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핀란드 8

오로라를 찾아서, 핀란드 이발로

북위 66도 33분을 넘어서면 소위 북극으로 구분하는 북극권이다. 핀란드 이발로의 위도는 북위 68도 39분. 핀란드 최북단 공항이 위치한 북극권인 이 곳을 한겨울에 찾는 이유는 한 가지다. 바로 신비한 빛,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오로라를 보는 게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겨울이면 하늘에 구름처럼 둥실 떠 있는 게 아니어서 운이 좋으면 보고 그렇지 못하면 볼 수 없는, 그야말로 로또같은 복불복이다. 핀란드에 20년 이상 살았다는 현지 동포분은 오로라 명소로 알려진 이발로와 이나리를 수 차례 찾았지만 한 번도 오로라를 본 적이 없단다. 이발로의 오로라 가이드 또한 열흘씩 머물러도 오로라를 보지 못하고 가는 사람이 수두룩하단다. 그래서 기대를 크게 하지 않았다. 가서 보면 좋고, 보지 못하면 ..

여행 2014.12.18

정사 2

핀란드 영화 '정사 2'(Levottomat 3, 2004년)는 국내에 들어오면서 낚시성 제목이 붙었다. 실제 정사 논란을 빚은 파트리스 셰로 감독의 유명한 작품 '정사'의 덕을 보자는 얄팍한 상흔이 엿보이는 제목이다. 하지만 내용은 '정사'와 전혀 상관이 없다. 섹스 중독에 걸린 유부녀가 방황하는 내용. 감독은 핀란드 출신 여성인 미나 비르타넨. TV시리즈를 주로 만든 그는 "남성의 일탈에 관대하면서 왜 여성의 일탈만 가혹하게 대하는가"라는 의문을 갖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 이 같은 의문을 던지기 위해 선택한 소재가 하필 섹스 중독에 걸린 유부녀다. 비르타넨 감독은 섹스 중독을 다룬 이유도 "그것이 유행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우리보다는 개방적 사고를 갖고 있는 핀란드인다운 설명이다. 그만큼 뭇남성을..

과거가 없는 남자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과거가 없는 남자'(Mies Vailla Menneisyytta, 2002년)는 실소를 자아내는 허무 개그같은 영화다. 은행에 뛰어든 강도는 감시 카메라를 발견하고, "감시 카메라냐"고 묻는다. 은행원이 "그렇다"고 대답하고 말을 이으려는 찰나, 강도는 총을 쏴서 카메라를 부숴 버린다. 총소리가 잦아드는 순간 "작동하지 않는다"는 은행원의 말이 꼬리를 문다. 뭔가 한박자씩 어긋난 상황이 웃음을 자아내지만 그렇다고 폭소가 터지는 것은 아니다. 정색을 한 배우들이 진지한 연기로 삶의 아이러니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것, 그것이 바로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웃음 코드다. 이 작품은 불량배들에게 머리를 얻어맞고 죽다가 살아난 남자가 과거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뒤 겪는 이야기를 다뤘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