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추천 DVD / 블루레이

라임라이트

울프팩 2013. 3. 1. 17:20
찰리 채플린이 '라임라이트'(Limelight, 1952년)를 만들던 시기는 그에게 가장 힘든 때였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조안 베리와 친자 확인 소송에 휘말렸고 미국 극우단체와 언론은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붙였다.

그 여파로 미국에서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그의 작품 중에 사상 검증 논란이 불거진 뒤 개봉한 '무슈 베르두'(http://wolfpack.tistory.com/entry/살인광시대-무슈-베르두)는 미국 흥행에 실패했다.
"관객은 개개인으로 보면 좋지만, 군중이 되면 머리 없는 괴물이 되지. 어느 쪽으로든 돌아설 수 있거든"이라는 '라임라이트'의 주인공 칼베로의 대사 속에는 외롭고 지친 채플린의 심경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만큼 이 영화에는 늙고 지친 채플린의 눈물겨운 모습이 보인다.
더불어 위대한 천재 예술가의 놀라운 투혼이 함께 어려있어 가슴을 아리게 한다.

내용은 왕년에 인기를 누렸으나 지금은 찾는 이 없는 퇴물 코미디언 칼베로가 삶의 희망을 버린 처녀에게 용기를 심어주는 얘기다.
그의 장기인 코미디도 보이지만 영화는 전반적으로 눈물을 자아내는 비극이다.

가장 웃음을 잘 아는 자가 눈물도 잘 아는 듯, 채플린이 빚은 이 비극은 단순히 슬프기만 한 게 아니라 참으로 감동적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예술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는 칼베로의 모습은 다름 아닌 채플린 그 자신이다.

유성영화 시대를 맞아 찬란했던 무성영화 시대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쓸쓸히 쇠락해 가는 칼베로의 모습 속에는 슬픈 광대의 초상이 숨어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비록 거리의 악사가 돼 구걸을 할 지 언정 떠오르는 신예들의 앞을 가로막는 짐이 되기를 거부한다.

"난 꺾을 수록 더 살아나는 늙은 잡초인걸"이라는 그의 대사가 그래서 더더욱 가슴 아프다.
더불어 채플린과 쌍벽을 이뤘던 왕년의 무성영화 스타 버스터 키튼 또한 등 굽은 노인네가 돼 채플린과 마지막 호흡을 맞추는 모습 또한 마음을 흔든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채플린의 도전 정신은 이 작품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장기인 마임을 비롯해 이 작품에서는 놀랍게도 발레를 접목한다.

특히 유명한 주제곡을 비롯해 12분에 이르는 발레 음악 또한 채플린이 직접 작곡했다.
또 초반 자살을 기도한 여주인공의 침실로 물 흐르듯 스며드는 카메라 트래킹을 보면 마치 핸드헬드를 보는 것처럼 유연해 놀라게 된다.

시대는 가고 스타도 스러진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위대한 업적은 영원불멸하다는 것을 채플린의 최고 걸작인 이 작품을 보며 깨닫는다.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인생은 멋진거야."
칼베로의 한마디가 삶에 지친 사람들의 어깨를 두드린다.

이 작품 역시 워너브라더스에서 나온 채플린 컬렉션 볼륨 1에 들어 있다.
4 대 3 풀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무난한 화질이다.

디테일도 떨어지고 화소도 뭉개지지만 제작 연도를 감안하면 비교적 잡티 없이 복원이 잘 됐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며, 두 번째 디스크에 작품 소개와 삭제 장면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부록으로 들어 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아아 채플린. 새삼 이 작품을 통해 거장의 숨결을 느낀다. 이 작품은 채플린이 단순히 웃기기만 하는 배우가 아니라 작품에 혼을 실을 줄 아는 위대한 예술가라는 점을 입증한 영화다.
채플린은 자신이 어렵게 자랐던 런던 거리를 파라마운트 세트장에 만들었다. 초반 등장하는 세 아이는 모두 채플린의 자식인 제랄딘, 마이클, 조제핀이다. 뿐만 아니라 채플린의 부인 우나 오닐도 여주인공이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에서 잠시 대역으로 출연했다.
채플린은 영화와 비슷한 내용의 '각광'이란 소설을 먼저 썼다. 특히 클레어 블룸이 연기한 여주인공은 채플린의 모친과 첫사랑이었던 헤티 켈리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 채플린은 블룸에게 끊임없이 모친과 켈리가 입었던 의상과 몸짓 등을 이야기했다.
채플린은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사랑이야기는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사랑받는 주제라고 생각해 이 작품을 구상했다. 그는 "감성은 지성보다 더 자극적이고 호소력있다"고 믿었다.
여주인공을 흠모하는 젊은 작곡가는 채플린의 장남 시드니가 맡았다. 제목인 라임라이트는 무대에서 인물을 집중적으로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용 조명을 말한다.
채플린은 여주인공을 위해 미인이면서 재능있고 폭넓은 감성 연기가 가능한 배우를 오랫동안 찾았다. 그러던 중 친구인 아더 로렌츠가 추천해 준 클레어 블룸을 만나 출연 계약을 맺었다.
무용극에서 경찰관은 채플린의 또다른 아들 찰스가 연기했고, 뿔달린 모자를 쓴 광대는 의붓형제 윌러가 맡았다.
채플린은 러시아 출신의 발레리노 안드레 에글레프스키를 염두에 두고 발레곡을 썼다. 에글레프스키는 채플린의 전화를 받고 할리우드로 날아와 곡을 들어본 뒤 칭찬을 하고, 발레리나인 멜리사 헤이든과 함께 출연했다. 여주인공의 발레 장면은 멜리사 헤이든이 대신 춤을 췄다.
그는 촬영 기간 좌파 색출을 위한 반미활동위원회의 조사를 받았고, FBI의 감시를 받았다. 그는 기본 인권을 침해하는 극우단체와 반미활동위원회의 조사에 공공연히 반대했다.
마지막 공연에서 채플린과 호흡을 맞춘 피아노 연주가는 다름아닌 위대한 희극 배우 버스터 키튼이다. 무성영화 시대 전설이었던 그는 유성영화 등장과 함께 물러나 알코올 중독자 신세가 됐다가, 이 작품에서 채플린과 함께 공연을 했다. 왠지 그의 모습이 눈물겹다.
채플린이 죽는 장면을 연기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마지막 그의 시신을 덮는 흰 천이 다름아닌 그의 영광을 가져온 스크린이라는 점이 더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채플린은 자서전에서 자신이 만든 이 영화가 감동적이었지만 일부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시사회에서 눈물을 훔친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찰리 채플린 - 라임라이트 (2disc)
찰리 채플린 감독
찰리 채플린,나의 자서전
찰리 채플린 저/이현 역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예스24 | 애드온2

'추천 DVD / 블루레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러브레터 (블루레이)  (10) 2013.03.25
공모자들 (블루레이)  (8) 2013.03.05
이웃집 토토로 (블루레이)  (4) 2013.02.28
위대한 독재자  (4) 2013.02.16
모던 타임즈  (8) 2013.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