. 영화는 시종일관 잔잔하다. 일부러 극적인 이야기를 끼워 넣지도, 눈물샘을 자극하거나 멋있는 액션을 삽입하지도 않았다..

영화 2011.10.29

이끼

강우석 감독의 영화 '이끼'를 보기 전에 윤태호가 그린 원작 만화를 일부러 보지 않았다. 내용을 미리 알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의 그림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덕분에 원작에 얽매이지 않고 영화를 담백하게 볼 수 있었다. 원작을 배제하고 본 영화는 밀실 추리소설 같은 작품이다. 비록 주인공은 어디든 갈 수 있고 다양한 인물과 공간이 등장하지만 사건의 무대는 권력자인 이장이 지배하는 어느 외딴 마을이다. 이곳에서 벌어진 어느 노인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은 결국 마을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점에서 밀실 추리소설과 다름없다. 그만큼 영화는 한정된 공간, 한정된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는 곧 주어진 5장의 패를 들고 승부를 걸어야 하는 포커게임 같다는 소리다. 얼마 되지..

영화 2010.07.17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싱글즈' 개봉 무렵 배우 장진영을 만났다. 엄정화와 함께 인터뷰를 했는데, 차분하면서도 강단있는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그런지, 김해곤 감독의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2006년)에서 보여준 장진영의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장진영에 대한 기억과 겹쳐 그가 가장 빛을 발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장진영은 이 작품에서 애인있는 남자를 사랑하는 술집 여자로 나와 적당한 독기와 열정으로 불꽃처럼 타올랐다. '국화꽃 향기' '싱글즈' 등에서도 열심히 연기했지만 이 작품 만큼 빛을 발하지는 못한 것 같다. 장진영은 이 작품이 흥행에 참패한 뒤 출연을 후회했다고 한다. 험한 욕설을 내뱉으며 처절하게 망가진 모습이 이미지를 실추시켰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본인은 아쉬운 부분이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