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프레드릭 포사이드와 '재칼의 날'

울프팩 2015. 11. 21. 11:59

파리 테러를 보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세계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영국의 추리소설 작가 프레드릭 포사이드(Frederick Forsyth)다.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집필한 책들이 전세계에서 7,000만권 이상 팔릴 만큼 인기 작가인 그는 냉전이 끝나면 더 이상 다룰 소재가 없지 않냐는 우려에 대해 한마디로 일축했다.

"테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포사이드는 오히려 냉전시대에 활약한 스파이나 이들을 잡기 위한 방첩기관 요원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올 것으로 봤다.

일부는 경호 등 사설보안요원으로, 일부는 누구 편이 됐든 용병으로 뛸 것이란 예측이다.

 

그렇게 쏟아져 나온 전문가들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영화에 흔히 나오는 악당이나 테러리스트들을 가르치는 교관이 될 수 있다.

오랜 준비를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터뜨린 이번 파리 테러를 보면 세계 각국에서 마구잡이로 모집한 아마추어 청년들만의 모의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전투기 조종사와 기자를 거친 모험가, 프레드릭 포사이드

 

 

프레드릭 포사이드는 그의 작품 만큼이나 대단히 흥미로운 인물이다.

1938년생인 포사이드는 투우사가 되려고 하다가 실패한 뒤 하늘을 날고 싶어 만 17세때 비행기 조종면허를 획득하고 19세때 최연소 영국 공군 조종사가 됐다.

 

하지만 공군이 너무 어린 그에게 전투기를 맡기기 꺼리자 군대를 제대하고 지방 언론사를 거쳐 1961년 로이터통신 기자가 됐다.

기자가 된 이유는 여행을 좋아해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고 싶어서였다.

 

그는 입사 6개월 만에 파리, 동베를린, 체코, 헝가리 등을 오가는 특파원이 됐고 이때 많은 사람들을 만나 들은 이야기가 훗날 소설의 소재가 됐다.

이른 시기에 특파원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등 무려 6개국어를 구사했기 때문이다.

 

훗날 밝혀진 얘기지만 당시 체코 비밀경찰 STB는 자주 드나드는 포사이드를 눈여겨 보고 입국할 때 마다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했다.

포사이드도 STB의 감시를 알고 있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어느날 술집에서 근사한 여인을 만나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따라오지 않아 혼잣말로 "STB가 보이지 않는다"고 중얼 거렸더니 여인이 돌아보며 한마디 했다. "It's me"(여기 있잖아요.)

 

1965년 BBC로 옮긴 포사이드는 나이지리아 내전인 '비아프라 전쟁' 취재차 아프리카로 건너가 용병들과 생활했다.

이때 경험들은 훗날 용병들의 세계를 다룬 '전쟁의 개들'의 소재가 됐다.

 

테러리스트들의 교과서 '재칼의 날'

 

[1984년 모음사에서 출판한 책. 모음사에서 프레드릭 포사이드의 다른 소설 '악마의 선택'과 '제 4의 핵'도 출간했다.]

 

이후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하던 그는 돈이 떨어지자 생계를 위해 소설을 썼다.

그 작품이 바로 그의 명성을 세계에 알린 '재칼의 날'이다.

 

국내에도 모음사에서 번역 출간한 뒤 여러 출판사에서 펴낸 이 책은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독립을 꿈꾸는 무장단체 OSA 대원들이 파리에 잠입해 샤를 드골 대통령 암살을 시도하는 소설이다.

불과 35일만에 탈고한 이 책은 전세계에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특히 구 소련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 책이 금서가 됐다.

당시 소련 부수상이었던 미하일 스스로프는 테러 기법과 준비 과정이 너무 상세하게 묘사된 점을 우려했다.

 

동구권에서는 이 책을 금서로 묶어 놓고 스파이들의 교본으로 썼다고 한다.

그 정도로 이 책의 디테일은 소름끼칠 정도로 뛰어나다.

 

전후 나치 일당들의 도피를 다룬 '오뎃사파일'과 용병들 이야기를 쓴 '전쟁의 개들', 마약밀매조직을 다룬 '코브라' 등을 출간하고 나서 그는 여러 범죄조직, 이스라엘 첩보기구 모사드 등의 추격을 받아 위험한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기도 했다.

그럴 수 밖에 없던 것이, 그의 책은 현장에 있던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만큼 현장 묘사가 너무 사실적이다.

 

이에 대해 포사이드는 실제로 현장 취재를 철저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소설 속에 나오는 모든 장소를 직접 가보고 모의 실험에 가까울 정도로 등장인물들의 동선을 확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더불의 그는 놀라울 정도로 넓은 인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부터 세계 각국의 정치 지도자, 용병대장, 범죄조직 우두머리 등 실로 다채로운 인맥을 자랑한다.

 

냉전 시대 스파이들은 사라졌지만 그의 글 쓰는 습관은 아직도 냉전 시대에 머물러 있다.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고 손글씨 편지나 팩스를 사용하며, 원고를 컴퓨터 대신 타자기로 친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재칼의 날'에 영향 받아

 

포사이드의 대표작 '재칼의 날'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따.

1994년 수단에서 체포된 세계적인 테러리스트 카를로스 자칼은 이 책에 나오는 신출귀몰한 테러리스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자칼은 체포 당시 '재칼의 날'을 갖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 법정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국내를 대표하는 추리소설가 김성종씨도 이 작품을 읽고 추리소설 작가가 됐다.

그는 이 책을 우연히 읽고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1974년 8월15일 광복절 기념식 도중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육영수 영부인을 저격 살해한 문세광도 범행을 자백한 것이 이 책 때문으로 알려졌다.

당시 중앙정보부장 법률보좌관으로 파견 근무중이던 검사가 범행 수법이 '재칼의 날'과 비슷한 점을 눈여겨 보고 문세광에게 "그 책을 읽었냐"고 물었고, 읽었다는 대답에 "네가 재칼 아니냐. 그렇다면 혁명을 하겠다는 자가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은 비겁한 짓 아니냐"고 추궁해 자백을 받았다고 한다.

 

그 검사가 바로 얼마전까지 박근혜 대통령 밑에 있었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이후 김 전 비서실장은 "암살범들의 교과서라고 알려진 이 책으로 오히려 문제를 해결했으니 포사이드의 도움을 받은 셈"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런 내용이 와전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세간에는 이렇게 알려져 있다.

그 정도로 '재칼의 날'을 비롯해 포사이드가 소설에서 묘사한 테러리스트들이나 이를 쫓는 첩보원들의 수법은 참으로 상세하다.

 

[국내 출간된 프레드릭 포사이드의 책들.]

 

프레드릭 포사이드의 놀라운 비밀

 

그 바람에 포사이드는 실제 첩보원이 아니냐는 의혹을 끊임없이 받았는데, 최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올해 9월1일 영국 BBC는 포사이드가 20년 이상 MI6로 불리는 영국 비밀정보국(SIS)을 위해 일한 사실을 고백했다고 보도했다.

 

포사이드는 최근 자서전 '아웃사이더'를 내놓고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1968년 BBC 기자 시설 나이지리아의 비아프라 내전을 취재갔다고 관련 보고서를 MI6에 제공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돈을 받은 것은 아니다"라며 작가가 된 뒤에도 로디지아, 남아프리카, 동독에 가서 MI6 임무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프레드릭 포사이드의 소설 '재칼의 날'은 1973년 프레드 진네만 감독이 영화로도 만들었다.]

자칼의 날 2
프레데릭 포사이스 저/강혜정 역
자칼의 날 1
프레데릭 포사이스 저/강혜정 역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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