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광시대'(Monsieur Verdoux, 1947년)로 알려진 '무슈 베르두'는 찰리 채플린의 작품 중에서도 독특한 작품이다.
변함없이 그가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 주연에 작곡까지 한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살인을 소재로 한 코미디이다.
그는 여성들만 골라서 재산을 노리고 위장 결혼을 한 뒤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와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특수한 상황에서는 살인도 희극"이라고 본 채플린은 실제 프랑스의 연쇄살인범이었던 앙리 랑드뤼의 실화를 토대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원래 원안은 '시민 케인'을 만든 오손 웰즈가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영화로 기획하면서 채플린을 주연으로 쓰기 위해 제안했다가, 오히려 채플린의 설득으로 5,000달러에 원안을 채플린에게 팔았다.
채플린은 이 아이디어를 갖고 4년 동안 대본을 썼다.
채플린은 단순히 실화를 영화로 옮긴 것이 아니라 평소 사회 비판적 생각들을 베르두의 대사에 녹여 냈다.
대표적인 것이 너무나도 유명한 "전쟁과 투쟁도 일종의 사업이다. 한 둘을 죽이면 악한이 되지만 대량 학살을 하면 영웅이 된다"는 말이다.
그의 이 대사 속에는 제 2 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이 전후 세계 질서 재편을 위해 개인의 행복보다는 국가와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냉전 논리로 치닫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비판이 서려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속 베르두의 삶은 당시 세계 정세와 자본주의의 한계를 고스란히 노정하고 있다.
경기 불황과 대량 실업, 주식폭락과 은행 파산으로 서민들의 삶이 흔들리면서 강력한 국가를 앞세운 파시즘이 대두하게 된 제 2 차 세계대전 직전의 시대적 배경을 정확하게 짚었다.
또 "절망이란 마약 같아서 곧 익숙해진다", "악 없이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악이란 햇볕에 가려진 그림자"라는 베르두의 대사 속에는 법과 사회제도에 대한 냉소적 시각이 녹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정부주의로 들릴 수 있는 영화 속 대사들은 극우파들에게 좋은 공격의 빌미가 됐다.
특히 이 작품을 계기로 채플린은 공산주의자로 몰리며 급기야 1952년 미국을 떠나게 된다.
재향군인회 등 극우단체들은 극장 앞에서 시위를 벌여 급기야 영화가 내려가게 만들었다.
그 바람에 이 작품은 유럽을 제외하고 미국에선 처음으로 흥행에 실패한 작품이 됐다.
그만큼 이 작품은 채플린에게도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플린은 이 작품을 그의 작품 중 "가장 재치로 빛난 작품"으로 꼽았다.
4 대 3 풀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60여년 전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볼 만 한 화질이다.
디테일이 떨어지고 화소도 뭉개지지만 별다른 잡티 없이 복원이 잘됐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으로 작품 소개와 이 작품의 영향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이 작품은 다양한 제작사에서 DVD 타이틀로 나와 있지만 역시 정답은 화질 복원과 부록을 충실하게 담은 워너브라더스의 채플린 콜렉션이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이 작품의 실존 모델이 된 앙리 랑드뤼는 10명의 아내와 1명의 소년을 살해한 죄로 1922년 처형됐다. 이 작품을 위해 채플린은 실제로 콧수염을 길렀다. 랑드뤼는 영화 속 베르두처럼 장미를 다듬고 가꿨다. 사람은 무자비하게 죽이면서 작은 벌레를 밟을까봐 조심하는 베르두의 모습은 인간의 이중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작품을 만들고 개봉했던 시기가 채플린에게 가장 힘든 때였다. 그는 조안 베리가 제기한 친자 확인 소송에 휘말렸다. 결국 혈액형 검사결과 채플린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져 승소했다. 채플린은 이 무렵 죽을 때 까지 함께 한 반려자 우나 오닐을 만난다. 우나 오닐은 유명한 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로, 당시 18세였다. 거리에서 만난 빼어나게 아름다운 아가씨 역은 마릴린 내쉬가 연기. 원래 채플린은 내쉬의 역할을 매춘부로 설정했으나 검열을 맡은 브린하우스에서 삭제할 것을 요구해 그냥 전과자로만 묘사됐다. 실제 연쇄살인범 랑드뤼는 영화 속 베르두처럼 가구상이었고 부유한 과부들과 결혼해 죽인 뒤 재산을 가로챘으나, 어느 피해 여성의 가족이 의심하면서 꼬리를 잡혔다. 전쟁과 국가권력, 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1940년대 냉전기류와 함께 채플린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특히 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사실상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 신성모독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경제공황의 여파로 실업자가 늘고 주식이 폭락하며 은행이 파산하면서 서민들의 삶이 황폐화되자 이 틈을 비집고 파시즘이 대두한 세계 정세를 채플린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미국 언론과 에드가 후버가 이끈 FBI는 채플린이 미국 국적을 획득하지 않는 점과 세금 문제 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비애국자로 몰아붙였다. 결국 채플린은 반미위원회 조사에서도 무혐의 판정을 받았으나 진절머리를 내며 1952년 미국을 떠났고, 영국행 배 위에서 미국의 추방 명령을 받았다. 이후 그는 스위스에 정착해 살았다. 채플린은 히틀러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옮겨온 소설가 토마스 만, 작곡가 한스 아이슬러, 좌파 연극인 브레톨르 브레히트 등과 친했는데, 이것이 그에게는 비극이 됐다. 베르두의 희생양이 되는 여자들은 거칠고 괴팍하고 못생겼는데, 채플린은 활력이 넘치지만 저속하고 억센 기질을 지닌 미국인의 모습을 여기에 투영했다. 반면 베루두가 유일하게 죽이지 않은 여성은 아름답다. 앙드레 바쟁은 이 작품의 엔딩을 채플린 추방으로 이어진 미국식 마녀사냥에 빗대 "그들은 방랑자를 사형시켰다"고 평했다.
변함없이 그가 직접 각본을 쓰고 감독 주연에 작곡까지 한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살인을 소재로 한 코미디이다.
그는 여성들만 골라서 재산을 노리고 위장 결혼을 한 뒤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부조리와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특수한 상황에서는 살인도 희극"이라고 본 채플린은 실제 프랑스의 연쇄살인범이었던 앙리 랑드뤼의 실화를 토대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
원래 원안은 '시민 케인'을 만든 오손 웰즈가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영화로 기획하면서 채플린을 주연으로 쓰기 위해 제안했다가, 오히려 채플린의 설득으로 5,000달러에 원안을 채플린에게 팔았다.
채플린은 이 아이디어를 갖고 4년 동안 대본을 썼다.
채플린은 단순히 실화를 영화로 옮긴 것이 아니라 평소 사회 비판적 생각들을 베르두의 대사에 녹여 냈다.
대표적인 것이 너무나도 유명한 "전쟁과 투쟁도 일종의 사업이다. 한 둘을 죽이면 악한이 되지만 대량 학살을 하면 영웅이 된다"는 말이다.
그의 이 대사 속에는 제 2 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이 전후 세계 질서 재편을 위해 개인의 행복보다는 국가와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냉전 논리로 치닫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비판이 서려 있다.
뿐만 아니라 영화 속 베르두의 삶은 당시 세계 정세와 자본주의의 한계를 고스란히 노정하고 있다.
경기 불황과 대량 실업, 주식폭락과 은행 파산으로 서민들의 삶이 흔들리면서 강력한 국가를 앞세운 파시즘이 대두하게 된 제 2 차 세계대전 직전의 시대적 배경을 정확하게 짚었다.
또 "절망이란 마약 같아서 곧 익숙해진다", "악 없이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악이란 햇볕에 가려진 그림자"라는 베르두의 대사 속에는 법과 사회제도에 대한 냉소적 시각이 녹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정부주의로 들릴 수 있는 영화 속 대사들은 극우파들에게 좋은 공격의 빌미가 됐다.
특히 이 작품을 계기로 채플린은 공산주의자로 몰리며 급기야 1952년 미국을 떠나게 된다.
재향군인회 등 극우단체들은 극장 앞에서 시위를 벌여 급기야 영화가 내려가게 만들었다.
그 바람에 이 작품은 유럽을 제외하고 미국에선 처음으로 흥행에 실패한 작품이 됐다.
그만큼 이 작품은 채플린에게도 잊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영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플린은 이 작품을 그의 작품 중 "가장 재치로 빛난 작품"으로 꼽았다.
4 대 3 풀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60여년 전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볼 만 한 화질이다.
디테일이 떨어지고 화소도 뭉개지지만 별다른 잡티 없이 복원이 잘됐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으로 작품 소개와 이 작품의 영향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이 작품은 다양한 제작사에서 DVD 타이틀로 나와 있지만 역시 정답은 화질 복원과 부록을 충실하게 담은 워너브라더스의 채플린 콜렉션이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이 작품의 실존 모델이 된 앙리 랑드뤼는 10명의 아내와 1명의 소년을 살해한 죄로 1922년 처형됐다. 이 작품을 위해 채플린은 실제로 콧수염을 길렀다. 랑드뤼는 영화 속 베르두처럼 장미를 다듬고 가꿨다. 사람은 무자비하게 죽이면서 작은 벌레를 밟을까봐 조심하는 베르두의 모습은 인간의 이중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작품을 만들고 개봉했던 시기가 채플린에게 가장 힘든 때였다. 그는 조안 베리가 제기한 친자 확인 소송에 휘말렸다. 결국 혈액형 검사결과 채플린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져 승소했다. 채플린은 이 무렵 죽을 때 까지 함께 한 반려자 우나 오닐을 만난다. 우나 오닐은 유명한 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로, 당시 18세였다. 거리에서 만난 빼어나게 아름다운 아가씨 역은 마릴린 내쉬가 연기. 원래 채플린은 내쉬의 역할을 매춘부로 설정했으나 검열을 맡은 브린하우스에서 삭제할 것을 요구해 그냥 전과자로만 묘사됐다. 실제 연쇄살인범 랑드뤼는 영화 속 베르두처럼 가구상이었고 부유한 과부들과 결혼해 죽인 뒤 재산을 가로챘으나, 어느 피해 여성의 가족이 의심하면서 꼬리를 잡혔다. 전쟁과 국가권력, 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1940년대 냉전기류와 함께 채플린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특히 종교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사실상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 신성모독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경제공황의 여파로 실업자가 늘고 주식이 폭락하며 은행이 파산하면서 서민들의 삶이 황폐화되자 이 틈을 비집고 파시즘이 대두한 세계 정세를 채플린은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미국 언론과 에드가 후버가 이끈 FBI는 채플린이 미국 국적을 획득하지 않는 점과 세금 문제 등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비애국자로 몰아붙였다. 결국 채플린은 반미위원회 조사에서도 무혐의 판정을 받았으나 진절머리를 내며 1952년 미국을 떠났고, 영국행 배 위에서 미국의 추방 명령을 받았다. 이후 그는 스위스에 정착해 살았다. 채플린은 히틀러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옮겨온 소설가 토마스 만, 작곡가 한스 아이슬러, 좌파 연극인 브레톨르 브레히트 등과 친했는데, 이것이 그에게는 비극이 됐다. 베르두의 희생양이 되는 여자들은 거칠고 괴팍하고 못생겼는데, 채플린은 활력이 넘치지만 저속하고 억센 기질을 지닌 미국인의 모습을 여기에 투영했다. 반면 베루두가 유일하게 죽이지 않은 여성은 아름답다. 앙드레 바쟁은 이 작품의 엔딩을 채플린 추방으로 이어진 미국식 마녀사냥에 빗대 "그들은 방랑자를 사형시켰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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