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유덕화 14

열혈남아 (블루레이)

어떤 판본을 먼저 봤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1980년대 후반 대학 시절에 처음 본 왕가위 감독의 걸작 '열혈남아'(1987년, http://wolfpack.tistory.com/entry/열혈남아-골든-콜렉션)는 왕걸과 엽환의 노래 '汝是我胸口永遠的通'(너를 보낸 내 가슴은 아프고)로 기억한다. 유덕화가 장만옥의 팔을 낚아 채 공중전화 박스로 뛰어든 뒤, 하얗게 부서지는 형광등 불빛 아래서 열렬하게 키스를 나눌 때 흘러 나오던 이 노래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왕걸의 CD를 듣다가 이 노래가 흘러 나오면 가슴이 뛰며 아련함이 밀려 온다. 그만큼 왕걸과 엽환의 노래는 왕가위 감독의 데뷔작인 이 영화의 장면들과 기막히게 어울렸다. 따라서 두 사람의 노래가 없는 '열혈남아'는 상상할 수도 없고, 극단..

홍콩 - 구룡 & 침사추이

홍콩 영화를 보면 늘 궁금했던 한 가지가 있다. 홍콩 사람들에게도 소속감이 있을까. 홍콩은 중국의 섬 같은 존재다. 오랜 세월 영국의 조차지로 식민지 아닌 식민지 생활을 하며 중국과 다른 삶을 살았고, 중국에 반환된 지금도 본토와는 또다른 문화를 지닌 낯선 타향 같은 곳이다. 영국도 아니요, 중국도 아닌 무국적자처럼 지낸 홍콩 사람들은 월드컵이나 올림픽 같은 국가대항전에서 과연 누구를 응원할 지, 아니 과연 우리가 맹목적으로 느끼는 최소한의 애국심이라도 있을 지 궁금했다. 그래서 홍콩 영화들은 늘 한 곳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부평초처럼 부유하는 개인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월6일부터 사흘 동안 찾은 이번 홍콩여행에서도 그런 것을 여실히 느꼈다. 1999년 이후 10여년 만에 다시 찾았지만 ..

여행 2012.02.10

무간도3 - 종극무간 (블루레이 박스세트)

절제. 영화도 절제가 필요하다. 처음부터 3부작으로 기획된 홍콩 영화 '무간도'는 2편에서 끝내는게 좋았다. 3편인 '무간도3 - 종극무간'(Internal Affaris, 2003년)은 억지로 시리즈를 끌어가기 위해 만든 것처럼 논리적 비약이 심하다. 1, 2편이 정교한 플롯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면 3편은 느닷없이 환상과 정신착란, 심리적 갈등으로 인한 괴로움이 2시간을 채운다. 여기에 큰 흐름과 상관없는 곁가지 같은 연애담까지 곁들여 제대로 오점을 찍었다. 유덕화, 양조위, 여명, 진도명, 진혜림 등 3부작 가운데 가장 많은 스타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이름값에 미치지 못했다. 3편은 1편의 엔딩 이후 벌어지는 경찰의 뒷조사로, 인물들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캐내는 과정이다. 하지만 늘어지는 ..

아비정전 (블루레이)

나른하고 후덥지근한 여름, 턴테이블에서 맘보 음악이 바람 불 듯 흘러나오고, 여기 맞춰 청년이 흐느적거리듯 춤을 춘다. 잊을 수 없는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Days of Being Wild, 1990년)은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196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엇갈린 사랑을 다룬 이 작품은 세기말 홍콩 반환을 앞두고 불안했던 홍콩 사람들의 심리를 투영한 작품이다. 영상이나 구성이 꽤나 공들여 잘 만든 작품인데도 흥행에는 실패했다. 이유는 왕가위의 데뷔작이었던 '열혈남아'에 매료된 사람들이 또다시 툭툭 끊어지는 듯한 빠른 몽타주 기법의 액션과 열정적인 이야기를 기대하고 봤다가 너무나 긴 호흡의 서정적인 이야기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열혈남..

명장

진가신 감독의 '명장'(The Warlords, 2007년)은 무협영화가 아니다. 형태는 무술 영화의 틀을 따랐지만 본질은 전쟁터에서 피어난 남녀의 사랑과 의리를 다룬 드라마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진 감독은 '첨밀밀' '금지옥엽' 등 주로 러브 스토리를 찍었다. '명장'은 그가 처음으로 도전한 무협영화다. 진 감독은 자신의 한계를 잘 알았기에 초식에 의존한 정통 무술보다는 전쟁터에서 복잡하게 얽히는 실전 격투기에 초점을 맞췄다. 액션은 '영웅' '연인' 등에서 현란한 무술 연출을 선보인 유명한 정소동 무술 감독이 맡았기에, 박진감 넘친다. 여기에 '울트라 바이올렛' '황비홍' 등을 촬영한 황악태 촬영 감독이 카메라를 잡았고, 이연걸 유덕화 금성무 등 중화권을 대표하는 세 배우가 주연을 맡아서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