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셰이프 오브 워터(블루레이)

울프팩 2020. 3. 26. 23:03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들은 환상이라는 거울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이나 '스타워즈'처럼 완전히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라 현실을 다른 모습으로 비친 거울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캐릭터들이다.

'헬보이'부터 '블레이드 2' '판의 미로'를 거쳐 '셰이프 워터'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속 캐릭터들은 현실에서 보기 힘든 기이한 존재들이다.

 

남들과 다르다는 점 때문에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들이지만 그들의 능력은 때로는 누군가에게 공포가 되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

델 토로는 비현실적인 존재들을 통해 어느 사회나 안고 있는 이질적인 존재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우리의 모습을 거꾸로 비춰 보여줬다.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 2017년)에서는 그 역할을 아쿠아맨 같은 이름 없는 괴물이 맡았다.

미국 정보기관이 남미 어느 강에서 잡아온 괴물은 지역 부족민들에게 신으로 추앙받던 존재다.

 

영화는 그가 왜 잡혀 왔는지, 어쩌다 잡혀왔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아니 그의 존재 자체가 어떤 위협이 되는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캐릭터의 정체성도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오로지 관객이 알 수 있는 것은 기이하고 흉측한 그의 외모뿐이다.

물고기처럼 아가미로 호흡하고 물을 떠나 오래 있으면 피부가 마르며 죽을 위기에 처한다.

 

사람들은 원래 다르게 생긴 것을 별로 반기지 않는다.

진면목을 알게 되는 것은 나중 일이고 일단 외모를 통해 선입견을 갖게 되면 생각을 쉽게 바꾸지 못한다.

 

극 중에서는 괴물을 감시하는 정보기관원 리처드(마이클 새넌)의 모습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리처드는 처음부터 괴물에게 강한 증오감을 드러낸다.

 

리처드가 자신의 실력을 의심하는 호이트 장군에게 한국전에서 용감하게 적을 무찌른 군인이라는 점을 과시하는 대사를 통해 증오의 뿌리가 좌파 알레르기와 맞닿아 있을 수 있다는 짐작이 간다.

마치 '판의 미로'에서 좌파 정부군을 잔혹하게 살해한 프랑코 군 장교인 새아버지 같은 존재다.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도 미국과 구 소련이 각기 핵무기를 보유한 채 치열한 냉전을 펼친 1962년 볼티모어다.

리처드가 말도 못 하는 괴물을 가혹하게 고문하며 얻어내려 한 것은 결국 스파이라는 실토였다.

 

자백을 받아낼 수 없다면 죽인 뒤 해부를 해서라도 시뻘건 속을 보고 싶어 한다.

외모뿐 아니라 다른 생각과 다른 말을 하는 이질적인 존재를 곧 체제 위협적인 존재로 보는 냉전시대의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정작 괴물에게 인간적인 연민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인 일라이자(샐리 호킨스)와 정작 체제 위협적인 존재인 구 소련의 스파이(마이클 스털버그)다.

사회의 마이너리티인 그들을 통해서만 인간성의 회복을 볼 수 있다는 점은 비극이다.

 

일라이자와 스파이는 왜 괴물을 도왔을까.

영화는 이를 명확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다만 일라이자와 괴물이 나누는 정사를 통해 아무 이유도, 대가도 없는 순수한 사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물처럼 어떤 형태를 단정하기 힘든 사랑이 곧 일라이자가 선행을 베푸는 이유이자 괴물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쇠가 된다.

 

이는 곧 무엇이든 얻어내고 알아내려 한 폭력적인 리처드의 모습과 대비된다.

그러나 냉정하게 얘기하면 일라이자나 리처드는 사람들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선악을 상징하는 쌍둥이 같은 존재들이다.

 

일라이자와 리처드는 사람들이 무조건적 사랑을 베푸는 천사의 모습과 반대로 정치적이든 다른 이유든 냉혹하고 잔인한 악마 같은 면을 함께 지녔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이를 일깨워주는 존재가 흉측한 괴물이 아닌 일라이자와 리처드라는 점이 무섭다.

 

그 점이 이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진정한 공포다.

오히려 괴물은 그런 양면성을 드러내는 희생양일 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n번방, 박사방 등으로 사회에 충격을 준 조주빈의 모습에서 이런 악마성을 본다.

새삼 일라이저가 보여준 무정형의 사랑이 그리운 시기다.

 

1080p 풀 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인 화질이 괜찮다.

채도가 차분하게 가라앉은 영상은 깊이 있는 블랙을 보여주며 영화의 무게감을 더한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좋다.

채널 분리가 잘 돼 있어서 각종 효과음이 청취 공간에 가득 퍼진다.

 

부록으로 일러스트레이션, 제작진 설명회, 수중 장면 설명, 뮤지컬 장면 촬영, 캐릭터 설명, 세트, 음악 등 다양한 내용들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모두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인트로 장면은 물 속에 둥둥 떠있는 가구와 의자들을 와이어에 매단 채 조명과 필터, 연기 등을 사용해 물 속처럼 촬영하는 드라이 포 웨트 기법을 사용해 찍었다.
이 작품은 제74회 베니스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사자상, 제90회 아카데미상 작품상과 감독상, 미술상, 음악상을 받았다.
여주인공을 연기한 일라이자는 수화를 따로 배웠다.
델 토로 감독이 제작과 연출, 각본과 원안 구성까지 했다.
사령부 내부 세트는 미드 시리즈 '스트레인'의 시즌4 세트의 기본 골격을 유지한 채 약간씩 바꿔 사용했다.
연구실 겸 고문실은 중세 지하감옥 같은 분위기로 제작됐다.
촬영은 '존 윅' 2편과 3편, '크림슨 피크' '늑대의 후예들' 등 영상이 뛰어난 작품을 찍은 댄 로스츠센이 맡았다.
욕실도 '스트레인'의 세트를 재활용했다.
극장에서 상영중인 작품은 1960년에 만든 '룻이야기'다.
헤어 누드가 그대로 등장. 델 토로 감독은 잭 아놀드 감독이 1954년에 만든 '해양 괴물'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델 토로 감독은 이 작품을 냉전 스릴러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이념, 인종, 성적 차별을 뛰어넘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델 토로 감독은 스탠리 도넌 감독의 '사랑은 비를 타고'를 참고해 뮤지컬 장면을 찍었다.
괴물 형체는 델 토로 감독의 스케치를 토대로 레거시 이펙트에서 만들었다. 괴물을 연기한 더그 존스는 라텍스로 만든 괴물 피부 슈트를 입고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