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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마겐의 철교

울프팩 2012. 7. 31. 10:22

제 2 차 세계대전때 다리를 둘러싼 전투를 다룬 대표적인 작품이 '멀고 먼 다리'와 '레마겐의 철교'(The Bridge at Remagen, 1969년)다.
'멀고 먼 다리'가 마켓가든 작전 당시 아른헴 다리를 배경으로 했다면, '레마겐의 철교'는 라인강의 마지막 남은 다리였던 루덴도르프 철교를 다뤘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3월, 나치 독일은 연합군의 진격을 막고자 라인강에 걸린 다리를 대부분 끊었으나 유일하게 남은 다리가 하나 있었다.
바로 루덴도르프 철교다.

레마겐 다리로 알려진 이 다리는 칼 비너라는 독일 건축가가 만든 것으로, 제 1 차 세계대전 때 독일측 영웅으로 꼽히는 에리히 루덴도르프 장군을 기려서 그의 이름을 땄다.
에리히 루덴도르프는 1923년 뮌헨폭동때 히틀러 편을 들어 그와 함께 행진을 한 인물이다.

라인강 도하가 시급해진 연합군은 서쪽의 레마겐 마을과 동쪽의 에르펠 마을을 연결하는 이 다리를 발견하고 코트니 하지스 중장이 지휘하는 제 1군 휘하의 제 9기갑사단을 급파했다.
독일은 다리를 끊기 위해 사력을 다해 맞섰으나 파괴에 실패해 제 9 기갑사단의 B중대가 다리를 점령했다.

덕분에 제 9 기갑사단 B중대는 연합군 사상 가장 먼저 라인강을 건넌 부대가 됐고, 여기 자극받은 조지 패튼 장군도 휘하의 제 3 군을 독려해 라인강을 도하했다.
연합군이 레마겐 철교를 확보하면서 베를린 진격이 상당 기간 앞당겨졌다는 평가다.

그런 점에서 레마간 철교 전투는 제 2 차 세계대전때 중요한 전투로 꼽힌다.
존 길러민 감독의 '레마겐의 철교'는 이 같은 역사적 사건을 다룬 전쟁영화다.

로버트 본 외에 스타급 배우는 별로 안보이지만 제 2 차 세계대전 당시 활약한 M24 채피 경전차와 독일 하프트럭 등 실제 무기들이 등장해 전쟁 장면을 재현했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다리 폭파에 실패한 독일 국방군 장교를 친위대들이 총살하는 장면이다.

적과 아군을 떠나 책임을 물어 같은 편을 죽여야 하는 전쟁의 야만성이 인간적 비애를 느끼게 한다.
전투 장면이 스펙터클하지는 않지만 전쟁 자체에 시니컬한 주인공들을 통해 반전 메시지를 전달한 작품이다.

1.37 대 1의 비아나모픽 와이드스크린의 DVD 타이틀은 화질이 좋지 않다.
중경 원경에서 눈 코 입을 분간하기 힘들만큼 디테일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색감도 탁하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은 전무하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이 영화는 미 상원의원을 지낸 작가 켄 헥슬러의 실화 소설이 원작이다. 그는 제 2 차 세계대전 당시 장교후보생으로 미 제 9 기갑사단과 함께 레마겐 철교 전투에 참전했고, 이 영화의 기술자문을 맡았다.
존 길러민 감독은 걸작 재난영화인 '타워링'과 1976년에 리메이크된 '킹콩'을 만들었다.
다리 사수를 맡은 독일 장교 역은 '나폴레옹 솔로' 시리즈로 유명한 로버트 본이 연기. 옆에 선 슈미트 대위는 '발지대전투'에도 나오는 한스 크리스티안 블레흐가 연기. 블레흐는 제 2 차 세계대전 때 러시아 동부전선에서 싸운 참전 군인 출신이다.
독일 하프트럭은 체코제 sd.kfz251을 사용해 촬영. 영화가 독일이 아닌 체코에서 촬영했기 때문.
영화를 체코에서 찍은 이유는 수상 교통에 불편을 준다는 이유로 서독이 촬영 허가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  제작진은 체코 다블레 마을 근처 블타바(몰디브)강변의 철교에서 촬영했다.
연합군 전차 격파에 혁혁한 공을 세운 독일군의 88대공포. 88대공포는 롬멜 장군이 사막전에서 영국 전차를 격파하면서 전차 킬러로 활약하게 됐다.
다리 점령을 맡은 B중대장을 연기한 조지 시걸과 상사 역의 벤 가자라. 벤 가자라는 올해 2월 췌장암으로 타계했다. 항년 81세. 벤 가자라는 연기를 잘해 제 2의 험프리 보가트로 불렸으며, 1981년 인천상륙작전을 다룬 '인천'에도 출연했다. 오드리 헵번과 스캔들이 유명하다.
제작진은 1968년 체코에서 촬영 당시 프라하의 봄으로 유명한 민주화항쟁이 일어나면서 이를 진압하기 위해 소련군이 진주하는 바람에 택시로 탈출하는 소동을 빚었다. 이후 로마 교외 카스텔간돌포 근교에서 나머지 촬영을 했다.
미군의 M24 채피 경전차가 등장. 미군은 75밀리 포를 장착한 이 전차가 화력이 좋고 속도가 빨라 1944년 말부터 주로 사용했으며, 전후에도 계속 운용했다. 그러나 레마겐 전투 당시 미 제 9 기갑사단은 M26 퍼싱전차를 앞세워 다리를 공략했다.
레마겐 철교는 1945년 3월7일 미 제 9기갑사단이 점령하고 열흘 뒤인 3월17일 독일군의 공습과 V2로켓 공격으로 결국 무너졌다. 다리는 지금도 끊어진 채 그대로 남아 있으며, 전쟁 당시 마을 시장이었던 한스 페터 쾨르텐이 전후 기념공원으로 조성했다. 1980년에 레마겐 평화박물관도 건립됐다.
다리 폭파를 맡았던 독일군 장교와 공병대원 20명은 임무 실패에 대한 책임 때문에 친위대에 총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