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스팅(4K 블루레이)

울프팩 2021. 5. 22. 23:00

1970~80년대 영화 소설을 줄줄이 펴내던 한진출판사에서 낸 책 중에 '나는 놈 위를 기는 놈'이란 책이 있다.
사기꾼을 등쳐 먹는 희대의 사기꾼들 이야기를 모아 놓은 책이다.

당시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정교한 계획과 엄청난 노력에 감탄을 한 적이 있는데, 조지 로이 힐 감독의 '스팅'(The Sting, 1973년)도 그런 영화다.
겁 없는 두 사나이가 정교한 사기극으로 미국 거물 갱단 두목을 홀랑 베껴 먹는 이야기다.

그 계획이 어찌나 정교하고 기가 막힌 지 영화를 보며 연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이들이 이용하는 수법은 1930년대에 가능한 전신 사기다.

즉 방송 중계의 지연 시간을 이용해 그전에 승부가 결정 난 경마에 배팅하는 이야기다.
방송과 통신 기술이 발달한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과거에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무엇보다 감독과 배우들 모두 완벽한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칭송한 작가 데이비드 워드의 공이 크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라파예트' 등의 각본을 쓴 그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다.

더불어 조지 로이 힐 감독, 폴 뉴먼, 로버트 레드포드 트리오가 '내일을 향해 쏴라' 이후 다시 만나 완벽한 호흡을 이룬 것도 높이 살 만하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연기와 물 흐르듯 매끄러운 연출이 한 몸처럼 궁합을 이뤄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든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주제곡으로 쓰인 유명한 연주곡 'The Entertainer'이다.
흑인 음악가 스콧 조플린의 피아노 래그타임 연주가 돋보이는 경쾌한 멜로디는 언제 들어도 흥겹다.

로버트 서티스의 촬영 또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1985년 고인이 된 그는 '벤허', 1976년에 개봉한 오리지널 '스타 탄생', '졸업' 등의 명작을 찍은 촬영 감독이다.

그의 카메라는 골목 귀퉁이나 창문 틈으로 마치 영화 속 등장인물들을 관객이 훔쳐보는 듯한 사실적인 앵글로 바라보며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러면서도 와이프 아웃이나 디졸브 등 고전적인 편집을 통해 전환되는 장면들은 마치 연극무대처럼 극적 효과를 강조한다.

그만큼 사실적인 촬영과 드라마틱한 영상이 대비되면서 적당히 밀고 당기는 완급 조절로 관객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아울러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의상들은 유명한 에디스 헤드의 솜씨다.

그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받았다.
다만 넥타이는 시대의 흐름 때문에 마치 스카프를 매어 놓은 것 같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또 있다.
그렇게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 작품에서는 큰 역할을 한 자로슬라브 겝이다.

할리우드에서 삽화가이자 스케치 아티스트로 수십 년간 활동한 그는 이 작품에 유명한 타이틀 그림들과 일종의 챕터 역할을 하는 소제목용 그림들을 그렸다.
마치 소설 속 삽화를 보는 듯한 그의 그림은 작품의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배우 역할을 했다.

원래 그는 '형사 콜롬보' '브루스 브라더스' '아폴로 13' 등 수많은 영화와 TV 드라마의 스토리보드를 그렸다.
또 '타워링'에서는 블루 스크린 작업에도 참여했다.

사실적이면서도 그림의 느낌을 확실히 살린 삽화를 잘 그렸던 그는 2013년 86세로 사망했다.
이처럼 이 작품은 완벽한 속임수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극 중 사기극처럼 뛰어난 장인들의 조합이 빛을 발한 명작이다.

그만큼 이야기, 연기, 연출, 음악, 편집, 의상, 미술 등 어느 하나 처지지 않고 뛰어난 하모니를 이뤄냈다.
국내 출시된 4K 타이틀은 4K와 일반 블루레이 등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2160p U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괜찮은 화질이지만 최신작과 비교하면 떨어진다.
중경과 원경은 디테일이 떨어져 사람의 이목구비가 명확하지 않다.

지글거림도 두드러지고 윤곽선도 두텁게 퍼져 보인다.
그래도 정갈한 디지털 복원작업 덕분에 필름 잡티나 손상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특히  클로즈업 영상은 깔끔한 편이며 뒤로 갈수록 화질이 안정된다.
DTS-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전방에 주로 소리가 집중된 편이지만 피아노 음이 명료하게 들린다.

부록으로 제작에 얽힌 이야기와 유니버설 100년 관련 복원 기술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기상천외한 사기꾼 일당의 모험을 다룬 이 작품은 1974년 아카데미상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 감독, 각본, 미술, 의상, 편집, 음악상 등 7개 부문을 수상했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좋아하는 여인이 춤을 추는 극장은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28번 스테이지에서 촬영. 이곳에 1920년대 론 체니 주연의 '오페라의 유령'을 찍은 극장 세트가 있다. 1943년 동명 영화를 같은 곳에서 찍었고, '스팅'에서도 그 극장을 그대로 활용.
주연을 맡은 로버트 레드포드. 그는 감독으로도 성공적으로 변신해 1980년 '보통사람들'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그를 유명하게 한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맡았던 선댄스 키드의 이름을 딴 독립영화제인 선댄스 영화제도 만들었다.
폴 뉴먼은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 10번 올라 '컬러 오브 머니'로 수상. 자동차 경주 선수이기도 했던 그가 이끌었던 팀은 인디카 레이싱 대회에서 수 차례 우승했다.
책장이 넘어가듯 그림이 넘어가며 이야기가 전환되는 방식은 마치 소설의 챕터나 연극의 막 같은 효과를 낸다.
주인공 일당이 엄청난 노력을 들여 진행하는 경마 사기는 1930년대 땅덩이가 넓은 미국에서 전신의 시간차를 이용해 실제로 일어난 유명한 마권 사기 수법을 이용했다.
스콧 조플린의 피아노 연주는 부드러운 음이 나는 블루너 피아노를 사용. 음악이 흘러나올 때 일부러 대사를 배제해 연주가 또렷하게 들리도록 한 점도 성공 비결이었다.
갱단 두목은 '죠스' '007 위기일발' '발지 대전투'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한 로버트 쇼가 맡았다. 술을 아주 좋아했던 그는 1978년 타계했다.
쇼는 촬영 전 다리를 다쳐 다른 배우를 대신 기용하라고 감독에게 말했으나, 로이 힐 감독은 쇼에게 걸어보라고 시킨 뒤 걷는 모양을 보고 두목을 다리를 저는 인물로 바꿨다.
유니버설 영화사는 여자 악당 역의 배우가 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했으나 눈에 띄지 않는 외모를 원했던 조지 로이 힐 감독이 섭외했다.
뛰어난 필름 복원은 원작의 네거티브 필름을 초고해상도 스캐너로 스캔해 디지털 영상으로 만들었다. 필름 입자가 두드러지는 부분은 영상에 맞게 일일이 입자 크기를 줄였다.
힐 감독은 예일대에서 음악을 전공한 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에 해군 비행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그는 80년대 예일대에서 교수를 했고 2002년 뉴욕에서 파킨슨 병으로 사망. 향년 81세.
'내일을 향해 쏴라'처럼 콤비 영화인 이 작품은 1975년 추석 때 국내 개봉해 16만 1,000명이 들었다. 당시 10만 명이 넘으면 히트작이었다.
배우들의 몸에 딱 떨어지는 의상을 디자인한 에디스 헤드는 이 작품으로 8번째 아카데미 의상상을 받았다. 잉그리드 버그만, 엘리자베스 테일러, 오드리 헵번 등 대스타들의 의상을 디자인한 그는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에서 슈퍼 의상을 만드는 디자이너의 원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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