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로드리게즈(Robert Rodriguez) 감독의 '플래닛 테러'(Planet Terror, 2007년)는 1970년대 동시 상영관의 추억이 듬뿍 배어있는 작품이다.
초반 등장하는 '마셰티'의 가짜 예고편으로 시작해서 낡은 필름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해 일부러 집어넣은 소위 '비가 내린다'라고 표현하는 세로 줄무늬,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각종 필름 열화현상으로 인한 잡티와 변색, 여기에 '필름 소실' 문구와 함께 영상을 건너뛰는 현상까지 의도적인 눈속임이 가득하다.
과거 동시 상영관에서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 휘파람을 섞은 야유가 난무했지만, 이제는 그것도 소중한 추억이 돼버려 보고 있자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내용은 1970, 80년대 난무했던 전형적인 B급 좀비물이다.
군에서 유출된 생화학 무기 때문에 좀비로 변해 버린 사람들과 주인공 일행의 사투를 다뤘다.
원인 모를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람들이 좀비로 변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무서워하는 상황이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떠올리게 만들어 섬찟하다.
일단 이 영화는 말이 되는지 따지면 안 된다.
B급 영화답게 화끈한 액션에 환호하고 의도적인 황당무계함에 호쾌한 웃음을 날려주면 된다.
그렇다고 이야기의 흐름을 아주 무시한 엉망진창은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씬 시티'를 만든 로드리게즈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보면 로드리게즈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와 더불어 이제는 B급 영화의 계보를 잇는 명장이 돼버렸다.
'씬 시티' '데스페라도' 등 그가 내놓은 작품들은 '로드리게즈' 상표를 대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그만의 분위기가 확실하다.
원래 이 작품은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이 만든 '데쓰 프루프'와 함께 '그라인드 하우스'라는 연작으로 묶였다.
그래서 영화 중간에 '정글 줄리아를 추모하며 이 곡을 띄운다'는 라디오 DJ가 등장해 자연스럽게 '데쓰 프루프'와 연결된다.
정글 줄리아는 '데쓰 프루프'에서 다리 미인으로 등장하는 여인이다.
두 편의 작품이 서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오래전 동시 상영관에 자주 걸렸던 무협물이나 에로물, 황당 액션극처럼 B급 정서를 공유한다.
그만큼 이 작품은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로드리게즈 감독 특유의 재기 어린 연출이 돋보인다.
무협물 못지않게 허공을 가르며 황당한 액션을 펼치는 남녀 주인공의 활약과 공포물 뺨치는 하드고어 장면이 속출하면서 B급 오락물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준다.
이번에 새로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데쓰 프루프'와 함께 합본으로 출시됐다.
차이점은 과거 블루레이 타이틀이 두 편을 하나의 디스크에 담아 '그라인드 하우스'로 출시됐는데, 이 작품은 두 편을 두 장의 디스크에 나눠 담았다.
대신 과거 블루레이 타이틀이 부록 영상을 별도 DVD에 수록한 반면 이번 타이틀은 본편과 함께 나눠 수록했다.
상영 시간은 삭제 장면이 본편에 추가되면서 과거 블루레이 타이틀보다 약간 늘었다.
과거 블루레이 타이틀은 상영 시간이 두 편 합쳐 191분, 이번에 출시된 신판은 두 편 합쳐 218분이다.
1080p 풀 HD의 1.78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감독의 의도된 노이즈 영상 때문에 화질 언급이 의미 없다.
다만 색감이 약간 밝아진 느낌이다.
돌비 트루 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요란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리어 채널에서 작렬하는 총소리와 사방 채널에서 쏟아지는 음악 소리 등이 공간을 요란하게 울려댄다.
부록으로 로드리게즈 감독의 음성해설과 제작과정, 캐스팅 및 배우들 인터뷰, 스턴트 연출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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