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도깨비'를 모두 본 것은 얼마 전이었다.
우연히 케이블의 드라마 관련 채널에서 재방송을 2,3편 봤는데 의외로 재미있었다.
그래서 결국 블루레이 감독판을 뒤늦게 구입해 2년 전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게 됐다.
정작 본방을 보지 않은 것은 대본을 쓴 김은숙 작가의 작품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었다.
예전 김 작가의 드라마 중에 '태양의 후예' '시크릿' '상속자들' '파리의 연인' 등의 일부분을 본 적이 있는데 대사나 이야기 전개, 설정 등이 개인적인 취향과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분히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순정만화 스타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선입견 때문에 '도깨비'도 비슷할 것이라는 지레짐작으로 본방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작품을 뒤늦게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된 것은 독창적인 소재와 적절한 캐스팅, 뛰어난 영상미에 빠졌기 때문이다.
내용은 고려시대부터 현대까지 900년을 넘게 산 도깨비가 결혼할 운명을 타고 난 도깨비 신부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슬픈 사랑을 그렸다.
여기에 저승사자, 삼신할미 등 토속 설화의 캐릭터들이 섞여 현대와 사극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무엇보다 고전 설화로 익숙한 도깨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시대극의 한계를 뛰어넘은 점이 참신했고, 이를 순애보적인 스토리로 풀어낸 점이 돋보였다.
특히 짓궂은 장난꾼 정도로 여겼던 흉측한 도깨비를 멋진 신사로 탈바꿈시켜 도깨비 신부의 설화로 이어간 점은 한국형 판타지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 높이 평가할 만한 요소다.
이 같은 가능성은 실제 수치로도 입증됐다.
이 드라마는 방영 당시 최고 시청률 20.5%, 순간 최고 시청률 22.1%를 기록해 케이블 프로그램 중에서 최초로 시청률 20% 벽을 넘어섰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봤다는 얘기다.
김 작가 특유의 여성 취향적인 순애보 스타일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대사나 설정 등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적 공감대를 끌어낸 덕분이 아닐까 싶다.
대사들도 보면 보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오글거릴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실생활에서 쓰지 않을 듯한 사극풍 대사나 시적 표현들이 오히려 멋스럽게 다가왔다.
"너와 함께 한 시간은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같은 표현이나 "비로 올게, 첫눈으로 올게" 같은 대사들은 통속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문학적 표현이다.
물론 이를 잘 살린 배우들의 연기도 높이 칭찬할 만하다.
도깨비를 연기한 공유는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러웠고 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잘 어울렸다.
도깨비 신부 역할의 김고은 또한 발랄한 여주인공을 제대로 살렸다.
공유와 김고은의 발견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두 사람의 화학적 결합이 훌륭했다.
저승사자 역의 이동욱도 뛰어났고 독특한 억양을 만들어내 캐릭터를 잘 살린 유인나의 변신도 놀라웠다.
더불어 이 작품이 눈길을 끈 것은 압도적 영상이다.
장면 하나하나가 그림 같은 영상들을 보면 이응복 PD를 비롯한 제작진이 상당히 공을 들여 작품을 연구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 폭의 그림 같은 와이드 샷 영상들은 풀 HD 프로젝터를 이용해 100인치 스크린으로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답다.
그만큼 각 장면들을 엽서로 만들어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뛰어나다.
중간에 가끔씩 나오는 컴퓨터 그래픽도 기존 한국 드라마와 달리 훌륭했다.
도깨비의 분노로 배가 침몰하는 장면이나 이글이글 타오르는 도깨비 칼 등의 표현이 어색하지 않고 할리우드 영화처럼 자연스럽다.
다만 지나친 이야기의 번복이나 신데렐라 스토리의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의 조합이 잘 맞는 연기와 훌륭한 영상, 맛깔스러운 대사와 연출 등에 높은 점수를 줄 만한 작품이다.
감독판으로 나온 '도깨비' 블루레이 박스세트는 총 16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16부작 드라마 전편이 8장의 디스크에 수록됐고 나머지 6장은 음성해설, 제작과정, 배우 인터뷰, CG 작업 등을 담은 부록 디스크다.
1080p 풀 HD의 1.78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본편은 화질이 흠잡을 데 없이 아주 좋다.
윤곽선이 깔끔하고 색감이 맑고 투명하다.
다만 사극 장면은 2.35 대 1로 화면비가 전환되며 현대를 배경으로 한 내용과 차별화를 꾀했다.
상대적으로 음향은 서라운드 채널이 아닌 LPCM 2.0 이어서 아쉽다.
부록 영상들도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볼 만하다.
다만 본편과 달리 1080i로 수록됐다.
아쉬운 점은 본편에 한글자막이 들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누락돼 아쉽다.
여러 가지 이유로 대사가 분명하게 들리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한글 자막을 반드시 넣을 필요가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 드라마는 2016년 tvN에서 10주년 특별기획으로 방영했다.
김은숙 작가는 3년에 걸쳐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처음에 구상한 것은 2010년 이전이지만 당시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부족해 제작비가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우선 '시크릿 가든'을 먼저 썼다고 한다.
고려시대 성 장면은 나주에서 촬영.
김은숙 작가는 도깨비 역할에 공유를 섭외하기 위해 5년간 공을 들였다고 한다.
저승사자의 찻집은 4미터 높이의 장식장을 만든 뒤 1,000 여개의 찻잔을 일일이 집어넣고 나서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높이를 키웠다. 찻집 내 샹들리에는 이응복 PD가 수송비 포함 1,000 만원을 들여 뉴욕에서 사 온 물건이다.
도깨비가 배를 파괴하는 장면의 컴퓨터 그래픽 처리가 뛰어나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거의 실물 크기의 배를 제작해 짐벌 위에 올려놓고 그린 스크린을 두른 대형 수조에서 촬영한 뒤 이를 CG로 합성했다.
방파제 장면은 강원도 주문진 방파제에서 촬영.
식탁 위에 장식대를 매달고 촛불을 잔뜩 올려놓은 것은 시간이 촛농처럼 흐른다는 점을 상징한다.
연출은 '태양의 후예'를 맡은 이응복 PD가 했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김은숙 작가와 이응복 PD는 다시 손을 잡고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을 만들었다.
자동차가 쪼개지는 장면은 실제 자동차를 반으로 나눈 뒤 와이어로 연결해 제작진이 끌었다.
김 작가에 따르면 유인나의 경우 중국에서 작업 중이어서 처음에 섭외를 하지 못했다가 중국 작업이 끝난 뒤 섭외했다고 한다.
김 작가는 공유와 꼭 작업을 같이 하고 싶어서 여러 번 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제작현장에서는 공유를 공깨비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만큼 배역에 잘 어울렸다는 뜻.
작가에 따르면 저승사자 역할의 배우를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해외에 나갔다가 이동욱과 비행기를 같이 타게 돼 얘기를 나누다가 섭외하게 됐다. 이동욱은 제작발표회에서 이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 김 작가의 해외 출국 일정을 확인한 뒤 일부러 같은 비행기를 탔다고 밝혔다.
이 PD는 김 작가로부터 이동욱의 캐스팅 과정을 듣고 혼내려고 이동욱을 불렀다가 "눈빛에 반해" 캐스팅했다고 한다. 이 PD는 "운명처럼 배우를 만나고 스태프를 만났다"라고 말했다. 인천 한미서점 장면.
메밀밭 키스 장면은 영상을 거꾸로 돌려 눈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본방시 도깨비 커플이 극장에서 본 무서운 영화가 나오지 않았지만 블루레이 타이틀에는 해당 영화 장면이 나온다. 해당 영화는 '부산행'이다.
노래 실력이 뛰어나고 기타도 곧잘 치는 김고은은 극 중 축가 아르바이트 장면에서 일부러 노래 실력을 뽐내지 않고 '그중에 그대를 만나'라는 이선희 노래를 소박하게 불렀다.
도깨비의 힘 때문에 자동차들이 파괴되는 장면은 와이어로 연결해 폭발하는 장면을 찍고 CG 작업을 했다.
이 PD는 항상 "한 줄로 설명하면 어떤 드라마인지"를 작가에게 물었다고 한다.
풍등을 날리는 장면은 안성의 석남사에서 촬영.
이 PD는 크게 성공한 이 작품이 "상이면서 벌"이라고 했다. 다음 드라마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눈 덮인 길을 두 주인공이 걷는 장면은 강원도 오대산의 월정사에서 촬영.
공유가 김고은을 뒤에서 껴안는 장면은 뒷 배경 때문에 두 사람이 테이블 위에 올라가서 연기.
일부 장면은 용평 스키장에서 촬영.
공유는 슬픈 사랑을 주제로 다룬 이 드라마를 다시 보면 "좋으면서 심란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 작가는 김고은을 처음 만났을 때 너무 재미있어서 함께 낮술을 마신 뒤 바로 섭외했다고 한다.
유인나는 독특한 억양을 만들기 위해 100가지 말투를 녹음한 뒤 들어봤다고 한다.
마세라티를 비롯해서 작품 속에 알게 모르게 꽤 많은 제품들이 PPL로 등장한다. 특히 주인공인 도깨비가 홈쇼핑 모델을 했다는 이상한 설정을 해서 노골적으로 제품 PPL 장면을 집어넣었다.
드라마 방영 당시 공유와 김고은은 배역 이름인 김신과 지은탁의 끝자를 따서 신탁 커플로 불렸다.
이동욱과 유인나는 피자헛 상표를 연상시키는 극 중 이동욱의 모자와 치킨집 주인이라는 유인나의 역할 때문에 피치커플로 불렸다.
많은 장면을 인천시와 서울 성북동에서 찍었다.
공유는 액션 장면의 상당 부분을 직접 연기했다.
공유는 김고은이 오열하는 장면을 보며 엉엉 울었다고 한다.
극 중 김고은의 방은 경기도 남양주 영화촬영소에 세트를 만들어 촬영.
제작진에 따르면 메밀꽃이 9월에 열흘 정도만 피기 때문에 서둘러 찍었다.
촬영 당시 메밀이 흉작이어서 많이 자라지 않았다고 한다.
촬영용 카메라는 아리사의 알렉사 미니.
이 작품은 못된 이모와 사촌들, 능력 많은 남자를 만나 행복을 찾는 여주인공 등 신데렐라와 키다리 아저씨 등의 이야기가 혼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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