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플래닛 테러(블루레이)

울프팩 2021. 9. 20. 22:41

로버트 로드리게즈(Robert Rodriguez) 감독의 '플래닛 테러'(Planet Terror, 2007년)는 1970년대 동시 상영관의 추억이 듬뿍 배어있는 작품이다.
초반 등장하는 '마셰티'의 가짜 예고편으로 시작해서 낡은 필름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해 일부러 집어넣은 소위 '비가 내린다'라고 표현하는 세로 줄무늬,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각종 필름 열화현상으로 인한 잡티와 변색, 여기에 '필름 소실' 문구와 함께 영상을 건너뛰는 현상까지 의도적인 눈속임이 가득하다.

과거 동시 상영관에서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휘파람을 섞은 야유가 난무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소중한 추억이 돼버려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내용은 1970, 80년대 난무했던 전형적인 B급 좀비물이다.

군에서 유출된 생화학 무기 때문에 좀비로 변해 버린 사람들과 주인공 일행의 사투를 다뤘다.
원인 모를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무서워하는 상황이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떠올리게 만들어 섬찟하다.

일단 이 영화는 말이 되는지 따지면 안 된다.
B급 영화답게 화끈한 액션에 환호하고 의도적인 황당무계함에 호쾌한 웃음을 날려주면 된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흐름을 아주 무시한 엉망진창은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씬 시티'를 만든 로드리게즈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보면 로드리게즈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와 더불어 이제는 B급 영화의 계보를 잇는 명장이 돼버렸다.
'씬 시티' '데스페라도' 등 그가 내놓은 작품들은 '로드리게즈' 상표를 대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그만의 분위기가 확실하다.

원래 이 작품은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이 만든 '데쓰 프루프'와 함께 '그라인드 하우스'라는 연작으로 묶였다.
그래서 영화 중간에 '정글 줄리아를 추모하며 이 곡을 띄운다'는 라디오 DJ가 등장해 자연스럽게 '데쓰 프루프'와 연결된다.

정글 줄리아는 '데쓰 프루프'에서 다리 미인으로 등장하는 여인이다.
두 편의 작품이 서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오래전 동시 상영관에 자주 걸렸던 무협물이나 에로물, 황당 액션극처럼 B급 정서를 공유한다.

그만큼 이 작품은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로드리게즈 감독 특유의 재기 어린 연출이 돋보인다.
무협물 못지않게 허공을 가르며 황당한 액션을 펼치는 남녀 주인공의 활약과 공포물 뺨치는 하드고어 장면이 속출하면서 B급 오락물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준다.

이번에 새로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데쓰 프루프'와 함께 합본으로 출시됐다.
차이점은 과거 블루레이 타이틀이 두 편을 하나의 디스크에 담아 '그라인드 하우스'로 출시됐는데, 이 작품은 두 편을 두 장의 디스크에 나눠 담았다.

대신 과거 블루레이 타이틀이 부록 영상을 별도 DVD에 수록한 반면 이번 타이틀은 본편과 함께 나눠 수록했다.
상영 시간은 삭제 장면이 본편에 추가되면서 과거 블루레이 타이틀보다 약간 늘었다.

과거 블루레이 타이틀은 상영 시간이 두 편 합쳐 191분, 이번에 출시된 신판은 두 편 합쳐 218분이다.
1080p 풀 HD의 1.78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감독의 의도된 노이즈 영상 때문에 화질 언급이 의미 없다.

다만 색감이 약간 밝아진 느낌이다.
돌비 트루 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요란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리어 채널에서 작렬하는 총소리와 사방 채널에서 쏟아지는 음악 소리 등이 공간을 요란하게 울려댄다.
부록으로 로드리게즈 감독의 음성해설과 제작과정, 캐스팅 및 배우들 인터뷰, 스턴트 연출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로드리게즈 감독이 만든 가짜 예고편 '마셰티'. 감독 스스로 잘 만든 예고편이라고 칭할 만큼 재미있다. 그는 실제로 이 작품을 제작했다.
악역을 맡은 브루스 윌리스. '씬 시티'에 호감을 가졌던 그는 로드리게즈 감독의 연락을 받자마자 달려와 촬영했다. 다른 배우들조차도 그의 출연을 몰랐기에 촬영장에서 깜짝 놀랐다는 후문.
좀비 등장 장면과 액션이 완전 하드고어다. 존 카펜터 감독을 좋아하는 로드리게즈 감독은 카펜터 영화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노력했다.
의사 부부의 아들로 나온 레벨 로드리게즈는 감독의 아들이다. 출연 당시 7세였다.
저예산 영화인 이 작품은 로드리게즈 감독의 가족 영화다. 좀비로 변한 보안관 부인 역은 그의 숙모가 맡았다.
마취 전문의 다코타를 연기한 마리 쉘톤은 '데쓰 프루프'에도 단역으로 등장. '씬 시티'와 '램페이지' 등에 출연했다.
'터미네이터'의 히어로 마이클 빈과 '황혼에서 새벽까지'에 나온 톰 사비니가 보안관으로 등장.
로드리게즈 감독의 조카들인 아멜리아와 이사벨 아벨란이 쌍둥이 자매로 등장.
제시 제임스가 영화용으로 만든 오토바이. 제시 제임스는 유명한 오토바이 튜닝 전문가로, 배우 산드라 블록의 남편이었다.
호쾌한 남자 주인공으로 등장한 배우는 프레디 로드리게즈. '포세이돈'에도 출연.
프레디가 타고 나온 포켓 바이크는 4초 만에 시속 80km까지 가속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도로 주행이 금지돼 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대사 연습에 대신 참가했다가 하도 진지하게 연기를 하는 바람에 강간범 역할을 맡게 됐다.
원래 이 영화의 첫 제목은 '프로젝트 테러'였다. 그러나 B급 영화의 정서를 과장하기 위해 우주적 의미를 지닌 '플래닛 테러'로 바꿨다. 제목까지도 허풍과 과장으로 키치적 정서를 유발한 B급 영화의 분위기를 담고 있다.
로드리게즈 감독은 필름이 심하게 열화 되는 장면으로 챕터를 구분했다. 따라서 필름 노이즈는 단순 노이즈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중간에 '필름소실'이라는 인서트 자막과 함께 영화가 건너뛰기도 한다. 동시 상영관 분위기를 나타내려는 감독의 의도다. 미국은 자막으로 안내라도 해줬지만 1970년대 국내 동시상영관은 시침 뚝 떼고 그냥 넘어가거나 하얗게 빛이 새는 스크린을 놔둔 채 관객의 야유 속에 태연하게 필름을 갈아 끼웠다.
로드리게즈는 감독, 촬영, 편집, 음악, 각본 등 1인 다역을 했다. 여주인공 로즈 맥고완은 노래도 잘한다. 그가 부른 'You Belong To Me'는 참으로 감미롭다.
여주인공을 맡은 로즈 맥고완은 직접 와이어 액션도 했다.
로즈 맥고완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데쓰 프루프'에도 나온다. 외다리 장면은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녹색양말을 신고 촬영한 뒤 해당 부분에 총을 CG로 합성했다.
로즈의 허리 밑에 트랙을 깔아 로켓탄이 날아가는 장면을 촬영. 감독은 이 장면을 로즈의 리허설을 보고 착안했다.
영화에 쓰인 음악은 로드리게즈 감독이 촬영 2년 전에 만들어 놓은 것들이다.
막판 등장하는 피난처는 멕시코의 툴룸 유적이다. 배경만 감독이 가서 직접 찍고 배우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스튜디오에서 블루 스크린으로 찍었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데쓰 프루프'와 함께 세트로 묶여 '그라인드 하우스'라는 제목으로 상영됐다. 동시 상영관 분위기를 내려고 두 편이 약 세 시간에 걸쳐 함께 상영돼 '플래닛 테러'가 미국에서 상당 부분 축약됐다. 국내 개봉 때에는 나눠서 개봉해 온전하게 상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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