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이한위 6

8월의 크리스마스 (블루레이)

이르고 늦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죽음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명제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는 경우도 있지만, 이를 알고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는 죽음을 기다리는 한 남자의 평온한 일상을 그렸다. 그의 일상은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옛 추억을 그리워하며 아련한 사랑을 한다. 다만 죽음이 예정돼 있다는 것만 다를 뿐. 그래서 그의 일상은 더없이 소중하고 아름답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마루에 앉아서 발톱을 깎고, 가족과 수박을 먹으며 마당에 씨를 뱉어내고 연인과 아이스크림을 나눠먹는 평범하고 소소한 우리네 일상이 한없는 무게감으로 다가 온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상을 이토록 큰 의미 부여와 함께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최종병기 활 (블루레이)

김한민 감독의 '최종병기 활'(2011년)은 지난해 개봉한 우리 영화 가운데 '고지전'과 더불어 인상깊게 본 영화다. 지난해 개봉한 작품 중 베스트를 꼽으라면 단연 두 작품을 꼽을 만큼 오락성이나 완성도 면에서 출중했다. 이 영화의 장점은 탁월한 속도감이다.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에 끌려가는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오빠가 벌이는 추격전이 긴박하게 펼쳐진다. 여기에 총처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날아드는 화살은 칼싸움과는 또다른 액션의 묘미를 보여준다. 특히 묵직한 육량시의 파괴력과 짧지만 빠른 애깃살의 속도감 등 다양한 화살의 차이를 각기 다르게 묘사한 영상이 눈길을 끈다. 줄거리 구성도 탄탄하고 영상도 뛰어나지만 이 영화는 지난해 표절 논란이 일었다. 멜 깁슨 감독의 '아포칼립토'와 구성이 비슷하다는 이..

댄싱 퀸

이석훈 감독의 '댄싱 퀸'(2012년)은 CJ 계열사들이 공동으로 추진한 비즈니스 프로젝트 같은 영화다. CJ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을 맡아 엠넷의 슈퍼스타K를 최대한 활용해 촬영한 뒤 CGV에서 집중 상영했다. 어찌보면 CJ그룹의 엔터테인먼트 파워를 보여주기 위해 만든 CF 같다. 그렇게 조합한 설정이 관객을 자연스럽게 영화에 빠지도록 하는 것을 보면, 성공한 프로젝트인 셈이다. 관객을 끌어들이는 비결은 그럴 듯하면서도 이색적인 설정 때문이다. 인권 변호사가 시장 후보로 나서고 그의 아내인 주부가 오디션 프로에 도전해 가수가 되는 설정 등은 기성 정치권에 염증을 느끼고 대박을 꿈꾸는 오디션에 열광하는 요즘 세태를 반영했다. 여기 담긴 나이 상관없이 언제라도 자신의 꿈을 위해 도전하라는 메시지는 진부하지만 ..

영화 2012.01.22

최종병기 활

허공을 가르는 화살 하나가 이토록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줄 몰랐다. 김한민 감독의 '최종병기 활'은 병자호란때 청에 끌려간 누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조선의 명궁 이야기를 다뤘다. 예측 가능한 스토리의 단조로움을 극복한 것은 스피디한 영상과 긴장감 넘치는 액션 장면들이다.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 처럼 빠르게 바뀌는 컷과 다채로운 앵글은 잠시도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이처럼 변화무쌍한 화면은 빠른 액션의 속도감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덕분에 잠시도 지루할 틈 없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액션에 빠져들게 된다. 이야기의 흐름도 전광석화다. 쉼없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허공을 가르며 순식간에 공간을 압축하는 화살이라는 무기의 특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만큼 영화는 ..

영화 2011.08.13

국가대표 (블루레이)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본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여름이다. 예전 같으면 동계 올림픽 종목은 사람들의 관심권 밖이었을텐데, 김연아 모태범 이상화 등 잘 싸운 선수들 덕분에 빙상 종목들이 주목을 받았다. 스키점프도 마찬가지. 제대로 된 점프대 하나 없는 곳에서 피눈물나는 연습으로 메달에 도전하는 선수들이 있기에 이 종목도 관심을 끌었다.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2009년)는 이 같은 스키점프 선수들의 애환을 담은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핸드볼 선수들의 올림픽 메달 도전기를 다룬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눈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자메이카에서 봅슬레이에 출전하는 이야기를 그린 존 터틀터웁 감독의 '쿨러닝'과 궤를 같이 한다. 남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