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

찰리 채플린이 쓴 '나의 자서전'에서 한마디도 언급되지 않는 작품이 있다.
바로 1928년에 만든 '서커스'(The Circus, 1928년)다.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다.
제작에 얽힌 진절머리나는 기억 때문이다.

채플린은 이 작품 제작 당시 안팎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키드'를 촬영하며 만난 두 번째 부인 리타 그레이와 결혼 생활이 파경을 맞아 이혼소송 중이었다.

8개월간 이어진 이혼 소송으로 촬영이 중지됐고, 리타 그레이에게 빼앗길까봐 필름을 숨겨야 했다.
뿐만 아니라 촬영 9개월째 커다란 화재가 발생해 세트가 모두 타버렸다.

어렵게 재개한 촬영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엔딩에 나오는 마차를 몽땅 도둑맞는 일도 발생했다.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으며 채플린은 심신이 모두 지쳐버렸다.

그러니 이 작품을 보면 힘든 기억이 먼저 떠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관객 입장에서는 대단히 재미있는 작품이다.

채플린이 창조한 떠돌이 부랑자가 우연히 서커스단에 일자리를 얻으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뤘다.
이 작품의 묘미는 아슬아슬한 긴장의 순간을 웃음 코드로 활용한 점이다.

생전 줄을 타 본 적이 없는 떠돌이가 까마득한 높이의 외줄에 매달려 원숭이들과 벌이는 깜짝 곡예는 우스우면서도 오금이 저리고, 사자우리에 갇혀 벌이는 소동은 절로 웃음이 난다.
더불어 채플린 특유의 타이밍 감각이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빛을 발한다.

소매치기 장면이나 경찰의 눈을 속이기 위해 인형처럼 가장한 장면, 곡예사들과 벌이는 슬랩스틱 코미디쇼는 시간차를 이용한 절묘한 타이밍의 예술을 보여준다.
그만큼 이 영화는 채플린이 힘들게 찍었지만 그의 천재적 재능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워너브라더스에서 나온 채플린콜렉션 DVD를 추천한다.
4 대 3 풀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영상의 디테일이 뭉개지고 화면 떨림이 나타나 일반적 기준에서 보면 아쉬운 화질이지만 80년이 넘은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 듯.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으로 작품소개와 삭제 장면, 재키 쿠건이 출연한 단편영화가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채플린은 이 작품으로 오스카라는 명칭이 붙기 전인 제 1 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았다.

채플린은 이 작품 촬영 당시 두 번째 부인이었던 리타 그레이와 이혼 소송으로 심신이 피곤했다.

윌리엄 텔의 활쏘기를 이용한 개그. 이 작품을 보면 1970년대 이후 우리 코미디프로에서 쓰인 갖가지 유머들이 많이 나온다.

말에게 알약을 불어넣어 먹이려다가 뜻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는 장면. 채플린은 해롤드 로이드의 활기찬 코미디를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을 구상했다.

이 장면을 찍기 위해 채플린은 직접 사자우리에 들어갔다. 물론 조련된 사자이긴 하지만 채플린은 많이 긴장했다.

채플린이 좋아하는 서커스 단장의 딸 역할은 당시 18세 신인이었던 머나 케네디가 맡았다.

정작 여주인공의 관심을 끄는 멋진 곡예사 역할은 당시 사교계 명사였던 해리 크록커가 연기. 그는 이후 채플린 작품인 '시티 라이트'에서 조감독을 맡았다.

채플린은 외줄과 긴 막대, 그리고 작은 원숭이들을 이용해 숨 막히는 긴장과 웃음을 만들어냈다.

채플린은 도입부에 나오는 '그네타는 소녀'라는 노래를 1969년에 직접 작곡해 부른 뒤 이를 삽입한 판본을 재개봉했다. 노래를 부를 당시 그의 나이 81세였다.

막판 나오는 마차들을 한 청년이 몽땅 훔쳐가는 바람에 촬영이 늦어지기도 했다. 마차는 나중에 되찾았다.

		찰리 채플린 - 서커스 (2disc) 찰리 채플린 감독 찰리 채플린，나의 자서전 찰리 채플린 저/이현 역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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