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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슬로운(블루레이)

울프팩 2019. 4. 7. 17:19

존 매든 감독의 '미스 슬로운'(Miss Sloane, 2016년)은 미국의 로비스트 이야기를 스릴러처럼 다룬 아주 훌륭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미국의 로비스트 제도를 알아야 한다.

 

미국은 로비스트 활동을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나라다.

원래 휴게실이란 뜻의 로비는 영국과 미국의 국회의사당에서 의원들이 찾아온 손님들을 만나는 응접실을 뜻한다.

 

1800년 미국 필라델피아 전국산업진흥회가 연방은행 설립을 위해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려고 언론인들에게 부탁하면서 로비가 정치적 행위를 뜻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런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치는 로비스트들이 늘어나자 1946년 로비 금지법을 만들어 로비스트 명단을 관리하고 이들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렇지만 로비스트가 사라지지 않고 도리어 로비활동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청원 등이 늘면서 미 의회는 1995년 로비활동공개법을 만들어 로비스트를 공식화했다.

대신 로비스트들은 미 상원, 하원의원들 못지 않게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한다.

 

로비스트들이 의원을 만나면 반드시 미 의회 기록담당과에 기록을 남겨야 하며 3개월마다 활동 내역과 비용 등을 공개해야 한다.

또 의원들에게 돈을 주거나 선물, 해외여행 등의 혜택을 제공하면 처벌받는다.

 

이처럼 미국이 로비스트들을 엄격하게 관리하면서 이들의 존재를 공인한 것은 일정 부분 미 의정 활동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로비스트들이 목적을 갖고 움직이지만 제공하는 정보가 의정 활동만으로 파악하기 힘든 다양한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긍정적 효과도 있다는 시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로비스트의 활동이 미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인 국민의 청원권과 연결된다는 해석이다.

즉 국민들이 입법 활동에 직접적인 참여를 할 수 없는 만큼 로비스트들을 통해 필요한 것들을 청원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물론 여기에는 기업, 단체 등 이익집단도 포함되기 때문에 순수한 의도만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미국은 국민의 청원권을 보장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로비스트를 보고 있다.

 

국내에 미국의 로비스트가 널리 알려진 것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때 큰 파문을 일으킨 박동선 사건이다.

당시 정부는 미국에서 주한 미군의 감축설,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미국 망명 등으로 박정희 정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대두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미국 조지타운대 출신의 박동선이라는 재미 사업가를 통해 미 의원들과 닉슨 행정부에 거액의 돈을 뿌렸다.

 

이것이 워싱턴포스트에 폭로되면서 박동선 게이트 또는 코리아 게이트로 명명되며 대대적으로 망신을 샀다.

이런 부정적 사건의 여파 때문인지 국내에서는 국회나 정부 각 기관을 상대로 한 포괄적 의미의 로비스트는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2018년부터 로펌만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할 수 있도록 공정위에 국한한 협의의 로비스트법을 시행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로비스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나 단체들은 '대관' 부서를 두고 관공서나 국회를 상대로 로비스트에 가까운 활동을 한다.

따라서 미국처럼 입법부를 상대로 한 로비스트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 영화는 워싱턴 정가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로비스트를 다루고 있다.

그가 나서면 무슨 일이든 막히는 법 없이 술술 풀린다고 하는데, 하필 얽혀 든 일이 미국에서 가장 민감하다는 총기 규제법이다.

 

총을 구입하는 사람을 등록하도록 해서 총기 관련 범죄를 줄이자는 법안을 통해 간접적으로 총기 사고를 규제하자는 것.

당연히 총기협회 등은 총기 판매가 줄어들 것을 우려해 강력 반대한다.

 

주인공은 승산이 없는 총기 규제 단체의 로비스트로 나서게 된다.

이때부터 그는 사방에서 공격을 받아 반총기규제 관계자들 뿐만 아니라 그를 향한 인신공격까지 대응해야 한다.

 

영화는 이 과정을 추리소설처럼 긴장감 높은 구성으로 풀어내며 보는 내내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법과 논리로 싸워야 하는 만큼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대사량이 만만치 않은데 질리지 않고 오히려 강도 높은 긴장감을 유발한다.

 

특히 막판 반전이 놀랍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실화가 아니지만 각본을 쓴 조나단 페레라가 꼼꼼하게 취재를 하고 쓴 이야기여서 로비스트의 활동이 사실적으로 묘사됐다.

 

덕분의 그의 훌륭한 시나리오는 할리우드에서 놀라운 대본들만 오른다는 블랙리스트에 올라 많은 영화사와 감독들이 탐을 냈다.

존 매든 감독은 흡입력있는 영상과 냉정한 이미지의 제시카 차스테인을 주연으로 기용해 뛰어난 작품으로 만들어 놓았다.

 

다만 영화의 유일한 약한 고리는 에스코트 서비스로 등장하는 남성의 존재다.

이 부분이 완벽을 기하는 여성 로비스트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기 위해 약물과 함께 등장한다.

 

하지만 그가 청문회 증인으로 나와서 보여주는 행동 등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따라서 이성적으로 잘 대응하다가 갑자기 감정적 대응으로 바뀐 부분이어서 옥의 티가 됐다.

 

그렇더라도 전체적으로 로비스트들의 날선 공방 대결을 놀라운 추리소설처럼 묘사한 수작이다.

1080p 풀 HD의 16 대 9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윤곽선이 깔끔하고 색감 또한 말끔하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채널 분리가 잘 돼 있어서 적절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부록으로 씨네21의 김혜리 기자 해설과 제작과정이 한글자막과 함께 HD 영상으로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영국 변호사 출신인 조나단 페레라가 각본을 썼다.
주연을 맡은 제시카 차스테인은 메릴 스트립의 후계자로 꼽힐 만큼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다.
에스코트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골로로 등장하는 제이크 레이시는 '램페이지' '캐롤' 등에 출연했다.
주인공은 중국집에서 칭타오 맥주를 즐겨 마시는 설정이다.
마이클 스털버그가 강력한 경쟁 로비스트 회사의 로비스트로 등장. 그는 '컨택트' '쉐이프 오브 워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등에 출연.
제시카 차스테인은 촬영을 위해 실제 로비스트 11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 작품의 대본은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각본들이 오른다는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스포트라이트' '위플래시' 등이 블랙리스트에 오른 각본이었다.
조나단 페레라는 한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다가 우연히 감옥에 갇혔던 로비스트 인터뷰를 읽고 대본 아이디어를 얻었다.
촬영은 세바스찬 블렌코브가 맡았다. 들고 찍기를 좋아하는 그는 조명을 최소화해 자연스런 인물의 이미지를 살렸다.
미국에서 로비스트로 일하려면 정부에 등록을 해야 한다.
마크 스트롱이 로비스트 회사의 대표로 등장.
존 매든 감독은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1,2'편으로 유명하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미스 슬로운
존 매든 / 제시카 차스테인, 마크 스트롱, 구구 바샤-로, 알리슨 필
 
미스 슬로운 : 한정판 블루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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