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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한여름의 판타지아(블루레이)

울프팩 2020. 3. 19. 21:59

장건재 감독의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년)는 독특한 구성을 갖고 있는 영화다.

영화는 크게 2부로 구분된다.

 

1부는 영화 제작을 위해 일본 나라현의 고조시를 찾은 감독 태훈(임형국)이 이야깃거리를 얻기 위해 현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내용이다.

태훈은 조감독이자 통역을 해줄 혜정(김새벽)과 함께 고조시 관광담당 공무원인 유스케(이와세 료)의 안내로 동네 사람들을 만난다.

 

태훈이 끌린 이야기는 오래전 오사카에서 일할 때 한국 여인을 만나 잠시 연애를 했던 겐지(강수안)의 이야기와 배우를 꿈꿨던 유스케가 어떤 여인을 만났으나 정작 이뤄지지 않았던 사랑 이야기였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태훈이 모티프를 얻는 것으로 1부는 마무리된다.

 

2부에서는 내용이 완전히 바뀌어 고조시를 홀로 찾은 여성 혜정(김새벽)의 이야기다.

관광차 고조시에 들린 혜정은 우연히 마을 청년(이와세 료)의 안내를 받는다.

 

그렇게 혜정은 1부에서 태훈이 소재를 얻기 위해 답보했던 마을들을 되밟는다.

산속 마을과 버려진 학교,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걸으며 두 사람은 아주 가까워진다.

 

급기야 마을 청년은 혜정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남자 친구가 있는 혜정은 그 사랑을 받지 못하고 알 수 없는 훗날을 기약하며 작별한다.

 

이렇게 1부와 2부로 갈린 영화는 다른 듯하면서도 같은 점들을 공유한다.

우선 한 여름의 고조시라는 때와 장소를 공유한다.

 

큰 배경뿐 아니라 고조에서 가까운 시노하라 마을, 버려진 학교, 고조시 골목길 등 작은 배경까지도 1부와 2부와 같으면서도 다른 인물들이 되밟는다.

재미있는 것은 배우들이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두 인물을 1인 2역으로 연기하는 점이다.

 

1부에서 통역을 맡았던 조감독 혜정은 2부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1부에서 제작진을 안내한 유스케는 2부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청년이 됐다.

 

1부의 겐지 이야기는 2부의 청년 이야기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2부의 청년은 겐지가 아니다.

 

겐지는 오사카에서 한국 여성과 연애를 했지만 2부의 청년은 고조시에서 한국 여인과 짧은 만남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작품은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어긋나는 차이가 불일치의 재미를 주는 묘한 영화다.

 

미묘한 불일치는 마치 감독과 관객이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것처럼 혼란과 재미를 준다.

특히 같은 배우가 같은 공간에서 시침 뚝 떼고 다른 인물을 연기하기 때문에 관객들이 혼란스러워 할 수 있다.

 

결국 2부가 1부에서 모티프를 얻은 감독의 영화 속 영화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쯤 영화는 막을 내린다.

아니, 굳이 이 사실을 알지 않아도 상관없다.

 

2부를 또 다른 인물들의 러브 스토리로 받아들여도 좋고 유스케 혹은 혜정의 꿈, 아니면 영화를 만들기 위한 태훈의 상상으로 생각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1부와 2부의 연결성이 아니라 그렇게 어느 한 여름 낯선 장소에서 두 사람이 만나 인연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1부와 2부 챕터를 나눴지만 굳이 2부가 어떤 영화라는 점을 감독은 알리지 않는다.

열린 형식만큼 내용 또한 열려 있다.

 

1부와 2부가 다른 영화라고 단정하면 1부에서 돌아간 태훈은 2부를 어떻게 마무리 지었을지, 2부 막판에서 청년의 손에 전화번호를 적어준 혜정은 나중에 일본 청년을 다시 만났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아니, 오히려 관객만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게 비어있는 여백은 관객이 상상으로 채우면서 각자 저마다 다른 뒷이야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판타지아라고 제목을 명명한 감독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감독은 오로지 1부와 2부가 이어지지 않는 내용이라는 것을 흑백과 컬러 영상으로 명확하게 구분해 보여줄 뿐이다.

나머지는 관객의 몫이다.

 

블루레이는 본편과 부록 등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1080p 풀 HD의 1.78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괜찮다.

 

1부 흑백 영상은 따로 논할 게 없고, 2부 컬러 영상도 필터를 끼운듯한 아련한 색감이 잘 살아있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부록은 보다가 지칠 만큼 차고 넘친다.

감독과 배우, 감독과 평론가가 각각 참여하는 2개의 음성해설, 제작과정, 감독 및 배우들 인터뷰, 로케이션, 일본 극장 무대인사, 삭제 장면, 삭제 장면에 대한 감독 해설, 뮤직비디오 등 풍성한 내용이 HD 영상으로 들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중에 전화를 주고받은 혜정과 일본 청년의 뒷이야기를 담은 영상도 들어 있다.

이 부분도 흥미롭게 볼 만하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 작품은 일본의 여류 영화감독이자 나라국제영화제 이사장인 가와세 나오미가 제작에 참여했다.
영화의 전제조건은 고조시에서 촬영하는 것이었다.
고조시 공동묘지를 배경으로 찍은 장면. 멀리 돌보는 사람이 없는 묘비를 피라미드처럼 모아 놓았다.
고조시 요시노강 앞에서 촬영. 고조시는 한 여름에 40도까지 올라가 낮에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다.
극 중 카페 주리는 실제 있는 곳이었다. 카페 이름과 여주인 이름이 동일했다. 지금은 다른 카페로 바뀌었다.
2부 컬러로 바뀌면서 등장하는 인서트 컷은 후지이 마사유키 촬영감독이 찍어놓은 것을 활용했다. 원래 1부는 흑백, 2부는 컬러로 촬영할 계획이었다.
고조시의 명소인 신마치 길. 옛날 가옥들을 그대로 보존하는 곳이다.
호법대사가 만들었다는 우물 전설은 실제 있는 얘기에 감독이 일부를 덧붙였다.
형식과 구성이 독특한 이 영화는 로드무비 형식도 일부 담고 있다. 다만 장소가 고조시와 시노하라로 제한된다. 제작진은 영화를 이야기 순서대로 찍었다.
독립영화에 많이 나온 김새벽은 일본어를 하지만 아주 능통한 편은 아니라고 한다.
시노하라의 폐교도 실제로 있는 곳이다. 25년전 모습과 도구, 액자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1부의 감독인 태훈 역할을 감독이 직접하려고 했으나 영화같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바꿨다. 2부 이야기도 촬영 들어가기 직전에 결정했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한여름의 판타지아 (3Disc 디지팩 소장판) : 블루레이
 
한여름의 판타지아 (2Disc 풀슬립 한정판) : 블루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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