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171

연가시

이 영화를 보고나면 강원도 계곡에 놀러가기가 찜찜할 것 같다. 하필 영화 속 사건의 발단이 강원도 계곡의 물놀이에서 시작되기 때문. 박정우 감독의 '연가시'(2012년)는 공포영화가 아닌 재난영화다. 곤충의 몸 속에 사는 기생충이 사람의 몸에 파고 들면서 벌어지는 끔찍한 이야기를 다뤘다. 실제 존재하는 기생충인 연가시를 다룬 점이 돋보였다. 연가시는 곤충의 몸에 사는 기생충으로, 신경조절 물질을 분비해 곤충이 물 속으로 뛰어들에 자살하게 만든다. 영화 속에서는 마치 징그러운 촌충처럼 묘사됐는데, 실제로 2미터까지 자란 연가시도 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재난영화의 흥행요소를 고루 갖췄다. 제작진 또한 재난영화의 흥행코드를 그대로 답습하며 안전하게 영화를 이끈다. 위기에 처한 가족을 구하기 위해..

영화 2012.07.25

다크나이트 라이즈

배트맨이 나오는 '다크나이트' 시리즈를 꽤 재미있게 봤기에 이번 작품도 기대가 컸다. 다크나이트는 밤을 좋아하고 박쥐 복장으로 숨어 다니는 배트맨 특유의 음울한 서정을 잘 담아낸 시리즈다. 다크나이트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다크나이트 라이즈'(The Dark Knight Rises, 2012년) 역시 그런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암울한 분위기는 참담할 정도로 깊어져 도시 하나가 파멸의 위험에 잠긴다. 악이 강할수록 영웅은 돋보이는 법. 언제나 그렇듯 무력한 공권력을 대신해 악을 응징하는 배트맨의 활약이 전작 못지 않게 요란하다. 하지만 전작들보다 배트맨의 등장이 많이 줄었다. 영웅도 나이를 먹어 관절이 예전 같지 않고 주먹도 많이 약해졌다. 그 바람의 영웅은 강철같은 악당 베인을 만..

영화 2012.07.21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모든 슈퍼 히어로물은 벤담의 공리주의에 기반한다. 벤담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목표로 한 양적 공리주의를 주장하며,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선행을 통해 개인이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기에는 가진 자들의 의무인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부가 됐든 권력이 됐든 또는 지적,육체적 능력이 됐든 남보다 월등 많이 가진 사람들은 여럿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기여하는 도덕적 책임감이 의무처럼 따른다. 스파이더맨이 쫄쫄이 의상을 입고 거미줄을 쏘고, 슈퍼맨이 바지 위에 팬티를 입고 하늘을 날며, 배트맨이 망토를 휘날리며 밤길을 내달리는 것도 공리주의에 입각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다른 표현들이다. 이는 곧 끝없는 이익 추구로 부의 집중을 용인한 자본주의가 못가진 자들을 무마하는 수단이..

영화 2012.06.30

내 아내의 모든 것

민규동 감독의 '내 아내의 모든 것'은 박제화된 낭만을 볼 수 있는 영화다. 세레나데를 부르고, 느끼한 말을 하며 상대의 관심을 끄는 작업들이 낭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장난처럼 웃음을 유발한다. 세상이 그렇게 변했기 때문이다. 사랑도 인스턴트 라면 식으로 가벼워져 그런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영화는 부감샷으로 잡은 사람들이 사는 도시 풍경을 토이렌즈로 잡아, 마치 장난감 세상처럼 보여준다. 그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 군상들의 진지한 모습이 오히려 웃음을 주는게 이 작품의 매력이다. 최진실 박중훈이 주연하고 강우석 감독이 만든 '마누라죽이기'처럼 이 영화도 아내에게서 달아나고 싶은 남자를 다뤘다. 잔소리만 늘어 놓는 지겨운 아내와 이혼할 방법을 찾는 남편, 이 세상 모든 여자를 사로잡는 마력의 카사..

영화 2012.06.10

돈의 맛

임상수 감독의 영화들은 언제나 욕망에 천착한다. '하녀'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 '처녀들의 저녁식사' 등 그의 작품들은 항상 돈과 섹스, 권력 등 가장 구질구질한 욕망을 직시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메스를 들이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큼 직설적인 화법은 특별한 쾌감을 선사하며 화제를 뿌린다. 그러나 잘못 들이댄 메스는 오히려 고통만 키운다. '돈의 맛'은 그런 작품이다. 잘못 스친 칼날이 사방 가득 역겨운 피비린내만 풍겼다. 남성판 '하녀', 아니 '하인'에 해당하는 이 작품은 재벌가에서 온갖 궂은 일을 처리하는 집사 같은 청년이 보게되는 잘못된 부자의 삶을 다뤘다. 하지만 최상위 1%의 모습을 다뤘다고 하기엔 너무 피상적이다. 부도덕한 성관계, 권력층..

영화 2012.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