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비추천 DVD / 블루레이

고모라

울프팩 2012. 1. 1. 12:42

시대가 변하면서 마피아도 달라졌다.
사람을 때리거나 죽여 돈을 빼앗고 마약을 밀매하는 마피아의 모습은 옛날 얘기다.

요즘 마피아는 사업 규모가 다르다.
거대 의류업체나 건설업체를 운영하며 수천억 원대 명품을 위조하고 산업 폐기물을 몰래 투기하며, 쓰레기로 만든 시멘트를 수출한다.

물론 마약과 무기밀매 같은 전통적 범죄 사업은 물론이고 이권을 위해 살인을 서슴치 않는 짓은 여전하다.
이탈리아의 저널리스트인 로베르토 사비아노는 이처럼 달라진 이탈리아 범죄조직의 실상을 고발한 책 '고모라'를 써서 전세계의 파장을 일으켰다.

그가 책에서 다룬 조직은 나폴리를 근거지로 100년 동안 활동하고 있는 카모라다.
사비아노는 카모라의 핵심구역인 카살디프린치페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살인사건을 목격하며 자랐다.

카모라 손에 죽은 사람이 수천 명이 넘는 현실에 분노한 그는 2006년 직접 조직원이 돼서 카모라 내부의 범죄 실상을 2년 동안 추적했다.
그렇게 해서 펴낸 책이 바로 '고모라'다.

제목은 카모라가 주무르는 도시 나폴리를 성경에서 타락한 도시로 묘사한 고모라에 빗댄 것.
이 책이 나오고 나서 사비아노는 카모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아 24시간 신변 경호를 받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우리가 그를 보호해야 한다"며 정부의 보호를 촉구했고, 2011년 10월 국제 작가단체인 PEN은 그에게 해럴드핀터 국제 용기상을 수여하는 것으로 그의 노고에 보답했다.
마테오 가로네 감독의 영화 '고모라'는 바로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사비아노의 원작을 토대로 제작됐다.

고발적인 내용을 다큐처럼 찍은 영화는 2008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그 해 유러피언 영화제 작품상과 감독상 등을 휩쓸었다.
하지만 내용은 원작에 못미친다.

원작을 읽고 보면 무엇을 말하는 지 이해가 가지만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산만하게 보인다.
특히 산업폐기물 투기, 불량 건자재 납품, 명품 복제 등 여러 사업을 전개하는 모습이 산발적으료 묘사돼 카모라가 일관되게 벌이는 거대한 범죄 사업의 윤곽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카모라의 실상이 궁금하다면 오히려 영화보다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책을 권하고 싶다.
범죄 조직 미화에 경종을 울린 작품 정도로 의의를 둘 만 하다.

2.35 대 1 와이드스크린의 DVD 타이틀은 애너모픽이 아니어서 영상이 답답하고, 화질도 엉망이다.
계단 현상은 물론이고 색상이 번지며 블록노이즈까지 나타난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은 전무하다.
여러모로 실망스런 타이틀이다.

<파워DVD로 순간포착한 DVD 타이틀 장면들>

영화는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범죄조직인 카모라를 다뤘다.
카모라의 특징은 일종의 은퇴 시스템을 갖췄다는 점. 나이먹은 조직원은 물론이고 싸움으로 사망한 조직원의 가족들에게 꾸준히 생활비를 보조해준다. 그 바람에 상당 수 사람들이 카모라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고모라는 요르단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5대 도시 중 하나로, 타락 때문에 여호와의 벌을 받아 멸망한다. 실제 위치는 사해 남단 부근 바다에 잠긴 지역으로 추정된다.
카모라는 어린 아이까지 조직원으로 끌어들여 범죄 행각을 벌인다. 방탄조끼를 입혀 총을 쏴본 뒤 받아들이는 입단 심사 장면. DVD 타이틀은 암부 디테일이 너무 떨어진다.
카모라의 문제는 이들을 동경하는 세대를 양성한다는 것. 범죄 조직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난 토니 몬타나야, 세상은 우리꺼다"라고 외치는 영화 '스카페이스' 대사가 인상적이다. 그만큼 마피아들 사이에 '스카페이스'는 교과서 같은 작품이 됐다.
카모라의 큰 돈벌이 가운데 하나가 유독성 산업폐기물의 불법투기다. 이들은 글로벌 거대기업으로부터 산업 폐기물 처리를 계약한 뒤 나폴리 인근 채석장에 몰래 파묻거나 배에 싣고 가다가 지중해나 아프리카 인근에서 몰래 침몰시키는 수법을 쓴다. 당연히 투기 지역은 유독 물질 오염이 심해 주민들이 병에 시달린다.
또다른 거대 사업은 명품을 복제해 유통하는 패션사업이다. 영화에서는 스칼렛 요한슨이 복제 드레스를 입고 나오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 원작에서는 안젤리나 졸리가 아카데미 시상식때 입고 나온 베르사체 드레스가 바로 카모라가 만든 가짜라고 폭로했다.
원작을 읽고보면 영화 내용이 의외로 미흡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인트로와 중간에 삽입된 음악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