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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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메이트 메이킹 다이어리

어려서부터 영화를 보면 내용보다 저 장면을 어떻게 찍었는지 뒷얘기가 더 궁금했다. 이소룡의 '정무문'을 본 친구들이 도장에서 이소룡이 몇 명의 상대를 쓰러트렸는지 옥신각신 할 때, 난 이소룡의 팔이 시바의 여신처럼 여러 개로 보이는 장면의 비결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영화 관련 책에 관심이 많았다. 1980년대는 지금과 달리 영화 관련 서적이 많이 나오지 않았다. '스크린'과 '로드쇼'라는 영화잡지가 창간되기 전에는 한진출판사 등에서 007 시리즈나 '콰이강의 다리' 등 영화 관련 번역 소설, 또는 '신과 악마의 동화' 같은 배우들 이야기를 찍어낸 게 전부였다. 나중에 집문당이나 영화진흥공사에서 직접 펴낸 영화이론총서 등을 보며 영화의 문법 등을 배웠지만 꽤 난해한 번역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지금은 숱..

2023.04.22

마리아 칼라스: 내밀한 열정의 고백

앤 에드워드(Anne Edwards)가 쓴 '마리아 칼라스: 내밀한 열정의 고백'(Maria Callas: An Intimate Biography, 해냄)은 위대한 평전의 전범을 보여주는 저서다. 2005년 국내에 초판이 출간된 이 책은 나온 지 17년 된 오래된 책이다. 읽으려고 책방 한쪽에 쌓아놨던 책 더미에서 오랜만에 꺼냈는데,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해서 순식간에 읽었고 내용이 너무 좋아 글을 남기고 싶었다. 저자인 앤 에드워드는 '캐서린 햅번: 빼어난 여성' '다이애나비와 그녀의 인생' '모나코의 그리말디스' 등 숱한 여성의 전기를 써내서 평전의 여왕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인물 평전의 뛰어난 걸작 퓰리처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오를 만큼 그의 저서는 꼼꼼한 사실 기록과 다각도의 취..

2022.08.13

HHhH

1942년 5월 27일, 나치 독일이 점령한 체코의 총독이었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암살 공격을 받았다. 체코인 얀 쿠비시와 슬로바키아 사람인 요제프 가브치크의 공격을 받은 그는 그로부터 1주일 뒤인 6월4일 상처 감염 때문에 발생한 패혈증으로 숨졌다. [아버지가 음악가였던 라인하르트는 뛰어난 바이얼린 연주자였고 피아노도 잘 쳤으며 수준급 펜싱선수였다.] 프라하의 도살자, 금발의 짐승, 독일 제 3 제국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 가는 목소리 때문에 염소 등으로 불렸던 하이드리히는 친위대 수장이었던 하인리히 히믈러는 물론이고 아돌프 히틀러가 가장 총애했던 인물이었다. 덕분에 그는 친위대(SS) 2인자는 물론이고 보안방첩대(SD)를 총괄하며 비밀경찰 게슈타포, 사법경찰 크리포를 통합한 제국보안부 책임자가 ..

2016.12.28

프레드릭 포사이드와 '재칼의 날'

파리 테러를 보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세계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프레드릭 포사이드(Frederick Forsyth)다.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집필한 책들이 전세계에서 7,000만권 이상 팔릴 만큼 인기 작가인 그는 냉전이 끝나면 더 이상 다룰 소재가 없지 않냐는 우려에 대해 한마디로 일축했다. "테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포사이드는 오히려 냉전시대에 활약한 스파이나 이들을 잡기 위한 방첩기관 요원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것으로 봤다. 일부는 경호 등 사설보안요원으로, 일부는 누구 편이 됐든 용병으로 뛸 것이란 예측이다. 그렇게 쏟아져 나온 전문가들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영화에 흔히 나오는 악당이나 테러리스트들을 가르치는 교관이 될 수 있다. 오랜 준비를 통해 동시다발적..

2015.11.21

정글만리

출장 때문에 몇 번 찾아간 중국은 놀라운 나라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자금성의 규모와 끝없이 이어지는 만리장성 길이에 놀랐고, 끝간데 없이 시퍼런 물길이 경이로움과 공포감을 동시에 주는 '소계림' 용경협에 압도됐다. 이강(離江)이 감싸고 도는 계림에서는 수려한 풍광에 놀랐고, 곰과 호랑이 1,000여마리를 풀어 놓은 웅호산장에서 본 호랑이가 소를 산 채로 잡아먹는 장면은 충격이었다. 목이 아플 정도로 심한 공해와 호텔 창 밖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센 황사, 도대체 무엇이 진품인 지 알 수 없을 만큼 넘쳐 나는 짝퉁의 물결도 중국이 준 놀라움이었다. 1970년대식 촌스러운 대화와 연애담 조정래 작가의 세 권짜리 베스트셀러 소설 '정글만리'에서 다룬 정글은 바로 현대의 중국이다.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철저하..

2014.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