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과 관련해 유대인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홀로코스트, 즉 대학살이다.
나치에 의해 아우슈비츠, 트레블링카 등 동유럽에 산재해있던 수용소에 끌려가 가스실에서 비참하게 집단 학살당한 일들이 워낙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만큼 유대인하면 박해와 죽음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제2차 대전 때 저항군을 조직해 게릴라 활동을 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비엘스키 빨치산이다.
1941년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지금의 벨라루스 공화국 일대도 점령을 담했다.
나치는 신속하게 해당 지역의 유대인을 골라내 1942년 초까지 수 만여 명을 학살했다.
이때 부모를 잃은 투비아 비엘스키를 비롯한 4형제는 어린 시절을 보낸 벨로베즈스카야 숲으로 달아났다.
그곳에서 그들은 강제 거주구역인 게토에서 달아난 유대인들과 힘을 합쳐 빨치산 활동을 벌였다.
처음에는 일가친척 위주로 30명이 시작했지만 종전 무렵 1,200여 명으로 불어나서 독일군을 습격하기도 하고 죽음의 문턱에 몰린 유대인들을 구출하기도 했다.
이 같은 활동은 한동안 알려지지 않았다가 전후 네케이마 테크가 쓴 '디파이언스: 비엘스키 빨치산'이라는 책을 통해 세상에 소개됐다.
에드워드 즈윅 감독은 이 책을 토대로 흔치 않은 유대인 레지스탕스 영화 '디파이언스'(Defiance, 2008년)를 만들었다.
007로 발탁돼 한창 줏가를 올리던 다니엘 크레이그가 조직의 리더인 투비아 비엘스키 역을 맡았고 셰익스피어 정극 배우로 유명한 리브 슈라이버가 동생 주스 비엘스키 역을 연기했다.
벨라루스와 풍경이 비슷한 리투아니아에서 촬영된 영화는 실화를 사실 그대로 재현했다.
천혜의 원시림에서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내며 살아남은 유대인들의 삶을 다룬 이 작품은 액션보다는 인물들 간에 갈등이나 애증 같은 드라마에 비중을 뒀다.
물론 독일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장면도 나오지만 주된 줄기는 인물들 간의 관계다.
어쩔 수 없이 극한 상황에 내몰리다 보니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본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며 갈등을 빚는다.
리더십도 없고 경험이나 아는 것도 없는 투비아는 이 과정을 거치며 어느새 단단한 유격대 지휘관이 된다.
그런 과정을 거쳐 성장한 투비아가 나치 독일군의 공습을 피해 늪지대를 건너 탱크와 일전을 벌이는 장면은 마치 출애굽기에서 유대민족을 이끈 모세를 연상케 한다.
혹독한 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불굴의 저항정신을 보여준 유대민족의 끈기와 집념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영화다.
아울러 유대인들이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힘없이 쫓겨만 다닌 무리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동유럽에서 빨치산 활동을 한 유대인은 약 2만명에 이른다.
살풍경한 전쟁터에서도 서정적인 영상을 잘 만들어내는 에드워드 즈윅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그런 재주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숲 사이로 파고드는 햇살이 인물들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는 장면이나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열리는 유대인들의 숲 속 결혼식 풍경, 이와 병치돼 벌어지는 소련군 빨치산들이 나치와 벌이는 전투 장면은 처연하면서도 아름답다.
이런 구도는 즈윅 감독의 이전 작품인 '라스트 사무라이'와 닮았다.
라스트 사무라이에서도 일촉즉발의 대규모 전투를 앞둔 상황에 피어나는 톰 크루즈와 코유키의 애틋한 연정을 서정적인 영상으로 시처럼 풀어냈다.
이 작품에서는 다니엘 크레이그와 그를 돕는 유대인 여성 릴카(알렉사 다발로스) 사이에 이 같은 연정이 싹트면서 서정적인 그림들을 빚어낸다.
잿빛 하늘과 들판을 배경으로 찍은 유대인들의 피난 가는 장면도 마치 풍경화처럼 묘사됐다.
그만큼 공간 속에 인물들의 배치나 조명에 신경을 쓰는 즈윅 감독 특유의 꼼꼼한 연출력이 돋보였다.
1080p 풀 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잡티 하나 없는 영상은 윤곽선이 예리하고 디테일도 잘 살아 있다.
돌비 트루 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괜찮다.
나무가 빽빽한 원시림에 쏟아지는 빗소리가 사방을 휘감는다.
부록으로 즈윅 감독의 해설, 배우들 인터뷰가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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