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애니메이션 174

타잔 SE (블루레이)

올해로 타잔이 100세가 됐다. 원작자인 에드가 라이스 버로스가 1912년 올스토리 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묶어서 책으로 펴낸 것이 1914년이다. 잡지에 실린 연도로 따지면 102세이지만 출판 연도로 따지면 100세가 된 셈이다. 그럼에도 기억 속의 타잔은 슈퍼맨처럼 영원한 청년이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 흑백TV 시절, 타잔은 600만불 사나이 못지 않은 TV 속 영웅이었다. 막판 기이한 함성으로 코끼리떼를 불러 모아 악당들을 무찌르는 줄거리는 언제나 똑같지만, 근육질 몸을 뽐내며 정글을 나는 듯 이동하는 타잔의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 좋았다. 타잔이 영화로 제작된 것만 47회이고, TV시리즈도 숱하게 만들어져서 수 많은 타잔이 등장했다.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라는 사실보다 타잔으로 기억되는..

겨울왕국 (블루레이)

디즈니 스튜디오는 이전에도 '겨울왕국'(Frozen, 2013년)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번 시도했다. 우선 창립자인 월트 디즈니가 1930년대 '백설공주' 성공 이후 또다른 성공작을 꿈꾸며 동화에 기초한 이야기를 찾았다. 이때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전성기를 이끈 9명의 애니메이터, 나인 올드맨 중 한 명이었던 마크 데이비스가 안데르센 동화집을 권했다. 여기서 월트 디즈니가 선택한 작품이 바로 '겨울왕국'의 원작인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이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는 1939년 기획단계에서 작품 번호만 붙여놓고 정작 제작을 하지 못했다. 이후 까맣게 잊혀졌던 이 작품이 다시 기획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다. 2002년과 2009년 두 번에 걸쳐 작품화가 시도됐으나 역시 여의치 않았다. 이..

킴 베신저의 쿨 월드

랄프 박시 감독의 '쿨 월드'(Cool World, 1992년)는 국내 DVD 타이틀 제목이 '킴 베신저의 쿨 월드'이다. 제작사에서 아무래도 가장 인지도 있고, '나인 하프 위크' 이후 섹시 심벌로 꼽히는 킴 베신저를 내세워야 잘 팔릴 것이라고 본 모양이다. 그렇다고 킴 베신저가 스타의 전부는 아니다. 브래드 피트, 가브리엘 번 등 쟁쟁한 스타들이 아주 젊은 모습으로 줄줄이 나오지만 당시로서는 킴 베신저 만큼 유명 스타는 아니었다. 이 영화는 독특하다. 교통사고를 당한 주인공이 만화영화 속으로 빨려들어가 현실과 만화 사이를 오가며 모험을 벌이는 내용. 당시로서는 기발하고 독특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1988년에 나온 로버트 저멕키스 감독의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

모노노케 히메 (블루레이)

지브리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 1997년)는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독특하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비행 장면 등 하늘에 대한 동경과 서구식 이야기로 풀어가는 서양 문화에 대한 집착이 보이지 않는다. '이웃집 토토로'처럼 일본 고유의 문화를 다룬, 탈 서양적인 작품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 작품은 일본 고유의 전승 설화에 의존하고 있다. 내용은 인간의 자연파괴에 분노한 짐승들이 인간을 공격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주인공과 원령공주, 즉 모노노케 히메의 활약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유럽의 민담을 1740년 프랑스 여류작가 가브리엘 수잔 바르보 드 빌레느브가 정리한 '미녀와 야수'의 흔적을 찾기도 하는데, 하야오 감독은 여기서 모티브만 빌렸다. 하야..

소중한 날의 꿈 (블루레이)

무려 11년. 안해준, 한혜진 감독의 애니메이션 '소중한 날의 꿈'(2011년)은 제작에 11년이 걸렸다. 일일이 이 땅 구석구석을 발로 찾아 다니며 하나 하나 사모은 소품을 꼼꼼히 작품 속에서 표현하기 위해 걸린 시간이다. 그만큼 정겨운 손그림으로 살린 이 작품의 디테일은 발군이다. 박치기왕 김일이 활약하던 프로레슬링 시절의 네 발 달린 흑백TV, 가게 천장에 매달려 있던 파리 끈끈이, 그리고 신작로에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던 삼륜차처럼 1970년대 시대상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어찌나 사실적으로 묘사됐는 지 보는 내내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는 것 같았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꼼꼼하게 재현한 디테일의 승리다. 비단 소품과 풍경만 그런게 아니다. 작품 곳곳에 임희춘 배철수 차범근 차인태 손석희 임권택 정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