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영화 소설을 줄줄이 펴내던 한진출판사에서 낸 책 중에 '나는 놈 위를 기는 놈'이란 책이 있다.
사기꾼을 등쳐 먹는 희대의 사기꾼들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다.
당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정교한 계획과 엄청난 노력에 감탄을 한 적이 있는데, 조지 로이 힐 감독의 '스팅'(The Sting, 1973년)도 그런 영화다.
겁 없는 두 사나이가 정교한 사기극으로 미국 거물 갱단 두목을 홀랑 베껴 먹는 이야기다.
그 계획이 어찌나 정교하고 기가 막힌 지 영화를 보며 연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이들이 이용하는 수법은 1930년대에 가능한 전신 사기다.
즉 방송 중계의 지연 시간을 이용해 그전에 승부가 결정 난 경마에 배팅하는 이야기다.
방송과 통신 기술이 발달한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과거에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무엇보다 감독과 배우들 모두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칭송한 작가 데이비드 워드의 공이 크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라파예트' 등의 각본을 쓴 그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다.
더불어 조지 로이 힐 감독, 폴 뉴먼, 로버트 레드포드 트리오가 '내일을 향해 쏴라' 이후 다시 만나 완벽한 호흡을 이룬 것도 높이 살 만하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연기와 물 흐르듯 매끄러운 연출이 한 몸처럼 궁합을 이뤄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주제곡으로 쓰인 유명한 연주곡 'The Entertainer'이다.
흑인 음악가 스콧 조플린의 피아노 래그타임 연주가 돋보이는 경쾌한 멜로디는 언제 들어도 흥겹다.
로버트 서티스의 촬영 또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1985년 고인이 된 그는 '벤허', 1976년에 개봉한 오리지널 '스타 탄생', '졸업' 등의 명작을 찍은 촬영 감독이다.
그의 카메라는 골목 귀퉁이나 창문 틈으로 마치 영화 속 등장인물들을 관객이 훔쳐보는 듯한 사실적인 앵글로 바라보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러면서도 와이프 아웃이나 디졸브 등 고전적인 편집을 통해 전환되는 장면들은 마치 연극무대처럼 극적 효과를 강조한다.
그만큼 사실적인 촬영과 드라마틱한 영상이 대비되면서 적당히 밀고 당기는 완급 조절로 관객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아울러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의상들은 유명한 에디스 헤드의 솜씨다.
그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받았다.
다만 넥타이는 시대의 흐름 때문에 마치 스카프를 매어 놓은 것 같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또 있다.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 작품에서는 큰 역할을 한 자로슬라브 겝이다.
할리우드에서 삽화가이자 스케치 아티스트로 수십 년간 활동한 그는 이 작품에 유명한 타이틀 그림들과 일종의 챕터 역할을 하는 소제목용 그림들을 그렸다.
마치 소설 속 삽화를 보는 듯한 그의 그림은 작품의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배우 역할을 했다.
원래 그는 '형사 콜롬보' '브루스 브라더스' '아폴로 13' 등 수많은 영화와 TV 드라마의 스토리보드를 그렸다.
또 '타워링'에서는 블루 스크린 작업에도 참여했다.
사실적이면서도 그림의 느낌을 확실히 살린 삽화를 잘 그렸던 그는 2013년 86세로 사망했다.
이처럼 이 작품은 완벽한 속임수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극 중 사기극처럼 뛰어난 장인들의 조합이 빛을 발한 명작이다.
그만큼 이야기, 연기, 연출, 음악, 편집, 의상, 미술 등 어느 하나 처지지 않고 뛰어난 하모니를 이뤄냈다.
국내 출시된 4K 타이틀은 4K와 일반 블루레이 등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2160p U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괜찮은 화질이지만 최신작과 비교하면 떨어진다.
중경과 원경은 디테일이 떨어져 사람의 이목구비가 명확하지 않다.
지글거림도 두드러지고 윤곽선도 두텁게 퍼져 보인다.
그래도 정갈한 디지털 복원작업 덕분에 필름 잡티나 손상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특히 클로즈업 영상은 깔끔한 편이며 뒤로 갈수록 화질이 안정된다.
DTS-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전방에 주로 소리가 집중된 편이지만 피아노 음이 명료하게 들린다.
부록으로 제작에 얽힌 이야기와 유니버설 100년 관련 복원 기술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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