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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칼라스: 내밀한 열정의 고백

울프팩 2022. 8. 13. 12:19

앤 에드워드(Anne Edwards)가 쓴 '마리아 칼라스: 내밀한 열정의 고백'(Maria Callas: An Intimate Biography, 해냄)은 위대한 평전의 전범을 보여주는 저서다.

2005년 국내에 초판이 출간된 이 책은 나온 지 17년 된 오래된 책이다.

 

읽으려고 책방 한쪽에 쌓아놨던 책 더미에서 오랜만에 꺼냈는데,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해서 순식간에 읽었고 내용이 너무 좋아 글을 남기고 싶었다.

저자인 앤 에드워드는 '캐서린 햅번: 빼어난 여성' '다이애나비와 그녀의 인생' '모나코의 그리말디스' 등 숱한 여성의 전기를 써내서 평전의 여왕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앤 에드워드가 쓴 마리아 칼라스의 평전. 2005년 국내 출간됐다.

인물 평전의 뛰어난 걸작

퓰리처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오를 만큼 그의 저서는 꼼꼼한 사실 기록과 다각도의 취재로 대상이 된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우리 시대 위대한 성악가로 꼽히는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의 생애를 다룬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마리아 칼라스 자체가 워낙 극적인 인생을 살기도 했지만 저자는 연대기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며 배경이 된 사건과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풀어냈다.

이 과정에서 심지어 잘못된 주장을 실은 다른 책과 고의로 왜곡한 다른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까지 소개하며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편견과 오류를 바로 잡으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진실을 토대로 인물들의 평가를 적절하게 섞었다.

그렇다고 감정 과잉으로 치닫거나 애매모호하게 기술하지 않고 담백하며 분명한 문장을 통해 평가 또한 사실 전달에 치중한다.

 

그래서 책장을 덮고 나면 마치 한 편의 탐사보도 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다.

그러면서도 요란한 수사나 드라마틱한 과장 없이도 읽는 사람의 감정을 끓어오르게 한다.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칼라스 사후 그의 대리인 행세를 한 사기꾼 바소를 다룬 대목이다.

저자는 전혀 흥분하지 않고 담백하게 기술했지만 극적인 이야기 전개 때문에 읽다 보면 절로 피가 끓어오른다.

 

그런 점에서 앤 에드워드는 냉정하고 객관적이며 치밀하고 사실적으로 기술해야 하는 평전의 모범을 보여줬다.

뒤늦게나마 놓치지 않고 훌륭한 명저를 발견하게 돼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위대한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위대한 디바 마리아 칼라스

마리아 칼라스는 1923년 미국으로 이민 간 그리스계 부모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는 근시가 심하고 아주 뚱뚱해서 남 앞에 나서지 못하고 위축된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는 신이 내린 천상의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이를 알아본 어머니는 딸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려고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로 건너가 아테네 국립음악원에서 성악을 가르쳤다.

 

덕분에 칼라스는 타고난 재능이 빛을 발하면서 1947년 이후 이탈리아와 미국에서 오페라의 여왕으로 군림했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그는 극도의 다이어트로 날씬한 몸매와 미모까지 겸비하며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마리아 칼라스는 서울과 일본에서도 공연을 했다. 서울과 일본 공연이 그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그가 평생의 스승으로 삼았던 위대한 마에스트로 툴리오 세라핀(Tullio Serafin)의 지휘로 공연한 오페라 '노르마'(Norma)와 '토스카'(Tosca) '람메르무어의 루치아'(Lucia di Lammermoor) 등은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지금까지도 칼라스의 '노르마'를 능가하는 성악가가 아직까지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일련의 오페라에서 보여준  그의 노래와 연기는 완벽했다.

 

하지만 인간관계는 그렇지 못했다.

그의 주변에는 어떻게든 그를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이 들끓었다.

 

심지어 이기적인 어머니조차도 그런 부류의 사람이어서 딸을 저주하며 악담을 퍼부어 칼라스가 평생 절연하고 살았다.

나이가 서른 살이나 많은 남편 메네기니도 칼라스가 벌어들인 돈을 빼돌렸다.

 

시댁 식구들은 칼라스를 미워해 얼굴조차 보려들지 않으면서도 그가 벌어들인 돈으로 호사스럽게 살았다.

어쩔 수 없이 칼라스는 주변 친구들에게 마음을 붙였는데 그가 진심으로 좋아했던 유명한 영화감독이자 오페라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는 불행하게도 동성애자였다.

칼라스의 평생 연인이었던 오나시스가 칼라스에게 선물한 친칠라 모피코트를 들고 있다. 칼라스의 등 뒤에서 카메라를 보는 남자가 남편 메네기니다.

그러다가 칼라스는 세계적인 거부로 유명한 그리스의 선박왕 아리스토텔레스 오나시스(Aristotle Onassis)를 만나 세기의 스캔들을 일으켰다.

유부남이었던 오나시스는 엄청난 바람둥이어서 미모의 재벌가 아내가 있는데도 대놓고 여러 여자들과 바람을 피웠다.

 

불행하게도 칼라스는 그런 오나시스의 꼬임에 넘어가 평생을 매달렸다.

메네기니와 이혼한 칼라스는 오나시스와 결혼을 기대했지만 정작 권력과 명예를 좇았던 오나시스는 암살당한 케네디 대통령의 미망인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 Onassis)와 재혼했다.

 

오나시스는 재클린과 결혼한 뒤에도 칼라스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칼라스는 세계적인 디바인데도 불구하고 오나시스가 죽을 때까지 그의 두 번째 여자로 살았다.

칼라스 사후 그의 재산을 빼돌린 바소 데베치.

오나시스 사후 칼라스가 겪은 최대 재앙은 그리스 출신 여성 피아니스트 바소 데베치를 만난 일이었다.

칼라스에게 계산적으로 접근한 바소는 칼라스가 칭찬에 약한 점을 파고들어 입 속의 혀처럼 굴며 칼라스의 친구이자 비서 행세를 했다.

 

오나시스도 죽고 예전처럼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서 심하게 우울증을 앓았던 칼라스에게 바소는 과도하게 수면제와 우울증 약을 주며 주변 사람들의 접근까지 막았다.

그렇게 불운한 말년을 보낸 마리아 칼라스는 1977년 파리의 아파트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바소는 법적 권한이 없는데도 칼라스의 대리인 행세를 하며 사인을 심장마비로 발표하고 서둘러 칼라스의 시신을 화장한 뒤 바다에 뿌려 버렸다.

훗날 의사들은 칼라스가 심장마비가 아닌 우울증 약을 과다 복용하면 발생하는 폐색전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았으나 이를 밝혀낼 칼라스의 시신이 존재하지 않았다.

칼라스는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의 영화 '메데아'에서 주연을 맡았다. 이 작품은 국내에도 DVD가 출시됐다.

이후 바소는 유가족을 속인 뒤 칼라스의 엄청난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했다.

법적 권한이 없는 전 남편 메네기니도 나타나 유족을 속이고 오나시스가 선물한 값비싼 보석 등 칼라스의 유산 일부를 빼내갔다.

 

칼라스의 언니는 그로부터 근 10년이 지나 뒤늦게 속은 것을 알고 바소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

그러나 칼라스의 재산을 빼돌려 호위호식한 바소는 소송 당시 말기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다.

 

음반 수입 등 칼라스의 유산은 바소가 죽을 때까지 사치스럽게 살아도 다 쓰지 못할 만큼 많았지만 바소가 어디로 어떻게 빼돌렸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위대한 예술가로 무대 위에서 갈채를 받았던 칼라스의 삶은 화려한 무대와 달리 어둡고 우울했다.

 

그런 그를 저자 앤 에드워드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20세기를 통틀어 칼라스만큼 커다란 호소력을 지닌 성악가는 없었다. 그는 오페라를 바꿔 놓았고, 오페라의 심장을 열어 심오한 의미를 펼쳐 보였다. 그의 삶은 여러모로 불완전했지만 너무나 특별한 프리마돈나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MI에서 내놓은 2장짜리 CD 'Maria Callas, The Voice of The Century'.

신이 내린 목소리, 칼라스의 노래들

책을 펼쳐들 때마다 칼라스의 음반을 함께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독서를 위한 배경음악이었지만 뒤로 넘어갈수록 극적인 칼라스의 삶이 중첩되면서 음악이 가슴을 때렸다.

 

마치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탕웨이가 사라진 바닷가를 휘몰아치는 파도 같았다.

막판 책을 덮을 때는 절절한 그의 노래에 가슴 한 켠이 먹먹하고 저려왔다.

 

참고로 이 책을 읽을 때 들으면 좋은 음반으로 EMI에서 나온 'Maria Callas, The Voice of The Century'를 추천한다.

CD 2장으로 구성된 이 음반은 1950년대 툴리오 세라핀과 녹음한 주요 오페라의 레퍼토리부터 1960년대 순회공연 노래까지 들어 있어 칼라스 인생의 하이라이트를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첫 번째 CD 4번 트랙으로 수록된 도니제티의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 'Regnava nel Silenzio'와 5번 트랙 베르디의 '리골레토' 중 'Gualtier Malde'는 숨 막히게 아름답다.

또 두 번째 CD에 들어있는 마이어베어 '디노라' 중 'Ombra Leggiera'와 비제의 '카르멘'을 들어보면 칼라스가 얼마나 위대한 성악가였는지 확인할 수 있다.

 

마리아 칼라스가 툴리오 세라핀 지휘로 부른 도니제티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중 'Regnava nel Silenz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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