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여행

오로라를 찾아서, 핀란드 이발로

울프팩 2014. 12. 18. 16:15

북위 66도 33분을 넘어서면 소위 북극으로 구분하는 북극권이다.

핀란드 이발로의 위도는 북위 68도 39분.

 

핀란드 최북단 공항이 위치한 북극권인 이 곳을 한겨울에 찾는 이유는 한 가지다.

바로 신비한 빛, 오로라를 보기 위해서다.

 

하지만 오로라를 보는 게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겨울이면 하늘에 구름처럼 둥실 떠 있는 게 아니어서 운이 좋으면 보고 그렇지 못하면 볼 수 없는, 그야말로 로또같은 복불복이다.

 

핀란드에 20년 이상 살았다는 현지 동포분은 오로라 명소로 알려진 이발로와 이나리를 수 차례 찾았지만 한 번도 오로라를 본 적이 없단다.

이발로의 오로라 가이드 또한 열흘씩 머물러도 오로라를 보지 못하고 가는 사람이 수두룩하단다.

 

그래서 기대를 크게 하지 않았다.

가서 보면 좋고, 보지 못하면 그냥 북극권의 맑은 공기나 쐬자는 생각으로 찾아갔다.

 

가는 방법은 인천서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까지 핀에어를 타고 약 9시간을 날아간 뒤, 바로 핀란드 국내선으로 갈아타 약 1시간30분을 가면 된다.

헬싱키에서 기차로 갈 수도 있지만 12시간 걸린다고 해서 비행기를 택했다.

 

[이발로의 극장. 작은 가게로 보일 만큼 아담하다.]

 

이발로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중심가는 걸어서 15분, 왕복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저녁 6시 조금 넘어 도착했는데 오후 3시면 해가 지기 때문에 이미 깜깜한 밤중이다.

공항에서 마을까지 12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금방 도착했다.

 

[호텔 이발로의 전경. 이발로는 라플란드(lapland)라고 부르는 지방에 있다. 라플란드는 랩족의 땅이라는 뜻. 랩족은 에스키모처럼 핀란드 북극권에 사는 원주민들이다]

 

숙소는 마을 중심가에 위치한 호텔 이발로에 잡았다.

이 호텔 1층 로비에는 오로라 안내를 전문으로 하는 클럽 노르드가 있다.

 

소규모 인원을 예약받아 차에 태우고 오로라가 잘 보이는 곳으로 가서 오로라를 안내한다.

"오늘 저녁은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확률이 반반"이라는 안내 직원의 말에 따라 당장 예약했다.

 

오후 7시30분쯤 클럽 노르드로 내려가니 매서운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장화처럼 생긴 두툼한 방한화를 내어 준다.

필요하면 보드복 같은 방풍 재킷도 빌려 입을 수 있다.

 

다행히 올해는 핀란드에도 이상 기온으로 많이 춥지 않다.

온도계는 0도인데, 바람이 불어 실제 체감 온도는 더 떨어진다.

 

중국 여행객 3명과 함께 클럽노르드의 소형 승합차를 타고 출발했다.

사방이 엄청나게 내린 눈으로 덮혀 있어서 어디가 길인 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깜깜한 밤길을 가이드는 잘도 찾아 달려간다.

 

그렇게 30분을 달려서 어느 산 중턱에 도착했다.

구름이 끼긴 했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구름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오로라 구경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이제부터 언제 나타날 지 아무도 모르는 오로라가 출현할 때까지 고개를 젖힌 채 마냥 하늘을 쳐다보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 바람에 턱이 몹시 시렵다.

원래 오로라는 밤 8시부터 11시 사이에 가장 잘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이 날은 변수가 있었다.

공기가 맑아서 그런지, 마치 서치라이트처럼 강렬한 달빛이다.

 

가이드에 따르면 오로라는 날이 맑아야 보이는데, 달빛이 너무 강하면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조건이 참 까다롭다.

 

하늘 한 켠에 구름이 있었으나 날은 맑은 편이어서 하늘 가득 별들이 보석가루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 가이드가 팔을 툭 치더니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멀리 붉은 빛으로 강렬하게 빛나는 별이 보였다.

"저게 뭐냐"고 물었더니, "화성"이란다.

 

"화성?" 믿기지가 않아 되물었다.

가이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육안으로 화성을 볼 수 있다니, 설마 싶어 "인공위성을 착각한 거 아니냐"고 재차 되물었으나 가이드가 진지하게 전문 용어를 섞어가며 화성을 볼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태어나서 화성을 맨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다.

 

그로부터 한 시간을 기다렸으나 특별한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발도 시려워, 할 수 없이 세워 놓은 승합차에 들어가 몸을 녹였다.

 

가이드가 보온병에 미리 준비한 따뜻한 베리 쥬스와 샌드쿠키를 건넨다.

핀란드가 워낙 베리가 많이 나는 곳이어서 맛있는 베리 쥬스를 흔하게 먹을 수 있다.

 

베리 쥬스를 마시니 몸이 확 퍼지는 느낌이다.

그렇게 차에서 몸을 녹이고 있는데, 갑자기 가이드가 나와 보란다.

 

우르르 차에서 내렸더니, 세상에, 하늘 가득 말로 표현하기 힘든 장관이 펼쳐졌다.

거대한 하얀 빛의 강물이 이쪽에서 저쪽까지 하늘을 가로질러 넘실거리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오로라가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러자 놀랍게도, 눈으로 볼 때는 흰 색인 오로라가 사진 속에서는 강렬한 초록빛과 연두빛으로 보였다.

원래 화이트 오로라는 핀란드의 명물이란다.

 

오로라는 계속 모양과 위치가 달라졌다.

이내 바람에 날리는 흰 색 커튼처럼 변한 오로라는 하늘 가득 펼쳐져 너울 너울 춤을 추었다.

 

잠시 후 하늘의 다른 쪽에서 마치 레이저 쇼를 하듯 거대한 빛무리가 하늘을 향해 솟아 올랐다.

역시 오로라였다.

 

그렇게 위치와 모양을 바꿔가며 펼친 오로라 쇼는 1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가이드가 연신 하늘을 쳐다 보며 감탄을 내뱉은 사람들을 향해 "당신들은 정말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한마디한다.

 

밤 11시에 호텔로 돌아와서도 오로라를 본 흥분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확실히 눈으로 본 오로라는 생각했던 것 이상의 감동을 줬다.

 

언제 또다시 오로라를 볼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평생 가도 잊지 못할 감동어린 기억이다.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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