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 감독의 작품은 호흡이 긴 유럽 영화에 가깝다. '멋진 하루'도 그렇지만 그의 장편 데뷔작인 '여자, 정혜'(2005년)는 더더욱 찬찬한 시선의 영상이 긴 호흡으로 펼쳐진다. 어린 시절 성폭행을 당한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여자 정혜(김지수)의 일상을 따라가는 영화는 숏과 숏 사이를 긴 침묵이 메우고 있다. 주인공 정혜의 차분한 시선으로 풍경과 사물을 섬세하게 바라보는 영상은 그만큼 할리우드 스타일의 빠른 커트에 익숙해 있다면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화려한 볼거리도 없다.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에 불쑥 카메라를 들이댄 것 처럼 무심한 영상이 시종일관 펼쳐진다. 그만큼 세심한 표정연기가 필요해 배우들이 연기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연기가 아닌 것 처럼 가장하는 연기가 가장 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