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카사베츠(Nick Cassavetes) 감독의 '노트북'(The Notebook, 2004년)은 '내 머리속의 지우개'와 비슷한 작품이다.
치매에 걸린 아내의 기억을 되찾아 주기 위해 노력하는 남편의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병 속에 든 편지' '워크 투 리멤버' 등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원작을 토대로 만들었다.
스파크스가 1940년대 외조부모의 실제 첫사랑에서 착안해 1996년 출판한 이 소설은 5년 동안 100만 권이 팔렸다.
이 작품은 독특한 구성을 갖고 있다.
노인 요양시설에 묶고 있는 할아버지(제임스 가너 James Garner)가 같은 처지인 할머니(지나 롤랜즈 Gena Rowlands)에게 공책에 적힌 이야기를 읽어주며 시작된다.
영화는 현재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한 축으로, 공책에 적힌 젊은 남녀의 사랑을 또 다른 한축으로 진행된다.
주가 되는 것은 공책 속 이야기.
여름 방학을 맞아 시골에 내려온 도시의 부잣집 딸 엘리(레이철 맥아담스 Rachel McAdams)는 가난한 목공소 청년 노아(라이언 고슬링 Ryan Gosling)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재산이 갈라놓은 신분 상승의 벽을 넘지 못하고 헤어진다.
몇 년이 지나 여성의 결혼을 앞두고 두 사람은 다시 만난다.
남자의 변함없는 사랑을 확인한 여성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신분 차이에 따른 여자 집안의 반대, 여자를 위해 남자가 집을 짓는 부분, 아내의 기억을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남편 등 여러 가지 설정이 '내 머리속의 지우개'와 비슷하다.
아마도 싸이더스에서 원작 소설을 읽고 설정을 구성한 뒤 이재한 감독에게 '내 머리속...'을 의뢰한 게 아닐까 싶다.
여인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한 영화인 만큼 자칫하면 감정과잉이 될 법한데, 카사베츠 감독은 편집을 통해 적절하게 이를 조절했다.
덕분에 전체적으로 감정이 절제돼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신파조로 흐르던 초반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흡입력을 갖고 관객을 끌어당긴다.
두 남녀의 갈등은 매번 관객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며 두 사람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하게 만든다.
예측 가능한 결론이지만 안방 드라마 같은 구성과 밀도 있는 이야기는 스크린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제임스 가너와 지나 롤랜즈 등 관록 있는 노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다.
제임스 가너는 '대탈주'에서 멋쟁이 공군 장교를 연기했던 노익장.
지나 롤랜즈는 감독인 닉 카사베츠의 어머니로, 미 영화협회가 수여한 연기예술 박사학위를 받은 미국의 국보급 여배우다.
명성에 걸맞는 이들의 안정적 연기는 젊은 두 배우의 열정적 연기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아울러 호수 가득 눈처럼 내려앉은 흰 새들 사이로 연인이 배를 저어 가는 풍경은 애틋한 첫사랑의 감동을 더한다.
아쉬운 점은 국내 개봉 제목.
요즘 세대라면 제목에서 딱딱한 컴퓨터 이미지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런 점에서 원제를 그대로 사용한 것은 오히려 손해일 것 같다.
커다란 사건 없이 드라마처럼 잔잔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지만 오히려 평범함이 주는 감동은 더 큰 법이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의 영상은 무난한 화질이다.
간혹 일부 장면에서 배경에 지글거리는 현상이 보이고 암부디테일이 묻히지만 전체적으로 색감이 화사해 깨끗한 느낌을 준다.
돌비디지털 5.1 EX를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많은 편은 아니다.
대사 전달이 또렷한 편.
한글자막을 지원하는 원작자의 음성해설과 감독의 음성해설이 들을 만하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